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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동맹은 깨졌다”…뮌헨안보회의, 유럽-미국 깊은 골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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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일 국제회의서 극명한 서방 균열

유럽→미, 미→이란·유럽 러→미 비난전

“트럼프는 원인 아닌 증상일 뿐” 진단도

바이든 “이 또한 지나갈 것” 수습 역부족

메르켈 “국제협약 지켜라” 역설에 기립박수

앰네스티 “올바른 주제, 잘못된 언어”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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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을 향하다 - 돌아설 수 있을까? (To the brink - and back?)

위태롭고 절박해보이는 이 짧은 문장이 지난 15~17일 독일에서 열린 ‘뮌헨 안보 회의 2019’의 주제였다. 올해로 55회째를 맞은 뮌헨 안보 회의는 매년 세계의 정치 지도자와 고위급 장성, 외교 전문가들이 모여 국제안보와 세계평화 유지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올해 회의엔 사상 최대 규모인 100여개국 대표들이 참가했지만 분위기는 썰렁했다. 국제안보 질서의 핵심 축을 맡아온 미국과 유럽의 전례없는 갈등과 균열 때문이다.

이번 회의는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 실종과 세계 전역의 분쟁 등 안보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유럽 국가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와 기존 국제질서의 무시를 성토하는 장이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는 17일 회의 참석자들을 인용해 “이번 회의에서 유럽과 트럼프 미국 정부의 균열이 노골적이고 험악하게 구체적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독일의 한 고위관리는 “트럼프가 동맹의 이익이나 관점에 대해 신경 쓴다고 믿는 이는 더이상 아무도 없다”며 “동맹은 깨졌다”고 단언했다.

이번 회의의 의장을 맡은 볼프강 이싱거도 ‘생각거리: 누가 사태를 수습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에서 “자유세계 전체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 반도를 복속하고 우크라이나와 유혈분쟁을 벌일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그를 국제 불안정의 주원인으로 봤다”며 “불과 몇년 뒤 미국의 대통령이 국제질서에 심각한 도전이 되리라곤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보호무역, 기후변화협정 탈퇴, 이란 핵합의 탈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 비난 등으로 기존의 국제질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에 몸 담았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16일 본회의에서 “이 또한 지나가고, 우리가 돌아올 것”라며 ‘분위기 수습’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다음날 <워싱턴 포스트>는 “2020년 미국 대선의 유력 후보인 바이든의 연설은 2년 뒤 대선에서 미국이 신뢰받는 우방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미국의 동맹국들은 차기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트럼프를 꺾는다해도 현재 대서양 양안 관계의 균열을 회복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트럼피즘의 핵심이기도 한 ‘글로벌 관여에 대한 회의주의’가 미국의 장기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어서다. 독일의 한 관리는 “트럼프가 단지 일탈이라고 믿는 건 어리석다”며 “트럼프는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 증상일 뿐”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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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겨냥하며 중국에는 군축협정 동참을 주문했다. 그는 “(미국과 러시아의)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은 기본적으로 유럽(의 안보)을 위해 체결된 군축협정”이라며 “미국과 러시아가 이를 무력화한 걸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란 핵 합의의 유지와 미국의 시리아 철군 재검토도 주문했다.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그러나 이어 발언에 나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이란과 유럽을 동시에 싸잡아 “유럽 파트너들이 (이란의) 잔인한 혁명정부에 대한 미국의 제재에 힘을 빼는 것을 그만 둘 때”라고 반박하자, 회의장엔 박수 대신 썰렁한 침묵이 감돌았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전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국방장관은 “우리는 미국이 러시아가 중거리 핵전력 조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로켓(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나토에 직접 보여주고 싶지만 미국이 나토 동맹국들에 압력을 넣어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은 미국과 러시아를, 미국은 유럽과 이란을,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을 비난하는 목소리만 컸던 회의였다.

회의를 지켜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17일 <로이터> 통신에 “참석자들이 한다. 이 곳의 사고방식에서 안보는 국가안보 뿐”이라며 기후변화 등 폭넓은 현안을 다루지 못한 한계를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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