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TOPIC] 증권거래세 폐지 논의 급물살-대주주 양도세 강화하면서 `개미` 부담 완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연초부터 여당의 군불 때기에 증권거래세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당·정은 증권거래세 개편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증권거래세 폐지 이후 효과에 대해서는 증권가에서도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국회와 당·정,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15일 더불어민주당과 증권사·자산운용사 대표 사이 간담회 이후 증권거래세 개편 여론이 탄력을 받고 있다. 당초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거래세 폐지 논의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거래세 폐지를 공론화할 때가 됐다’고 언급하자 입장을 급선회했다.

증권거래세는 상장주식을 팔 때 이익, 손실 여부와 무관하게 거래대금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세율은 0.3%다. 1963년 도입된 뒤 폐지와 재도입을 거쳐 1996년부터 현재 세율을 유지 중이다.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는 주식을 팔 때 양도소득세는 내지 않고 증권거래세만 원천징수 방식으로 납부한다. 해외 증시에서는 거래세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곳이 태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독일·일본 등 16개국은 증권거래세가 없다. 아시아에서는 중국·홍콩·태국이 0.1%, 대만 0.15% 등으로 한국보다 훨씬 낮다.

현재 국회에는 의원 입법으로 발의된 증권거래세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김철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3월 증권거래세율을 0.1%로 낮추는 개정안을 내놨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11월 증권거래세율을 현행 0.3%(장외시장 0.5%)에서 0.15%로 인하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재부는 이들 법안을 참고해 세부적인 세율 인하 수준과 인하 시기 등을 확정한 뒤 올해 세제 개편안에 반영할 계획이다. 증권거래세가 0.1~0.15%로 인하되면 주식 투자자는 연간 세금 3조~4조원을 덜 내게 된다.

거래세는 주식으로 손실을 보고 팔 때도 내야 하는 세금이어서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원칙에 어긋난다는 성토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10월 급락장에서 다수 개인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고 주식을 팔았으면서도 거래대금에 따라 거래세를 물자 반발 여론이 높아졌던 터다.

정부가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중과세’ 논란이 불거진 것도 증권거래세 폐지 논의에 불을 지폈다. 정부는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의 보유 주식 기준을 2021년 3억원까지 단계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거래세는 그대로 둔 채 양도차익 과세 대상을 늘리면 그렇지 않아도 위축된 투자심리가 더욱 움츠러들 것이란 반발이 거셌다.

단, 증권거래세를 두고 ‘이중과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적확하지 않다는 것이 당국 입장이다. 이중과세는 국세기본법 등에서 조세 조약과 관련해 사용되는 법률 용어다. 한 예로 해외 주재원이 같은 소득에 대해 외국과 국내에서 모두 세금을 낸 뒤(이중과세) 사후에 외국에서 낸 세금을 공제받는 외국납부세액공제가 대표적이다. 이에 비춰보면 증권거래세와 양도소득세는 과세 대상이 각각 거래대금과 양도차익으로 서로 다르고 과세 취지도 다르다.

매경이코노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거래세 0.1~0.15%] 인하 가능성

주식투자자 年3~4조 세금 덜 내

정부, 증시 세수 안정성 저하 우려도

증권거래세 폐지의 득실을 두고 증권가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간다.

무엇보다 과연 거래세 폐지가 증시 활성화로 연결되느냐 여부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은 ‘증권거래세 폐지에 따른 하루 평균 거래대금 증가 효과는 최소 3%’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놔 주목을 끌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전반적인 거래 회전율 상승까지 고려하면 실제 거래대금 증가 효과는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석의 근거는 2017년 4월 1일부터 차익거래 시 증권거래세를 면제받고 있는 우정사업본부(우본)의 사례다. 차익거래란 현물과 선물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비싼 쪽을 팔고 싼 쪽을 사는 무위험 수익거래를 뜻한다. 증권시장에서는 보통 현물시장과 선물시장 간 코스피200지수의 가격차를 활용해 프로그램으로 매매한다. 쉽게 말해 변동성을 활용해 선물과 현물의 괴리를 축소시켜 증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2009년 12월 말 펀드의 증권거래세 면제가 일몰되자 우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차익거래 시장을 떠났다. 그러던 중 2012년 12월 31일부터 우본마저 거래세 면제가 일몰되자 차익거래는 사실상 사라졌고 이것이 현물 주식의 유동성 축소로 이어져 박스권 장세가 심화됐다는 것이 증권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후 2017년 4월 1일부터 거래세 면제로 우본이 다시 차익거래 시장에 복귀하자 하루 평균 약정대금은 6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증권거래세가 폐지되면 거래 부진으로 허덕이던 브로커리지 수익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전배승 케이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거래대금이 1조원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증권사의 순이익은 100억~240억원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증권거래세가 폐지돼도 주식거래가 유의미하게 늘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찮다.

정태준 현대차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거래비용 때문에 거래대금과 증시가 유의미하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증시는 오히려 펀더멘털(기초여건)과 환율에 따라 등락을 거듭해왔다”고 강조했다. 거래세 폐지 후 양도세가 도입된다면 기대수익률 하락으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의 비중이 줄어들 것이란 의견도 존재한다. 김고은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양도세 도입 때는 세제 개편에 따른 기대수익률 하락으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 거래와 신용 수요가 위축될 것”으로 내다본다. 단, 장기적으로 보면 거래세 폐지로 단기 투자가 줄어들고 장기 투자 문화가 정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도 봤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 입장에서 연 5조원에 달하는 증권거래세 폐지는 쉬운 선택지가 아니다. 거래세를 폐지한다면 양도소득세 과세 범위를 늘려 세수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양도소득세는 말 그대로 주식을 팔아 번 수익(양도차익)에 매기는 세금이다. 지난해 하반기처럼 증시 불확실성이 고조될 경우 세수 예측 가능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수 예측에 실패하면 예산 계획·집행의 효율성도 영향을 받는다. 민간 부문 성장이 갈수록 둔화되는 최근 경제구조에서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지출의 역할을 결코 간과할 수 없어 세수 변동성 고조가 정부로서는 달갑지 않다.

국내 증시의 경우 해외 증시에 비해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한국은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30%를 훌쩍 웃돌아 아시아 증시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거래세가 없어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 투자를 통해 이익이 나도 자국에 양도세를 낼 뿐 한국에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게 된다.

전문가들은 증시 과세체계 개편과 함께 상장기업들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당근’을 적극 제시해야 제도가 안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웃 일본이 딱 맞는 사례다. 일본은 1953년 주식양도세를 폐지했다 1989년 재도입하면서 증권거래세율을 단계적으로 인하해 1999년 완전 폐지했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20%를 넘는 일본 입장에서 양도세만으로 자본시장 세수를 일원화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일본 정부는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정책도 적극적으로 폈다. 그 결과 증권거래세 폐지로 내리막길을 걷던 자본시장 세금 총계는 2005년부터 거래세 폐지 이전 세금 규모를 넘어섰다.

“일본은 장기적 플랜을 세워 양도소득세 과세 시점부터 단계적으로 증권거래세 인하에 나섰다. 그 결과 세금 감소를 감내하면서도 거래자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려고 노력해 세제 전환에 성공했다. 세제 전환에 성공하려면 단기적 이해보다는 면밀한 계획 수립과 대응 전략 마련이 중요하다. 증권거래세 폐지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본 사례를 참조해볼 만하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의 설명이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6호 (2019.02.20~2019.02.2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