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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슬픈 바다는 잔잔했다…우키시마호는 아직 바닷속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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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20)
모자를 삐뚜름하게 쓴 젊은 택시기사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함박웃음이다. 기차역 앞에서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던 차에 장거리 왕복 손님을 태웠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여기는 일본 교토 북부의 어촌마을 마이즈루(舞鶴). 내세울 만한 관광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막힌 풍광을 품고 있는 곳도 아니다. 그나마 교토와 오사카가 가깝고 제법 큰 해산물 센터가 있어 가끔은 끼워 팔기 형식으로 여행사상품에도 등장하곤 하는 작은 어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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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의 비극이 잠들어 있는 마이즈루 바다의 추모공원. by 갤럭시탭S3 아트 레이지 사용. [사진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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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이타닉은 알아도 이건 모른다?
몇 년 전 명절 연휴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연휴를 맞아 TV에선 특선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전 국민이 보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영화 '타이타닉 '. 물론 나도 재탕에 삼탕까지 몇 차례를 봤지만, 크리스마스에 보는 ‘나 홀로 집에’처럼 명절날의 타이타닉도 자연스레 채널이 멈춰졌다. 영화가 끝나고 그래도 궁금한 부분이 있어 검색을 시작한 난 연관검색어에 ‘우키시마마루(浮島丸)’라는 단어를 보았다. 그건 우연이었다.

※ 우키시마호(마루) 사건이란?

1945년 8월, 강제 징용된 우리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싣고 일본 아오모리 현 오미나토에서 부산항으로 향하던 배(우키시마마루)가 교토 해상 인근 마이즈루에서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지금까지도 사건의 진상이나 희생자의 규모와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전대미문의 해상사고이다. 지금도 진행 중인 이 사건은 마이즈루 바닷속에 많은 한국인 강제징용자들의 유해가 아직도 떠돌고 있다고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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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의 이동 경로와 폭침 현장. [사진 JTBC]




그렇게 사소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우리 부부의 여행은 그 사건의 시작점인 일본 아오모리 현의 오미나토(大湊)에서 종착지인 교토부 마이즈루(舞鶴)의 작은 어촌 바다에 이르렀다. 고백하자면 부끄럽게도 난 그때까지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마침 이 사건을 잘 알고 있던 지인에게 내용을 전해 들은 남편과 난 그곳을 꼭 한번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많은 사연은 때론 분노를 가져오기도 했고 아직도 바닷속 깊은 곳에 있는 영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 오기도 했다. 그 비극적이고도 슬픈 사건을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아프게 그려낸 김영주 작가의 '순이'(리젬출판사)와 또한 사건을 생생하게 영상으로 담아낸 일본영화 '아시안 블루'가 여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희망에 부풀어 기다리던 귀국선 -오미나토 항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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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의 출발지인 아오모리 북단의 오미나토 역. [사진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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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을, 아오모리 현의 오미나토는 이방인이 찾아가기엔 교통편도 신통치 않았고 좁은 철길의 수풀을 헤쳐 가며 달리는 한량짜리 기차는 황량함마저 주는 곳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인 그곳은 도무지 관광객이라곤 눈에 띄지 않는 해상군사 도시였다. 캐리어를 끌고 서성거리는 우리 부부가 이상했는지 기차역 앞 파출소에서는 우릴 감시하는듯한 눈길을 보낼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강제노역으로 이곳까지 끌려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던 한국인들이 1945년 해방을 맞아 귀국선을 타기 위해 모여들었던 오미나토의 바다는 이 근처 어디라고 했다. 겨우 몇 분을 걸었을까? 그들이 몇 날 며칠을 노숙하며 머물던 공터와 바다가 보였다. 이미 공민회관의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그곳엔 전쟁의 상흔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게 말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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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오미나토의 바다. [사진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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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나토 바다 마을 풍경. [사진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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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을 싣고 떠난 오미나토항의 바다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잔잔했고 평화로웠다. 허무할 만큼 조용한 부두 앞 고물상에는 노부부가 느릿한 걸음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물론 70여년이 훌쩍 흘러버린 지금에 그 흔적이 있을 리 만무하겠지, 하지만 이곳 어딘가에 그들의 귀향을 향한 실낱같은 희망이 서려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시려 왔다.

