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눈엣가시’ 귈렌 세력 지우기… 에르도안, 대대적 체포작전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때 정치적 동반자였던 귈렌, 2016년 쿠데타 배후 지목 등 탄압

美도피후 20년간 터키 못돌아와

에르도안 “바이러스 박멸하겠다”… 일주일새 또 지지세력 체포나서

동아일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016년 7월 발생한 ‘군사 쿠데타’를 6시간 만에 진압한 뒤 곧바로 배후를 지목했다. 이슬람 사상가 중 가장 영향력이 큰 펫훌라흐 귈렌(78). 한때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친구였으나 이 순간부터 최대 정적으로 엇갈렸다.

“모든 국가기관에 암처럼 퍼져 있는 귈렌 바이러스를 박멸하겠다.”

쿠데타를 진압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런 모토로 ‘귈렌 바이러스 박멸 작업’을 시작했다. 2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작업은 지속되고 있다.

19일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터키 수사당국은 앙카라, 이스탄불 등 주요 도시에서 총 324명에 대한 체포 영장 집행에 나섰다. 1112명에 대한 체포 작전에 나선 지 불과 일주일 만이다. 체포된 이들 중에는 전·현직 경찰 및 공무원도 상당수 포함됐다. 대대적인 체포작전을 두고 터키 정부는 “귈렌 바이러스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21세기 술탄을 꿈꾸며 권위주의적 통치를 벌이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귈렌은 ‘콤플렉스’에 가깝다. 귈렌은 1999년 병 치료를 명목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로 건너간 뒤 지금까지 터키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20년 가까이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귈렌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 전쟁’까지 감수할 정도다. 터키 정부는 쿠데타 당시의 귈렌 추종세력이던 ‘펫훌라흐 테러조직(FETO)’을 도왔다는 이유로 지난해 8월 미국인 목사를 체포했고, 미국 정부에 귈렌과 맞교환을 요구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터키산 알루미늄과 철강에 대한 관세를 올렸고, 터키 경제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그 정도로 귈렌은 에르도안에겐 아킬레스건에 해당한다.

귈렌은 21세기 이슬람 사상가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힌다. 이맘(이슬람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평생 교육을 통한 사회개혁, 나눔과 봉사를 통한 빈곤 퇴치, 터키어로 봉사를 뜻하는 ‘히즈메트(Hizmet)’ 운동으로 이슬람의 현대적 가치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노력을 벌여 왔다.

귈렌은 소수 종교인 및 공동체를 가리지 않고 대화와 협상을 바탕으로 한 사회 통합을 추구해 왔다. 이 때문에 이슬람 전통에서 ‘자유와 민주’라는 서구적 가치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사회 통합을 추구하는 데 걸림돌이었다. 지금도 귈렌의 사상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후원금으로 세계 150여 개국에서 교육기관과 기업, 비영리기구 등이 운영되고 있다.

한때 에르도안 대통령과 귈렌은 정치적 동반자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1년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하고, 2003년 총리에 올랐을 당시 귈렌과 그의 지지 세력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2013년 에르도안 대통령이 대통령중심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제왕적 대통령’을 꿈꾸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귈렌 지지자들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부정부패’ 문제를 제기하자 에르도안 지지 세력은 귈렌이 ‘국가 안의 또 다른 국가’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에르도안 대 귈렌’의 세력 싸움이 시작됐고 쿠데타가 발생했다.

귈렌은 “아무 증거도 없이 수천 km 떨어진 곳에 있는 나를 쿠데타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고 부인하지만 에르도안은 귈렌의 송환과 추종세력의 탄압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등 외신들은 19일 “터키 정부가 이달 들어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나선 것은 다음 달 지방선거를 앞두고 귈렌 추종 세력들의 결집을 막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