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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택시 기사가 민심 대변자? 옛말” “직업의식 없어 불법·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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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충신 기자, 택시회사에 취업하다 ❺ 배차장서 흘러나온 택시 기사들의 애환

배차장은 택시 기사들의 인생 사랑방

60살 넘은 나이 지긋한 기사 대부분

단골 푸념은 신호 위반·과속 딱지

‘유턴해도…’ 손님이 부추기기도

노조 제 역할 못한다고 비판 목소리도

시민의 ‘귀와 입’은 이젠 옛말

‘승차 거부’ ‘불친절’ 오명 뒤집어써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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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들은 운행을 시작하기 전과 끝낸 후 꼭 배차실에 들른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배차부장에게 ‘출근 도장’을 찍은 뒤 차를 배정받고, 일을 마친 뒤에는 하루 ‘성적표’인 운행기록일보를 제출한다. 기사들은 배차실에서 교통사고부터 교통법규 위반으로 벌금 ‘딱지’ 날아온 이야기, 어디 가면 손님이 많은지 등등 여기에 인생살이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배차실은 한마디로 택시 기사들의 ‘사랑방’인 셈이다.

배차실에 들어서면 대부분 60살을 넘긴, 나이 지긋한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2018년 9월 기준 서울시 택시 기사는 법인택시 3만1292명, 개인택시 4만9236명으로 총 8만528명이다. 전체 기사 중에서 60살 이상이 60%를 차지한다. 이 중 개인택시 기사들의 고령화가 심각한데, 60살 이상 비율이 68%로 법인택시 기사 48%에 비해 20%포인트나 높다.

“요즘은 단속 장비가 좋아요. 카메라가 신호등마다 달려 있다고 보면 돼요. 딱지 끊기면 자기가 내야 해요. 하루에 한 장 받으면 헛일한 꼴이죠.”

택시 운전 시작 전날 ○○○○ 택시 회사 노조 사무실에서 이아무개 노조위원장한테 택시 기사의 기본, 말하자면 ‘에이비시’(ABC) 교육을 받았다. 위원장은 기자에게 단속 장비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일러줬다.

기사들의 교통법규 위반에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딱지 많이 날아오기는 처음이야. 5개 날아왔어. 7만원짜리 2개, 3만원짜리 2개, 하나 더 있어. 2만4천원짜리!” 택시 운전 이틀째인 지난해 12월12일, 일을 끝내고 배차실에 들어서자 택시 기사 서아무개씨가 과태료 고지서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모르게 나온 거야. 조심해도 그래, 방법이 없어. 이런 경우 10년 만에 처음이야. 예전에 20킬로(㎞) 미만은 봐줬는데, 요즘은 다 걸려.” 서씨는 이어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행정 당국의 ‘농간’이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손에 쥔 증거는 명확했다. 고지서에는 서씨가 운행하는 택시 사진과 번호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시간이 곧 돈’인 택시 기사들은 신호 위반, 과속 등 법규 위반을 할 경우가 잦다. 이는 승객을 불안하게 하고, 일반 운전자들의 불만으로 이어진다. 실제 현장에서 택시 기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신호 위반이나 과속을 안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 손님이 바쁘다며 은근히 부추기기도 한다.

기자가 다닌 택시 회사의 2018년 12월 과징금 대장을 살펴보면, ‘딱지’가 날아온 21명의 택시 기사들이 가장 많이 어기는 교통법규는 신호와 속도다. 여기에 주정차 위반, 통행료 미납 등도 생긴다. 과속은 10㎞/h 초과시 3만2천원, 20㎞/h 초과시 7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신호 위반은 7만원, 주정차 위반은 3만2천원이다. 택시 기사들이 하루 열심히 사납금을 맞추고 초과 수입을 올리더라도 교통법규를 하나라도 어기는 날에는 그야말로 헛일한 꼴이 된다.

기자도 택시 운전 8일 동안 교통법규를 위반한 게 열손가락으로 다 꼽지 못할 정도다. 야간에 속도위반, 불법주정차, 불법 유턴 등이 대표적이다. 다행히 딱지는 날아오지 않았다.

택시 기사들은 사고도 조심해야 한다. 법인택시 기사들 중에는 개인택시 자격을 얻으려고 택시 회사에 다니는 기사들도 제법 있다. 보통 법인택시를 3년 무사고 운전하면 개인택시 자격을 준다. 하지만 무사고로 3년을 견디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곳곳에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박아무개 기사는 무사고 3년을 하루 남겨두고 그만 사고를 낸 적이 있다고 했다. 어찌나 억울하던지 그때 일은 떠올리기도 싫다 했다. 그래서인지 택시 기사들은 무사고 3년을 채우기 위해 마지막 한 달쯤 남겨두고는 한 달치 사납금을 회사에 내고 아예 운전을 하지 않기도 한다고 했다.