마이즈루(舞鶴)의 슬픈 바다는 너무도 잔잔하고

다시 2018년 여름, 교토부의 작은 어촌 마이즈루에는 그날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은 추모공원이 있다고 했다. 작은 도시라 꽃집을 찾기도 여의치 않아 근처 쇼핑몰에서 빈약한 꽃다발을 사고 무작정 택시를 탔다. 역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젊은 택시기사는 그곳을 잘 모르는 듯했다. 가다 멈추고를 여러 번, 길을 물어가며 달리는 걸 보니. 아마 그곳의 젊은 세대들에겐 그저 오다가다 보이는 길가의 이름 모를 동상에 지나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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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공원. [사진 홍미옥]




그렇게 해안도로를 몇십여분 달리다 보니 조촐하게 꾸며진 추모공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를 잘 찾아서 다행이라는 듯 택시기사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우릴 내려줬다. 우리가 일을 보는 동안 기다려 주겠다며 한껏 인심을 쓰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그토록 비극적인 침몰의 현장이었음에도 마이즈루 앞바다는 이상하리만큼 잔잔했고 추모 동상이 있는 주변의 꽃들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 한가운데엔 마이즈루 마을의 미술 교사들과 선량한 시민들이 억울한 영혼을 기리고자 제작한 동상이 있었다. 순난의 비라는 이름으로 고국 부산 방향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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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공원 순난의 비. [사진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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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침몰순간의 비극을 표현한 동상은 고국 방향을 바라보며 서 있다. (우) 바다 위의 작은 두 섬 사이가 침몰의 현장이다. [사진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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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을 자세히 보면 배가 침몰하는 순간, 어린아이를 안고 허공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그 손을 잡고 절망스런 절규를 하는 사람들의 비극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정원을 초과한 배에 짐짝처럼 구겨져도 고향에 간다는 희망 하나로 기꺼이 행복했을 그들의 마지막 순간은 이렇게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고국 부산이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에 더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사진 속에 둥그스름하게 떠 있는 작은 두 섬, 조도(鳥島)와 사도(蛇島) 사이가 바로 우키시마호의 침몰 현장이다. 슬픈 영혼들이 이유도 모른 채 수만 리 깊은 바닷속에 아직도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거리의 작은 두 섬은 물안개를 머금고 새초롬히 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너무도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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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루 추모공원엔 비치된 방명록. [사진 홍미옥][사진 홍미옥]




해마다 8월 24일이 되면 우키시마 유족회와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이 주축 하여 위령제가 열린다고 한다. 항상 그래왔듯이 세상을 밝히는 건 거대한 힘이 아니라 작은 관심과 이름 없는 시민들의 양심인가보다. 원혼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행사는 지금도 마이즈루와 부산에서 진행 중이다.

저기 젊은 택시기사에게 이곳은 그저 지나는 길목에 있는 한낱 이름 모를 동상이고 그에겐 우린 볼 것도 없는 곳인 여기에 비싼 택시비를 치르고 온 운수 좋은 손님일 뿐 일게 다. 묵념과 함께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허름한 방명록 함 속에 짧은 추모의 글을 남기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겁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진실도 저 깊은 바닷속에 영원히 묻혀 버리는 건 아닐까?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여서인지 더 안타까웠다. 아무쪼록 우리의 작은 관심이 모여 진실을 끌어올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드로잉팁
그동안 짧은 드로잉팁을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그간의 종합 편입니다.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모바일 드로잉앱 두 개를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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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뿐만 아니라 중급자에게도 적합한 펜업. [사진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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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앱인 펜업입니다. 안드로이드 기기에서 사용 가능한데요. 컬러링, 라이브 드로잉 등의 기능이 있고 전 세계의 많은 유저와 소통이 가능한 손쉬운 드로잉앱입니다. 초보자에게 추천해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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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아트 레이지. [사진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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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버전과 유료 버전이 있습니다. 안드로이드와 IOS 기기에서도 사용이 가능하고 브러시 종류도 다양해 유화 느낌의 그림을 그리는데 적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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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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