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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노후 경유차라 운행 제한" 달랑 우편물 한통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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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단계 조치’ 불만 쇄도

환경부, 법 시행 앞두고 통보

예산 모자라 저감장치 장착 지연

정부 “신청만 하면 단속 면제” 후퇴

“효과도 없이 혼란만 키운 꼴”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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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서울 도심을 지나는 강변북로에서 무인카메라가 노후 경유차를 단속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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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식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타는 조태상(54)씨는 최근 우편물 한 통을 받았다. 차량이 5등급으로 분류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 시 운행이 제한된다는 내용이었다. 단속 대상에서 제외되려면 저공해 조치를 신청하라는 안내문도 있었다.

조 씨는 “통보를 받고 담당자에게 문의하려고 했지만 사흘째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며 “인터넷을 검색하면 폐차 광고만 뜨는데 당장 차를 팔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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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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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미세먼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노후 경유차에 대한 운행 제한이 본격화됐다. 노후 경유차는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200만 대가 넘는 노후 차량주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별법과 함께 친환경등급제 시행에 따라 5등급으로 분류된 차량(전국 269만 대, 수도권 97만 대)은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면 서울 시내 도로를 다닐 수 없다.

강력한 조치처럼 보이지만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 당초 환경부와 서울 등 수도권 3개 시·도는 5등급 차량 운행 제한을 동시에 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인천·경기도의 관련 조례 제정이 늦어지면서 결국 서울만 시행하게 됐다.

인천·경기는 빨라야 올해 하반기에나 시행이 가능하다. 또 5월까지는 5등급 차량 중 수도권에 등록된 2.5t 이상 차량 40만 대만 금지되고, 2.5t 이하 차량은 단속이 유예된다. 6월은 돼야 수도권 이외 전국의 5등급 차량이 서울에 들어오지 못한다.

저공해조치 신청서만 내도 단속 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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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등급차량으로 분류된 차주에게 발송된 저공해조치 신청서. 신청서만 내면 과태료 부과가 유예된다.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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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5등급 차도 운행할 수 있는 '편법'을 정부가 제공했다. 매연저감장치 부착 신청서만 접수시키더라도 단속을 면제해 주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운행이 금지된 노후 경유차에 대해 지원금을 받고 조기 폐차하거나 운행하려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하는 등 저공해 조치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전국 5등급 차량 중 저공해 조치를 하지 않은 차량은 245만 대나 된다.

문제는 저공해 조치 예산이 부족한 데다 사업을 하지 않는 지자체도 있어 언제 저감장치를 달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저감장치가 개발되지 않은 차종도 적지 않다. 포털과 각종 자동차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5등급 통보를 받은 차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5등급 차주 A씨는 “노후 차량이라곤 하지만 대책도 없이 갑자기 운행을 중지시키면 어떡하냐”며 답답해했다. 환경부 교통환경과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제대로 된 안내도 없이 환경부로 문의하라고 책임을 돌리는 탓에 밀려오는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15일 기준으로 총 3만7831건의 저공해 조치 신청서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아직 전국적으로 법 시행에 대한 안내가 제대로 안 된 데다 점차 운행 제한 조치가 강화되기 때문에 저공해 조치 신청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는 “신청서만 내면 저감장치를 달아줄 때까지 단 것으로 간주하고 단속을 면제해 주는 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결국 그런 노후 차들이 내뿜는 미세먼지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저감에 큰 효과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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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서초구 반포대교 남단 인근 올림픽대로 전광판에 저공해 미조치 차량 단속을 알리는 문구가 나오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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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5월까지 단속이 유예된 2.5t 이하 차량을 빼고, 특별법 시행 이전에도 단속 대상이었던 2005년 이전 등록 경유차 32만 대를 제외하면 특별법 시행으로 당장 운행 제한을 받는 차량은 8만여 대뿐이다. 그나마 저감장치 신청서를 제출한 차량까지 빼면 단속 대상은 더 줄어들게 된다.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환경부와 지자체가 제대로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미세먼지특별법을 시행하려다 보니 노후차 운행 제한을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미세먼지 저감 효과도 없이 혼란만 키운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노후차 운행 제한 제도의 효과를 놓고도 논란이 많다. 1년에 열흘 미만일 것으로 예상되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시에만 노후차 운행을 규제하는 건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는 데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장재연 아주대 예방의학교실 교수(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대기정체 상황에서 미세먼지 오염도가 높아진 뒤에 차량 운행을 제한해봐야 미세먼지 농도는 줄지 않는다”며 “비상조치로 시민들에게 혼란을 주기보다는 평상시에 오염원을 줄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예비 저감조치 첫 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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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지난달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주차장이 차량 2부제 시행으로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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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20일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서울·인천·경기(연천·가평·양평군 제외) 등 수도권 지역에 고농도 미세먼지 예비저감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예비저감조치는 지난해 11월 수도권에 도입된 이후 첫 발령으로, 이틀 뒤 비상저감조치 발령 가능성이 높을 경우 하루 전부터 공공부문이 선제적으로 미세먼지를 감축하는 조치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은 차량 2부제(짝수 차량 운행) 등 조치를 하게 된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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