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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남·북 정상회담 전후 땅값 3배로…매물 나오기 무섭게 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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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가 외지인 땅…민통선 토지에 부는 투기 바람

“주인도 못 가는 비무장지대, 지적도만 보고 ‘묻지마’ 구입”

작년 가장 큰 폭 상승…땅 빌려 농사짓는 농민들은 ‘불안’

경향신문

19일 임진강 북쪽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인 경기 파주시 장단면에서 주민들이 농경지를 바라보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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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경기 파주 군내·장단·진동·진서면은 임진강 북쪽에 위치해 한동안 버려진 땅이었다. 특히 진서면은 대부분의 관할 행정구역이 비무장지대(DMZ) 안이어서 이른바 ‘지뢰밭’으로 불리며 눈길조차 주지 않던 곳이었다. 그러나 분단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냉·온탕을 오가는 남북관계 상황이나 주변 지역 개발에 따라 땅값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외지인들의 타깃이 돼왔다.

왕래도 자유롭지 않고 심지어 일부 지역은 아예 출입이 불가능한 데다 어떠한 개발 행위도 허용되지 않는 토지지만 이 같은 분위기는 수차례 이어져 왔다. 2012년부터는 이들 지역 토지주들의 “사유재산을 지나치게 통제한다”는 민원을 받아들여 토지거래 규제가 사실상 해제되면서 투기자금 유입이 본격적으로 늘었다.

파주시 출장소가 있는 군내면 지역의 예를 들면 2006년부터 2010년까지는 연간 100여건의 토지 거래가 성사됐다. 2011년부터는 거래폭이 증가하면서 지난해까지 평균 300여건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역 부동산중개인들은 전한다. 3.3㎡(1평)당 거래가격은 남북관계에 따라 최저 4만원대에서 지난해에는 최고 40만원대까지 널뛰기 거래가 이뤄졌다. 이 때문에 민통선 이북 지역 토지를 두고 “땅주인 대부분은 서울 사람”이라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그간 외지인들이 이 지역 토지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가 언론에 공개된 적은 없었다.

임진강 북쪽 이들 4개 면의 사유지 중 외지인 소유로 확인된 55㎢ 토지(전체 사유지 71%)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땅값 차익을 기대하고 타 지역에서 사들였다고 볼 수 있다. 파주에 거주하면서 직접 경작하지 않는 토지주들까지 감안하면 영농이 아닌 지가 상승을 목적으로 매입한 토지들은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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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민통선 북쪽 토지는 1000㎡(약 330평) 미만은 주말농장용으로 전국에서 누구나 매입이 가능하다. 그 이상의 면적은 관할 자치단체에 농지취득 자격증명원을 제출해야 하지만 토지를 임대 경작하겠다는 서류만 제출하면 된다. 외지인들은 인근 농민이나 이곳 땅을 위탁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에 임대 경작을 맡기고 땅을 매입하고 있다.

4개 면 지역 토지 값은 지난해 가장 많이 올랐다. 거래 건수도 지난해 9월 말까지 958건에 달해 전년 한 해 동안의 748건을 훌쩍 넘었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인한 호전된 남북관계 분위기를 고려하면 연말까지 거래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주 한 부동산중개인은 “그동안 여러 차례 민통선 이북 지역 땅값이 널뛰기를 했지만 작년에 가장 큰 폭으로 급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진서면은 땅 주인도 가볼 수 없는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해 있는데 외지인들은 지적도만 보고 ‘묻지마’ 식으로 구입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판문점에서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한 3개월 사이에 땅값이 갑자기 2~3배가량 올랐고 매물이 나오기가 무섭게 서울 등 외지인이 매입했다”며 “요즘에는 토지주나 매수 희망자 모두 땅값이 너무 올라 눈치를 보는 분위기이지만 외지인들과의 거래는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동산중개인도 “작년에는 임진강 남쪽보다 휴전선이 가까운 북쪽 땅이 더 비싸게 매매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그 가격은 아직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들 지역 땅값은 위치에 따라 2017년 평균 3.3㎡당 7만~15만원에서 15만~4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위치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DMZ 내 땅값은 상승률로 보면 이를 앞지른다. 진서면 토지가는 같은 기간 3.3㎡당 평균 2만원 수준에서 7만~8만원대로 최고 4배가량 급상승했다.

임진강 이북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지역 농민들 대부분은 남의 땅을 빌려 영농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기 때문에 지가 상승은 고민거리다. 농민 ㄱ씨(58)는 “농사라는 게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한데 최근 토지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땅 주인이 언제 바뀔지 몰라 불안감이 크다”며 “이곳 농민들은 농지 임차를 땅 주인과 1년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더더욱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민 ㄴ씨(57)는 “청정 농산물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투기장으로 변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 정부가 남북 화해와 교류도 좋지만 한시적으로라도 투기억제 정책을 고민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파주시 문산읍 한 부동산중개인은 “민통선 이북 토지는 자연환경보전지역,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다양한 토지이용 규제를 받고 있고, 개발도 불가능한 데다 맹지가 많기 때문에 묻지마 식으로 이들 지역 토지를 매입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선임기자 sh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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