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6 (화)

‘K좀비’ 밭에서 노는 좀비…남친 좀비…한복 입은 좀비, 귀엽고 짠하고 ‘별종’이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구에서는 공포·액션물 소재, 한국은 좀비에 ‘인간성’ 부여

사회 현상서 느끼는 불안 담아…2000년대 들어 영화·웹툰 등장

20~30대가 두꺼운 팬층 형성…‘B급’에서 시대성 있는 장르로

경향신문

지난 13일 개봉한 <기묘한 가족>은 농촌을 배경으로 좀비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가족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2011년 방영된 MBC 2부작 드라마 <나는 살아있다>에서 좀비가 된 할머니가 손녀를 품에 안고 있다. 올 초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좀비가 된 역병 환자들이 의녀의 몸을 물어뜯고 있다. 2009년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이웃집 좀비>의 한 장면.(위부터)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MBC·넷플릭스·인디스토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기괴하다. 분명 죽었는데 움직인다. 힘없이 걷다가도 어떨 때는 동물처럼 빠르게 뛰어다닌다. 이런 능력으로 살아있는 사람을 향해 달려든다. 물리면 그들처럼 변하게 된다. 그들을 못 움직이게 하려면 주로 뇌 등 머리 부위를 파괴해야 한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서인도제도 원주민의 주술로 ‘되살아난 시체’ 등을 뜻하는 좀비는 미국 영화 <화이트 좀비>(1932) 등 약 90년 전부터 영화로 등장했다. 그러나 당시 좀비들은 주술사에 의해 조종당하는 수동적 존재였고, 현재 잘 알려진 좀비를 탄생시킨 이는 미국 영화감독 조지 로메로(1940~2017)다. 로메로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시체들의 새벽>(1978) <시체들의 날>(1985) 등 일명 ‘시체 3부작’을 만들며 ‘좀비 장르의 아버지’가 됐다.

폭력과 기괴함이 가득 담긴 좀비 장르는 주로 미국 같은 서구에서 꾸준히 영화·드라마 등으로 제작됐고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좀비보다는 한이 있는 귀신이 공포 장르의 대세를 이뤘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과 게임 등이 발달하며 점차 국내에도 좀비 마니아층이 형성됐고, 현재 좀비는 문화계 한 축을 이루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영화나 방송·웹툰은 물론 서점에선 제목에 ‘좀비’가 붙은 책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왜 지금 좀비일까

경향신문

1981년 개봉한 강범구 감독의 영화 <괴시>의 한 장면. 좀비를 다룬 최초의 한국 영화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좀비 장르는 단연 영화 <부산행>(2016)이다. 국내에서만 누적 관객 1157만명가량을 동원한 <부산행>은 좀비 장르가 상업적으로 흥행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사실 한국 영화에서도 좀비는 꽤 오래전에 등장했다. 좀비를 다룬 최초의 한국 영화로는 죽은 용돌이가 되살아나 다른 인물들을 공격하는 이야기를 그린 <괴시>(1981·감독 강범구)가 꼽힌다.

<괴시> 이후 주춤하던 좀비 장르는 2000년대 들어 웹툰·독립영화에서 선보이기 시작했다. 총기 사용이 제한된 한국 사회에서 탄생한 좀비 장르는 서구의 전통적인 좀비 장르와는 조금은 다른 형태로 그려졌다. 깜짝 등장해 공포감을 주거나 총기 액션의 대상이던 좀비에게 ‘인간성’을 부여하고 좀비를 단순히 퇴치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좀비와 인간의 관계에 주목했다.

한겨레에 연재된 웹툰 <좀비의 시간>(2007) 속 좀비들은 자신이 좀비가 된 뒤, 또는 좀비로 변해가는 중에도 스스로 누구인지 안다. 옴니버스 영화 <이웃집 좀비>(2009) 중 <도망가자>에선 좀비가 된 남자친구가 자신의 연인을 감염시키지 않기 위해 좀비 본능을 억누른다. 2010년 연재를 시작한 다음 웹툰 <웨이크 업 데드맨>은 독자가 주인공인 좀비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했다.

