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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5> '불법반출된 한국유물을 반환합니다'… 독일 박물관의 양심[강구열의 문화재 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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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의 한국소장품 현지조사를 다녀온 국립문화재연구소 직원들은 흥미로운 보고서를 제출했다.

“소장처에서는 입수경로가 불법적인 것이 아닌가를 궁금해 한다.”

해당 유물은 16세기 말∼17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인석 한 쌍. 무덤에 있던 것이 유통된 과정에 불법성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며 우리 측에 문의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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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이 반환을 결정한 문인석 한쌍.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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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년이 지난 다음달, 이 문인석 한 쌍이 국내로 반환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조선시대 문인석 한 쌍이 로텐바움박물관과 함부르크 주정부, 독일 연방정부의 자진반환 결정에 따라 3월말 국내에 돌아올 예정”이라고 21일 밝혔다. 불법유통이 의심되는 소장품의 출처와 성격을 먼저 나서 원산지 국가에 문의하고, 자체 조사를 거쳐 반환 결정까지 내린 극히 이례적인 사례다. 문화재 반환의 모범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불법적으로 유통된 소장품을 가졌다”…박물관의 용감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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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로텐바움박물관 전경. 로텐바움박물관 제공


문인석은 1987년 로텐바움박물관의 소장품이 됐다. 1983년 한 독일인 업자가 서울 인사동 골동상에게 사서 독일로 반출한 것을 이 때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대로라면 소장 과정에서 불법성을 확정하기는 힘들다. 로텐바움박물관이 주목한 것이 문인석이 정상적으로 유통이 가능한 유물인가 하는 점이었다. 2016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직원들에게 물어본 그 내용이다.

문인석은 ‘무덤의 수호자’라는 성격을 가진다. 조상숭배의 전통이 강한 한국이나 중국에서 문인석을 포함해 무덤 주변에 배치한 석물을 바깥으로 내돌려 거래하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이유다. 상황이 바뀐 건 일제강점기 때였다. 일본인 골동상을 중심으로 석물을 빼돌려 시장에서 유통하기 시작했고, 이런 관행은 도난문화재 관리가 허술하고 인식이 저조했던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는 전반적인 상황일 뿐 로텐바움박물관의 문인석이 불법적으로 유통되었다는 걸 특정하는 건 아니었다.

로텐바움박물관은 자체 조사 끝에 1983년 독일 반입 당시 문인석이 이사용 컨테이너에 이불을 둘둘감고 숨겨져 들여온 정황을 포착했다. 불법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뒤엔 문인석을 한국에 돌려놓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해외문화재 환수를 전담하는 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반환요청서를 제출하면, 적극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2018년 3월 전달한 반환요청서에서 재단은 “도난, 불법반출 등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특정할 수 없으나 시기를 알 수 없는 때에 불법적으로 반출된 도난품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며 “(반환한다면) ‘기증’ 방식을 취하고, 국립민속박물관에 양도해 자발적인 반환사실을 명문화해 상설전시토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함부르크 주정부의 자산인 문인석은 주정부와 독일 연방정부의 승인까지 거친 끝에 다음달 말 국내로 들어온다.

현재 로텐바움박물관은 문인석을 ‘우리 코리아’(Uri Korea) 전시회에 내놔 자국 관람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전시 패널에까지유통과정에 불법성이 있다는 점을 밝혔고, 안내를 하면서 한국에 반환된다는 점을 알리고 있다. 전시회를 공동주최한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유물 취득 과정의 불법성을 밝힌 패널 문안을 작성해 왔길때 상당히 의외라는 생각을 했었다”며 “불법성을 알게 된 이상 그냥 묻어두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1879년에 설립된 로텐바움박물관은 유럽의 대표적인 민족학박물관이다. 소장유물은 35만여 점에 이르며 이 중 2711점이 한국유물이다.

◆“문화재 불법유출에 무심, 스스로 반성해야”

“문화재에 대한 불법유출이 오랫동안 사소한 범죄로 여겨져 왔고, 박물관 스스로도 자세히 살피지 않고 되묻지 않았다.”

로텐바움박물관 바바라 플랑켄스타이너 관장은 문인석 반환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불법 유출이 명백한 유물들은 세계 곳곳에 적잖이 퍼져 있고, 원산지 국가의 반환 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우리 문화재 중에도 이런 것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약탈문화재로 꼽히는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의 ‘오구라컬렉션’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999∼2002년 4차례 걸쳐 어렵게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접근조차 어렵다. 1918년 일본인 사업가 오쿠라 기하치로가 빼내간 경기도 이천오층석탑은 지금도 오쿠라 호텔 소장으로 남아 있다. 이천오층석탑환수위원회가 구성돼 반환을 요구하며 수십차례 협상을 벌이기도 했지만 오쿠라 호텔은 요지부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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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오층석탑. 세계일보 자료사진


문화재의 불법 유통을 제재하는 국제적 규범이 있기는 하다. 1970년 11월 채택된 유네스코의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이 그것이다. 하지만 강제력을 갖는 것은 아니어서 효력이 제한적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시장에 나돌 유물이 아니다’라는 일반적인 정황을 전제로 불법유출을 의심하고, 자체 조사를 통해 이를 확인했으며 반환까지 스스로 나선 로텐바움박물관의 태도는 이례적이다.

재단 김홍동 사무총장은 “로텐바움박물관의 반환결정은 소장품의 취득과정 중 ‘원산지에서 불법적으로 반출되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확인하기 위한 노력에 따른 것으로, 문화재 자진 반환의 모범적 사례”라며 “전 세계 많은 소장기관들, 국가들로 전파돼 유물의 출처 확인 등 주의 의무를 보다 철저히 살피고 이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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