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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빈집 106만호···입주자와 같이 늙어가는 신도시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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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21)
전국적으로 빈집이 106만호가 넘는다는 통계다. 전국의 주택 수가 2000만여 호에 미치지 못하는데, 빈집이 이 정도라니 놀랍기만 하다. 서울도 9만3000여 호가 넘는 빈집이 있다고 한다. 집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이렇게 빈집도 많은 서울의 이중적인 모습이다. 머잖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 빈집은 더 많아질 것이다. 특히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 한꺼번에 지어진 4대 신도시의 경우 앞으로 빈집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노후화 단계' 4대 신도시 아파트 중대형 많아
30대 후반 나이의 신도시 최초 입주자라면 지금 70대를, 40대 후반 입주자라면 80대를 앞두고 있을 것이다. 아파트의 노후화와 함께 거주자도 고령화해가는 것이다. 4대 신도시 아파트는 대부분 중대형 규모로 지어졌다. 분양가도 저렴했지만, 당시 중대형을 선호하는 유행을 타고 인기리에 분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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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신도시인 경기도 분당신도시 일대 아파트 밀집지역 전경. 1기 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진 지 30여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며 아파트가 노후화 단계로 들어가고, 인구구조도 바뀌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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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한 지 30년 정도 지나면 아파트는 노후화 단계로 들어간다. 입주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인구구조가 1~2인 가구로 급속히 변했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중대형 아파트보다 소형 아파트 수요의 증가로 이어졌고, 그 결과 대형 아파트가 중소형보다 가격 하락 폭이 더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렇게 인구구조가 변하고 경기가 침체되는 가운데 아파트 신규 물량이 줄어들지 않으니 노후화한 대형 아파트는 앞으로 가격하락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대형 아파트의 리모델링으로 소형과 중형으로 분할해 집주인이 거주하면서 세를 놓을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대형 아파트 분할 아이디어는 노후화 단계로 접어든 신도시를 타깃으로 삼은 듯하다. 그러나 빈 아파트가 남아도는 현실에서는 이런 대책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공사비 부담, 공사의 번거로움, 입주자 구하기의 어려움 등이 따를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아이디어로 등장한 것이 ‘한지붕 세대공감’이다. 고령자가 사는 주택의 남는 방을 대학생들에게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임대할 경우 리모델링 비용을 지자체에서 일부 지원하는 것이다. 고령자는 젊은이와 말벗도 하고 힘쓰는 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고, 대학생들은 저렴하고 안정된 주거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다.

그러나 이 또한 실적이 저조하다.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사람 간에 발생하는 모든 갈등 또한 공유한다는 것인데, 생면부지인 고령자와 대학생의 공생이 그리 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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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구조의 변화에 맞게 빈집을 채우기 위해 서울시에서는 '한지붕 세대공감'을 시행했다. 고령자 주택의 빈방을 인근 대학의 학생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면서 상생을 꾀하고자 했으나 실적이 저조한 상태다. [사진 청년주거포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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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신도시 아파트 중 재건축을 검토하는 단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희망 있게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재건축은 아주 단순한 계산으로 추진됐다. 재건축을 통해 지금보다 더 많은 세대를 지어 기존 거주자들이 입주하고 남는 물량을 분양한다는 시나리오다. 기존 거주자는 추가 비용이 없거나 부담하더라도 최소 비용만 한다. 이러한 재건축 방정식을 앞으로는 적용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의 전제 조건은 잉여분이 좋은 가격으로 잘 분양될 것이란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잉여분 분양 금액으로 기존 입주자들의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아파트 분양 시장을 보면 이러한 방정식이 불가능해 보인다. 이제 재건축을 하려면 입주자가 공사비를 모두 부담해야 할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신축 아파트의 재고 물량이 해마다 증가하는 데다 그동안 사업승인을 받은 아파트는 계속 지어지고 있다. 머잖아 재건축 조합 결성이나 정밀안전진단 통과를 ‘축하’하는 플래카드는 더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최근 기사를 보니 서울시에선 빈집을 매입해 리모델링하거나 재건축해 청년 주택, 신혼부부 주택, 주민 커뮤니티 등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도시재생은 주민 삶의 질을 개선하고 현재 서울의 청년 주거문제도 부분적으로 해결 가능한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본다. 이미 여러 지자체에서는 빈집을 철거해 그 공간을 주민들의 공용 주차장이나 텃밭 등으로 제공,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마구잡이식 아파트 건설, 빈집 양산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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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에서 마련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늘어나는 빈집에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방은 방치된 빈집이 불어나면서 범죄에 노출되고 마을이 황폐해질 수 있는 문제에 처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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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경우 도시재생의 차원에서 이런 빈집 대책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지방에 가보면 사정이 다르다는 걸 금세 느낀다.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주민의 대부분이 노인이다. 지방 마을 중엔 이미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경우가 많다. 많은 지방 도시와 마을이 수십 년 안에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고령자의 사망 탓도 있겠지만, 마구잡이로 지어지는 아파트도 빈집 양산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방치된 빈집은 금방 망가져 폐가가 된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마당은 순식간에 잡초가 무성해지고, 손길이 끊긴 집은 기울어지고 썩어들어 간다. 빈집은 시각적,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지만, 범죄의 위험도 상존한다. 특히 지방에 방치된 빈집은 문제가 심각하다. 앞으로 지방의 빈집은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도시 재생과 더불어 지방 마을 재생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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