2011년 방영된 MBC 드라마 <나는 살아있다>는 좀비들 사이에서 자신의 딸이나 손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할머니 좀비의 모습을 그린다. 모성애와 좀비를 결합시킨 것이다. <나는 살아있다>를 연출한 여인준 PD는 당시 “단순하게 좀비라는 말을 썼지만, 쭉 살아있는 인간을 표현하려고 했다”며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도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겉모양이 흉해도 다른 경우가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논문 ‘괴물의 변화: 문화세대와 한국형 좀비의 탄생’을 쓴 영화평론가 송아름은 “대체로 서구에서는 좀비를 죽은 자에 더 가까운 것으로 두고 인간이 살기 위해 해치워야 할 것으로 상정한다. 그래서 서구의 좀비 영화들은 좀비 사이에서 살아남는 과정과 살아남는 자들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며 “반면 <좀비의 시간> <이웃집 좀비> 등은 좀비가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 되면서 좀비가 죽임을 당할 때 오히려 그 죽이는 집단을 훨씬 더 부정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는 한 세대가 가진 사회에 대한 불신과 맞물린다”고 말했다.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좀비 장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들은 20~30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 대다수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난에 직면했고, 커져가는 빈부격차를 절감했다.

사회는 이들에게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등 별칭을 붙였다. 경제성장이 최우선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들은 스스로 취업하지 못한 자신들을 ‘잉여’라 부르며 자조했다. ‘움직이긴 하지만, 살아있지 않은 존재’ 좀비는 해치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아는 있지만, 쓸모없는 존재’ 잉여인 자신들을 투영할 대상에 더 가까웠다.

한편으론 노력하는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상실감·자괴감·스트레스 등을 잊기 위해 스릴과 통쾌함이 가득한 서구의 좀비 장르를 즐긴 요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편소설 <좀비들>(2010)을 쓴 소설가 김중혁은 “<전설의 고향> 속 귀신이 아니라 좀비가 등장하는 건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대중들의 욕구가 좀비를 처단하는 쾌감과 맞아떨어진 부분이 있다고 본다”며 “이런 면에서 시대가 원하는 장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결국 인간에 관한 이야기”

“좀비는 매우 흥미로운 존재다. 그들을 괴물이라고 칭하긴 하지만, 좀비는 한때 우리가 알고 지냈던 가족이나 친구, 지인이다. 그런데 더 이상 영혼이 없는 모습의 괴물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좀비는 무섭기도 하지만 슬픔도 자아내는 존재다. 이런 특징이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 영감을 준다. 때로는 좀비가 아닌 인간이 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좀비 장르는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여기에 판타지적 요소가 곁들여지면서 좀비 장르가 인기를 얻는 것 같다.”

경향신문

네이버 웹툰 <좀비딸>의 한 장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미국의 좀비 드라마 <워킹 데드>의 작가 겸 총제작책임자 안젤라 강은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일부 변형되긴 했지만 인간의 형상을 한 채 떼로 몰려다니고 약육강식, 인간의 이기심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좀비 세계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현대 인간 사회를 은유할 매력적인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좀비가 가득한 세상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사투를 그린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는 2010년 시작해 현재 시즌9이 방송되고 있다.

<워킹 데드>가 국내 시청자들에게 주목받으면서 국내 제작진도 본격적으로 좀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의 작가 김은희도 작품을 구상한 것은 2011년이라고 했다. 김은희는 “제가 좀비 장르를 워낙 좋아한다”며 “양반과 천민이 존재했던 계급사회, 신체 훼손이 불가한 유교적 가치관의 조선시대와 좀비가 만나면 독특하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좀비 입장에서는 왕이든 양반이든 천민이든 차별이 없는 만큼 오히려 평화로운 시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좀비를 가족들의 생계 수단으로 활용하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 <기묘한 가족>의 이민재 감독도 “시나리오를 10년 전부터 썼다”며 “(영화 속 주인공 좀비) ‘쫑비’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한다. 어떻게 보면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고 했다.

관객·시청자 수요 변화뿐 아니라 메르스 등 전염병 사태로 촉발된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안도 좀비 장르에 빠지게 된 계기 중 하나로 분석된다. 실제 ‘좀비 장르의 아버지’ 로메로는 좀비 영화를 통해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미국 사회 등을 비판한 바 있다. 또 제작 규모가 확대되고 특수효과나 시각효과(VFX) 등 국내 영상 제작 기술이 발달해 좀비 장르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점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남종석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는 “미국 좀비 영화는 인종차별·빈부격차 등 정치사회적 성격을 띤다”며 “기술이 발전해 저예산으로 특수분장과 VFX가 가능하니까 점점 도전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좀비 장르라고 해서 좀비 마니아들로부터 무조건 박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창궐>은 과연 좀비 장르가 맞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송아름 평론가는 “이들 영화에서 좀비는 권력투쟁을 위한 방편으로써 등장하는 것일 뿐 조정의 무력함 혹은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 좀비 같은 이들이 등장한다고 좀비 영화라 부를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며 “좀비물에 대한 적절한 이해 없이 엑스트라와 같이 소비되는 좀비 영화를 만드는 것은 관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식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좀비 영화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한 재난 영화라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훨씬 좀비물의 장르적 특성인 쾌감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경학·이유진·김지혜 기자 gomgom@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