카카오 카풀을 기사들은 정말 반대할까

지난해 12월 이후 벌써 택시기사 셋이 분신을 시도해 이 중 2명이 사망했다. 택시 기사 최아무개씨 분신을 계기로 불붙은 카카오 카풀 반대 여론은 12월20일 대규모 집회로 이어졌다.

집회 전날 기자가 회사 노조 총무에게 “내일 우리 회사는 어떻게 하죠?”라고 물었다. 박아무개 총무는 노조집행부와 회사 전무, 그리고 몇몇 오래된 기사들이 여의도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는 “내일모레는 개인택시가 거의 없으니 아주 노나(‘많이 번다’는 뜻). 일해”라고 간단히 말했다. 기자가 개인택시 기사들이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물었더니, 조금 머뭇거리던 박 총무는 개인택시 면허 가격이 내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인택시값이 많이 떨어졌어. 천만원 이상, 지금 7천5백(만원) 정도 해.”

대다수 법인택시 기사들은 노조 활동에 큰 관심이 없다. 택시 몰고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대부분이라서 기사들이 서로 대화할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나마 노조활동에 관심 있는 몇몇 기사들은 노조가 존재감이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택시 회사에 취직해 입사 서류를 작성할 때 노조 가입 서류도 함께 쓴다. 노조 상근자들은 “노조에 가입해야 취업도 가능하다”고 초보 기사들에게 말할 정도다. 법인택시 기사들은 그렇게 노조에 가입한 뒤 매달 꼬박꼬박 3만5천원의 조합비를 내지만 실제 노조가 기사들을 위해 하는 일이 없다고 비판했다. 강아무개 기사는 “노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며 “돈 아까워서 탈퇴하고 싶다”고 했다.

법인택시 사납금은 2000년 이후 2년에 한 번꼴로 모두 9차례 인상됐다. 마지막으로 오른 해가 2017년이다. 이에 비해 기본요금은 2000년 이후 지난 16일 오른 것을 포함해 모두 5차례 올랐다. 법인택시 기사들은 그동안 기본요금 오른 것 없이 사납금만 오른 데 불만이 컸다. 주아무개(63)씨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노조와 협의도 없이 사납금을 세 번이나 올렸다”며 “당시 사납금 인상 요인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 택시를 대중교통도 아니고 고급 교통수단도 아니게 어정쩡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주씨는 이런 폐해를 해결하려면 국가에서 정밀한 데이터를 가지고 표준 고시를 만들어 하루빨리 월급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택시, 한때는 잘나갔는데…

“나이 좀 든 막노동하는 사람들이 술 한잔하고 택시 타면, 정치 얘기하면서 자기네들끼리 싸운다고. 그러다 ‘아저씨 맞아요, 안 맞아요?’ 하면서 나한테 물어봐. 그럼, 이쪽 얘기도 맞고 저쪽 얘기도 맞는 거 같다며 ‘간’을 맞춰주면서 ‘내가 그걸 알면 택시 안 합니다’라고 얼버무리지.”

황아무개(65)씨는 “옛날에는 정치인들이 기사들에게 여론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필요 없게 돼 소외감을 느낀다”고 했다. 한때 택시 기사들은 여론을 대변하는 ‘귀와 입’ 몫을 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택시를 타는 다양한 부류의 시민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심을 파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택시 기사한테 물어보는 것이었다.

한때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택시를 모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승차 거부와 불친절의 굴레만 뒤집어쓸 뿐, 그런 일을 인정해주는 사람도 없다.

황씨는 “요즘 ‘타다’가 고급 이동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여성들이 대우받는 느낌이 들어 좋아하는 것 같다”며 “이에 비해 택시는 타지 말라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황씨는 택시 기사를 비판하는 말을 쏟아냈다.

“택시는 말아먹고 할 거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많아서, 직업의식이 없다”며 “그래서 불법·탈법을 한다”고 자조했다.

김아무개(65)씨는 30년 전에 택시 기사를 하다가 그만 두고 건축일을 하다가 12월부터 다시 택시 기사를 하고 있다. 기자와 자주 대화를 나눈 그는 1980년대에는 결혼식을 하면 신혼부부가 택시를 타고 북악스카이웨이를 한 바퀴 도는 게 지금으로 치면 신혼여행이나 마찬가지였다며, 한껏 옛날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택시는 포니에 기본요금 500원이었는데, 120킬로를 밟으면 차가 달달 떨렸어. 에어컨도 없어서 여름엔 창문 열어놓고 다녔어.” 그는 “인천 연안부두로 회 먹으러 가거나 북악스카이웨이로 ‘부적절한 관계’의 손님을 태우고 가는 날에는 팁이 좀 생겼다”고 신이 나서 얘기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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