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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자치회장의 머슴이었다" 70대 아파트 경비원의 한(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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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제주시 모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

입주민 A씨 자치회장 맡은 2014년부터 갑질 시작

자치회장 그만두고나서도 개인비서 부리듯이 대해

최근 계약연장 거부 통보받고 용기 내 의혹 제기해

제주CBS 고상현 기자

노컷뉴스

제주시 노형동 모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송모(70)씨가 18일 밤 경비실에서 취재진을 만나 "전 자치회장으로부터 수년간 갑질 피해를 당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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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자치회장의 갑질로 수치심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경비원이라고 하지만 나이도 저보다 12살 어리고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저한테 왜 그런건지…."

2009년부터 제주시 노형동 모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송모(70)씨의 말이다. 그는 18일 저녁 경비실에서 CBS노컷뉴스 취재진을 만나 수년간 아파트 전 자치회장이자 입주민인 A(58)씨로부터 수차례 갑질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갑질은 A씨가 아파트 자치회장을 맡았던 2014년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자치회장 권한 밖의 일을 수시로 지시하고,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자르겠다고 엄포도 늘어놨다는 것이다.

"'내가 자치회장이니깐 왕이다. 내가 월급 주는 거야. 그만두게 할 수도 있어'라고 말하더니 자질구레한 잡일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송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A씨는 "회장 체면에 쓰레기를 갖다 버릴 수 없으니 집에서 쓰레기를 치워 달라"고 하거나 "차를 운전해서 지하 주차장에 세워 달라"고 하는 등 개인 비서처럼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기가 지나갈 때마다 문 열고 나와서 큰 목소리로 인사하라고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수모를 견디지 못해 그만둔 경비원만 10여명에 달합니다."

송씨는 이처럼 갑질을 당할 때마다 휴대전화에 일시, 내용 등이 담긴 '일지' 형태로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노컷뉴스

송씨가 갑질 피해를 당할 때마다 작성한 일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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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7일 오후 7시20분 물을 안 줘서 화단에 있는 꽃이 시들었다며 근무 태만이라고 지적"

"2018년 7월 26일 오후 7시20분 야간 근무 시 엘리베이터에 손자국 난 것을 지적하며 '월급 처먹으면서 이것도 못 하냐'라고 폭언"

"2018년 8월 9일 낮 12시 내가 문을 열어준 것이 아닌데 '택배기사한테 왜 문열어 줬냐. 두고 보겠다'고 말함"

이는 송씨의 휴대전화에 담긴 비교적 최근에 작성된 일지 내용들이다.

2018년은 A씨가 아파트 자치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2016년 이후 2년이 지난 뒤였다. 자치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갑질이 지속됐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아파트에서 일했던 전 경비원과 시설 직원들도 A씨의 갑질이 "도를 넘어섰다"고 증언하고 있다.

2015년 아파트 경비원으로 4개월간 일하다 A씨의 갑질을 견디지 못해 그만둔 이모(69)씨는 제주CBS의 통화에서 "A씨가 머슴 부리듯이 대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2015년 7월 그만둔 아파트 시설 직원 진모(54)씨도 "A씨가 쉬고 있는 경비원에게 똑바로 앉으라고 소리 지르는 등 함부로 대해 그만둔 경비원들이 많았다. 한 경비원은 울면서 그만뒀다"고 기억했다.

송씨는 다음달 25일자로 10년 동안 근무해온 정든 일터를 떠나야 하는 처지다. 지난달 17일 열린 입주자회의에서 1년마다 이뤄지는 계약연장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송씨는 이 역시 A씨의 압력으로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동 대표가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이에 A씨가 입주자회의를 열었습니다. 나중에 계약연장 거부 통보를 받을 때 사유가 인사를 잘 못한다는 이유라는 얘길 듣고 황당했습니다."

송씨는 그만둘 땐 그만두더라도 다시는 자신처럼 갑질 피해자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했다고 강조했다.

"나이 들어서 일을 하기 때문에 A씨가 머슴 부리듯이 대해도 참았습니다. 이제 그만두게 된 만큼 저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용기를 내고 얘기를 꺼냅니다."

최근 송씨는 정의당 제주도당 갑질피해신고센터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 센터는 직후 A씨에게 사과를 요청하고, 입주자회의를 다시 소집해 송씨의 해고 문제를 재논의하라고 요구했다.

갑질 의혹 당사자인 A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모든 의혹에 대해서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A씨는 "경비원이 주장하는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앞으로 법적 대응을 통해 진실을 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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