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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깨끗한 쓰레기는 ‘돈’…포장재 단순화, ‘폐기물 대란’ 막을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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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닐 재활용 업체 르포

경향신문

지난 18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재활용업체 명원테크 공장에서 직원이 선별된 폐비닐을 분쇄기에 넣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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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닐은 용융기에서 검은 색소와 섞여 플라스틱 반죽으로 변하고, 4~5㎜ 크기의 플라스틱 펠릿으로 모양이 잡힌다. 자루에 담긴 펠릿은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돼 하수도관 등의 재료가 된다(위부터). 김정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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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하게 흘러나오는 게 꼭 가래떡처럼 생겼죠?” 시커먼 ‘떡’ 반죽이 김을 모락모락 내며 쏟아졌다. 컨베이어를 타고 자리를 옮기더니 이내 동글납작한 모양으로 알알이 쏟아져 나와 커다란 마대 자루에 담겼다. 비닐조각이 나풀거리는 너른 공간에선 쿵덕쿵덕 시끄러운 기계음이 메아리쳤다. 방앗간이 아니라 ‘쓰레기’를 가져다 ‘산업 재료’로 만들어 수출하는 재활용업체 공장의 모습이다. 지난 18일 방문한 경기 화성시에 있는 재활용업체 명원테크도 2017년까지 폐비닐을 가져다 압축해 중국으로 수출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폐기물 수출은 그만두고 6월부터 수거한 폐비닐을 플라스틱 펠릿(물질을 압축해 만든 작은 조각)으로 가공해 수출하고 있다. 중국으로의 폐기물 수출이 막히면서 찾아낸 돌파구다.

지난해 1월 중국의 폐플라스틱 수입금지 조치 이후 봄에는 재활용 폐기물 대란, 최근에는 필리핀 폐기물 불법 수출 사건에 이어 불법·방치 폐기물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폐기물 단순 수출업체들도 재활용업체로 ‘업종 전환’ 시도가 늘고 있다. 재활용 시스템의 말단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현상으로 표출된 것들이다. 쓰레기도 돈이다. 그러나 재활용 상품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포장 단순화를 통해 쓸모없이 버려지는 쓰레기를 줄이는 게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 쓰레기도 돈이 된다

가정에서, 공장에서 버려지는 재활용 쓰레기도 알고 보면 돈이 된다. 2314㎡(약 700평) 남짓한 2층짜리 컨테이너 건물에 들어서자 뻥 뚫린 공간에 컨베이어 시설과 천장까지 치솟은 두툼한 파이프관이 눈에 들어왔다. 업체에선 매일 15t가량의 폐비닐을 가져와 10t 정도의 플라스틱 산업 재료를 만들어내고 있다. 공장 한쪽에 일반 마대 자루의 세 배는 됨직한 자루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롤에 만 산업용 비닐부터 만두 포장재, 마스크팩 포장지, 세제 봉지까지 온갖 비닐 포장재들이 삐져나왔다.

채춘희 명원테크 실장은 “제조업체 공장에서 나온 비닐 롤부터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쓰레기까지 재활용 가능한 폐비닐류는 모두 가져오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비닐들은 쓸모에 따라 다시 선별된다. 잘 녹지 않거나 이물질이 섞인 것들을 빼내는 것이다. 나머지를 파쇄기로 보내면 10㎝ 남짓한 크기로 쪼개지고, 관으로 빨아들여 2층에 있는 사일로에 쌓는다. 사일로라고 하면 곡물창고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알곡 대신 형형색색의 비닐 조각들이 30초마다 배출된다. 다시 1층의 용융기에 부어 280~300도의 고열에 녹이고, 검은 색소를 더하면 플라스틱 반죽이 기계에서 흘러나오게 된다. 성형기계로 들어가 4~5㎜ 크기의 초코 칩처럼 생긴 펠릿으로 쏟아져 나온다. 마대 한 자루에 담기는 양만 700㎏. 평택항으로 실어가 매주 컨테이너 한 대에 25t씩, 3대 분량이 중국 톈진항으로 수출된다. 중국 업체에서는 이를 받아 흔히 하수도관으로 쓰이는 폴리에틸렌(PE)관을 만들어낸다.

이 업체가 한 달에 들여오는 폐비닐류만 400t. 이물질 혼입 수준에 따라 비닐 매입단가가 결정되는데 ㎏당 100~400원 정도다. 가공한 플라스틱 펠릿은 컨테이너 한 대당 1000만원 정도 받는다. 분리 배출된 비닐포장재가 수거-선별-가공의 재활용 과정을 거쳐 어엿한 수출 상품이 되는 것이다. 다른 플라스틱 재질도 업체에 따라 극세사섬유, 기와, 바닥재, 용기 등으로 다양하게 재활용된다. 버려지는 폐기물 양 자체를 줄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공장에서만 매일 들어오는 15t의 비닐 중 5t이 태우거나 고형연료(SRF)로 만드는 과정으로 넘어간다. 2017년까지 중국이 전 세계의 폐기물을 받아줄 때는 폐기물 상당량이 수출로 소화됐지만, 지난해 중국이 문을 걸어 잠그면서 국내 쓰레기들이 갈 곳을 잃고 있다. SRF도 미세먼지를 유발한다는 우려로 보급에 제동이 걸렸다.

