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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AI 뒤처지면 되겠소"…500억 내놓은 90세 기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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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인공지능(AI) 등 미래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해외 유수 대학에 서울대가 뒤처져선 안 된다는 생각에 기부를 하게 됐습니다. 서울대에서도 건물 조성에만 그칠 게 아니라 훌륭한 내용물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 주십시오."

연로한 나이에 최근 건강까지 악화돼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만 기부에 대한 열정 하나로 모교에 500억원을 쾌척하기로 한 중견기업 오너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90)의 담담한 부탁이다. 모교에 해동첨단공학기술원(가칭)을 설립하기 위해 기부천사로 나선 90대 노(老)기업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공학교육에 대한 애정이 깊이 묻어났다.

김 회장은 18일 오전 서울대 관악캠퍼스 행정관을 직접 찾아가 '기부금 출연 협약'을 체결했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이번 개인 기부는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이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지난 30년 가까이 장학금 및 교육 시설을 꾸준히 기부해왔다"며 "이번 서울대 해동첨단공학기술원 건립이 해외 유수한 교육기관들이 AI 기술 등 새로운 미래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추세에 발맞춰 서울대 공대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활용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교수와 연구진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기부를 결심했다"면서 "학생들에게도 좀 더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이날 기부 협약을 통해 김 회장이 서울대에 기탁하기로 한 금액은 500억원이다. 기탁된 기금은 기초연구에서 응용연구까지 총망라한 목적 지향적인 융·복합 연구나 교육을 통해 미래를 개척할 인재를 육성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첨단 운영시스템 구축에 사용된다. 아울러 AI 기술을 플랫폼으로 국가 경쟁력 증진에 필요한 로봇, 반도체, 에너지, 바이오 등 공학 전 분야의 초격차 융합을 왕성하게 추구할 수 있는 신개념의 연구교육 공간을 구축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개인 기부자로서 김 회장은 그동안 서울대 공대 전자공학과와 화학공학과, 해동학술정보실 등 서울대 내 10여 곳의 교육·연구시설 건립을 도왔다. 이날 김 회장과 서울대 간 기부 협약이 체결됨에 따라 김 회장이 서울대에 기부해 온 누적 기부금은 657억원이 됐다. 개인 누적 기부금으로는 가장 많다.

김 회장의 이 같은 기부사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 회장은 1991년 '해동과학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연구자와 대학생에 대한 지원을 30년 가까이 해왔다. 해동과학문화재단은 출범 1년 전인 1990년부터 매년 과학기술 분야 연구자에게 '해동상'을 시상하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 한국통신학회, 한국마이크로전자 및 패키징학회 등 4개 학회를 대상으로 지금까지 총 282명의 연구자에게 1인당 25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2010년부터는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대학생 280여 명에게 장학금 약 22억원을 후원했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출판사들이 이공계 학술서 발간을 꺼리자 한국공학한림원과 함께 2001년부터 18억원 이상을 투자해 학술서 70권을 펴내기도 했다.

또 서울대뿐만 아니라 연세대, 고려대, 부산대, 전주대 등 전국 20개 대학 공과대학 건물에 해동도서관 건립을 지원하는 등 국내 이공계 연구자와 대학의 든든한 후원자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대 해동관, 고려대 해동열람실, 국민대 해동 크리에이터스 라이브러리(Kreator's Library) 등 주요 대학의 건물 명칭에서 '해동'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것 역시 김 회장의 남다른 기부사랑을 보여준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김 회장을 "우리나라 전자기술 발전을 이끌어 온 산증인으로 대덕전자를 전자부품산업 분야의 핵심기업으로 육성시킨 국가 산업 발전의 선구자"라고 소개한 뒤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사회에 귀감이 되고 계신 회장님의 귀한 뜻을 받들어 이 기금을 우리나라 경쟁력 강화에 헌신할 수 있는 우수한 공학 인재를 양성하는 데 소중하게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1965년 대덕산업으로 시작한 대덕전자는 국내 전자산업의 역사를 그대로 밟아온 인쇄회로기판(PCB) 생산업체다. 과거에는 라디오, 흑백·컬러TV에 들어가는 부품을 주로 생산했지만 현재는 스마트폰, 5G(5세대) 이동통신 등에 필요한 PCB를 제조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9600억원이었다. 김 회장의 아들인 김영재 대표는 2012년부터 삼성전자협력회사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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