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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세상말세]"서장 나오라고 해"…술이 벼슬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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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사고 뒤 "집 가게 내차 내놔라" 뻔뻔

"서장 나와라" 행패는 기본…경찰관 폭행도

끊이지 않는 주취 민원에 업무 마비

일선 경찰 "주취처리 전담반 만들어야 할 정도" 토로

아시아경제

지난해 12월24일 밤 12시가 넘어선 시간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왜 노숙인을 놔두냐'며 서울 중구의 한 파출소를 찾아 난동을 부리고 있다. 매일 수십건의 주취 관련 민원에 일선 경찰관들은 "주취 전담반이 있어야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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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전진영 수습기자] "내가 우습게 보여? 서장 나오라고 해!"


지난 12일 새벽 3시 서울용산경찰서. 1시간 넘게 경찰서장을 호출하던 김모씨가 결국 '관공서 주취소란' 혐의로 형사입건 됐다. 김씨는 같은 날 새벽 용산구 서빙고동에서 음주운전을 하던 중 주차된 차량과 접촉 사고를 냈다. 사고경위를 묻는 경찰관의 질문에 A씨는 횡설수설했고, 정상적인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경찰은 김씨에게 "술이 깨면 다시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A씨는 "집에 가려면 차가 필요하니 내 차를 내놓으라"며 적반하장으로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경찰서 등 관공서에서 고성방가를 하거나 행패를 부릴 경우 관공서 주취소란으로 6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지난 13일 오전 9시께 서울남대문경찰서 입구에선 60대 박모씨가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자신을 국가유공자라고 소개한 그의 가방엔 태극기가 꽂혀있었다. 그는 "나를 모욕하는 것은 숭례문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소리치며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경찰의 만류에도 박씨의 난동은 1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결국 관공서 주취소란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공공장소나 기관 내부에서 주취 상태로 행패를 부리는 일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경찰서로 연행된 뒤에도 난동을 부려 경찰 업무를 마비시키는 일이 반복되자,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선 "주취처리 전담반을 만들어야 할 정도"라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주취 범죄는 경찰 본연의 업무를 마비시켜 애꿎은 시민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실제 용산구의 한 파출소에서는 강력사건이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도 즉각 출동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당시 모든 인력과 차량이 주취자 관련 민원으로 현장에 나가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근 지구대에서 차량과 인원을 지원받은 뒤에야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 파출소 관계자는 "주취자가 파출소에 구토한 것을 치우는 일도 결국 우리 몫"이라며 "매일 주취 관련 출동으로 경찰 업무의 반 이상을 빼앗기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5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자신을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이라고 밝힌 청원인이 "3년간 주취자에게 이유 없이 맞은 사례가 스무 번이 넘는다"는 호소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경찰이 매 맞으면 국민을 보호하기 어렵다. 경찰관 모욕죄, 경찰관 폭행 협박죄를 신설해 강력하게 처벌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검거된 공무집행방해사범 6만3347명 가운데 71%(4만4956명)가 술에 취한 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전진영 수습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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