■ 깨끗한 쓰레기가 우수한 재활용 상품 만든다

“제가 재활용업체에서 10년 일했는데 필리핀 불법 수출 사건 같은 일은 지난해 처음 들었어요. 저희 업체도 스크랩(폐기물) 수출은 포기하고 설비 들여와서 펠릿 가공으로 방향을 바꾸긴 했죠.” 폐기물업계 동향에 대한 채춘희 실장의 설명이다. 지난해 중국으로 가던 물량이 90% 넘게 급감하면서 동남아로 폐기물이 몰려가고,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이 개입해 불법 수출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다. 문제는 왜 해외까지 흘러가게 됐냐는 것이다. “불법 수출 물량은 애초에 품질이 안 좋아 재활용이 아니라 소각이나 고형연료로 가야 하는 물건입니다. 예전에 유가가 높을 때는 고형연료 수요도 있고, 수출도 막힘없이 돼서 폐기물 처리 비용이 t당 7만~8만원 선이었어요. 그런데 지난해 15만원까지 올랐어요. 국내 소각업체는 한정돼 있는데 폐기물은 계속 쏟아지니 여기저기 쌓아두기도 하고 문제들이 터져나오는 것이죠.” 지난달 폐기물 전수조사에 참여했던 송진상 한국환경공단 차장은 “이전에는 중국에서 물량을 다 받아주고 폐기물 가격도 괜찮았는데, 쌓이는 물량은 늘고 값도 떨어지다보니 재활용업계에 연쇄적으로 파급이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재질 합쳐진 비닐 많아

일일이 만져보며 골라내야

선별 공정에 인력 절반 투입

폐비닐 3분의 1은 재생 불가


업체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은 재활용 물질의 품질을 좌우하는 ‘선별’이 됐다. 명원테크에서도 공정라인의 10명 중 5명이 선별 작업에 투입된다. 일반 시민들은 포장을 뜯어 버리면서 비닐류로 뭉뚱그려 배출하지만, 실제로는 포장재 하나에 8가지가 넘는 재질이 합쳐진 경우도 있다. “만져봐야지 달리 방법이 없어요. PE(폴리에틸렌) 계열은 부드럽고, PP(폴리프로필렌)는 바삭한 소리가 나요. 또 LDPE(저밀도폴리에틸렌)는 소리가 안 나는데 HDPE(고밀도폴리에틸렌)는 바스락거리죠. 그래도 구별이 안되면 태워봅니다. 그을음이랑 연기가 다르거든요.” 신현광 명원테크 이사가 포장재를 비벼가며 설명했다. 비닐들 중 가장 안 좋은 것이 마스크팩 포장지처럼 내부 은박이 된 것들이다. 잘 타지도 않고 섞이면 펠릿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업체에선 PE, PP, PA(폴리아미드) 계열 위주로 2~3가지 비닐류는 활용이 가능하지만, 여러 재질이 붙어있으면 일일이 떼어내거나 따로 골라내야 한다. 이렇게 선별한 것들이 최종적으로 태워지기 때문에 애초에 양을 줄이기 위해선 재질이 단순해야 하는 셈이다.

복합 재질은 제품 보존을 위한 것도 있지만, 보기 좋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같은 양의 비닐이라도 재활용 대신 쓰레기로 버려지는 양을 늘린다. 이 때문에 환경부는 지난해 5월 재활용 폐기물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포장재 단순화를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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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기물 수출, 신고에서 허가로

작년 초 중국 수입금지 조치

기존 업체 ‘업종 전환’ 모색

플라스틱 재가공 설비 투입

‘산업 재료’ 만들어 수출 판로


장기적으로는 배출되는 쓰레기의 양 자체를 줄이고, 포장 재질도 재활용이 쉽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저기 쌓이고, 해외까지 흘러가는 불법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당장의 대책이 필요하다.

‘PE RECYCLED PELLET’. 명원테크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의 품목이다. 이전에는 폐플라스틱 등 폐합성수지류는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관세청에 신고만 하면 수출을 할 수 있었다. 업체들이 관세사를 통해 관련 수출 업무를 대행하게 한 뒤 서류만 받으면 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허가’제로 바뀐다. 한국 관세청뿐만 아니라 수입 국가 세관에서도 동의를 얻어야 한다. 불법 쓰레기 수출을 막기 위해 절차를 강화한 것이다. 합법적인 수출 업체들은 절차가 조금 복잡해져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질서를 흔들던 불법 수출 업체들을 규제하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방치·불법투기·불법수출 폐기물을 처리하고, 재활용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불법폐기물 처리 및 발생 예방을 위한 종합대책’을 21일 발표한다. 강대준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사무관은 “수출 폐기물의 이물질 혼입 비율 기준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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