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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Law&Life] '동전 모욕' 당한 후 숨진 택시기사… 승객의 죄는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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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양은경 법조전문기자·변호사


70대 택시기사가 30대 승객에게 이른바 '동전 조롱'을 당한 뒤 사망했다는 사건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이 택시기사는 지난해 12월 8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승객이 이동 경로에 불만을 품고 반말과 폭언을 했다. 동전 여러 개를 꺼내 택시기사에게 던지기도 했다. 그 직후 경찰에 신고한 택시기사는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고 결국 숨졌다. 사인(死因)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경찰은 최근 승객에게 폭행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동전을 던진 것 외에 다른 신체 접촉은 없었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유족들이 반발했다. 지난 15일 "폭행도 인정되고 사망한 피해자도 있는데 왜 폭행치사가 아니냐"며 국민청원을 올렸다. 이 청원엔 19일 현재 10만명이 넘게 동의했다. 폭행치사는 법정형이 징역 3년 이상인 데 비해 폭행은 징역 2년 이하이고,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된다. 유족들은 형량이 무거운 범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 사건에 폭행치사까지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치사(致死)의 책임까지 물리려면 승객의 행동으로 기사가 사망했다는 인과 관계가 필요한데 그런 증거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인과관계가 인정되려면 예견 가능성, 즉 동전을 던져 택시기사가 사망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을 승객이 예견해야 한다"고 했다. 기사가 심장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서도 승객이 동전을 던졌을 경우 어느 정도 예견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동전을 던진 게 폭행은 맞지만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다고(폭행치사)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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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1970년대 한 고교 교사가 학생의 잘못을 고치겠다며 빰을 때렸는데, 학생이 뒤로 넘어져 사망했다. 이 학생은 두개골 두께가 비정상적으로 얇았고 뇌수종까지 앓고 있었다. 대법원은 "사망 결과를 예견할 수 없었다"며 폭행치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 관계자는 "사망에 대해 도덕적 책임이 아닌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양은경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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