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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규제 OUT] (4) 규제 가로막혀 한국 떠나는 스마트 헬스케어-`심전도 워치` 뒷북 승인에 실효성 `갸우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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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 당신 남편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으니 참 기쁘네요. 이런 이야기는 우리에게 영감을 줍니다.”

지난 1월 16일 팀 쿡 애플 CEO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짧은 리트윗 하나가 화제를 모았다. 자신을 엘리사라고 밝힌 한 고객은 남편이 애플워치4의 심전도 기능 덕에 심방세동 증세를 미리 알고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심전도 측정 기능은 지난해 10월 출시된 애플워치4에 탑재된 새로운 기능이다. 30초간 심전도를 측정하면 부정맥(불규칙한 심박동)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애플워치4를 사용하던 엘리사의 남편은 이 기능으로 심방세동 증세를 확인한 후 곧장 병원으로 이동해 스텐트 시술(심혈관 중재시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이 글에는 ‘누구나 애플워치4를 차고 싶게 만드는 놀라운 이야기’라는 댓글이 달렸다.

매경이코노미

네오펙트가 개발한 재활훈련을 위한 스마트 의료기기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가 해외 임상에서 탁월한 효과를 입증하며 주목받고 있다. 국내의 열악한 상황에서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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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4, 국내선 반쪽짜리

▷심전도 측정 기능 韓업체 먼저 개발

그렇다고 당장 애플워치4를 사러 달려갈 필요는 없다. 국내에 나와 있는 애플워치4에서는 이 기능 자체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플워치4의 심전도 측정 기능은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았지만,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은 받지 못했다. 애플은 당초 한국 판매 제품에도 이 기능을 탑재하려고 했으나 복잡한 규제와 까다로운 절차에 아예 기능을 빼버리는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로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애플의 심전도 측정 기능이 사실은 국내에서 먼저 개발됐다는 점이다.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는 애플보다 무려 3년이나 앞선 2015년 국내 의료기기 스타트업 ‘휴이노’의 손에서 이미 탄생했다. 당시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던 길영준 대표는 휴이노를 설립하고 심전도 측정 스마트워치를 개발했지만 기존에 없던 제품이라는 이유로 의료기기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미 상용화 단계까지 개발이 끝난 상황에서 규제에 막혀 시판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는 사이 애플워치4가 나왔다. 잘 알려진 대로 애플워치4는 혁신적인 기능과 전혀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기로 극찬을 받으면서 애플의 스마트워치 판매량 증가의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어쩌면 국내 기업이 스마트워치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었던 기회가 꽉 막힌 규제로 인해 날아가버린 셈이다.

최근 정부가 ‘ICT 규제 샌드박스 1호’로 휴이노의 심전도 워치를 선정했지만 ‘뒷북 정책’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미 애플워치4가 글로벌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뒤늦은 대처인 데다 그나마도 출시를 허용한 것이 아니라 제한된 구역에서 규제를 면제하는 ‘실증특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휴이노가 승인받은 서비스는 고대안암병원에서 심장질환으로 진료받는 환자 2만명 중 2000명을 대상으로 한정된다. 이마저도 의료계 반발을 우려해 “원격의료 성격의 문제가 생긴다면 바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선을 그어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다.

매경이코노미

▶규제에 발목 잡혀 ‘엑소더스 코리아’

▷보수적인 정책에 신기술 도입 어려워

스마트 헬스케어는 정부 정책이 기업의 기술 개발과 시장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뒤처진 정부 정책과 과도한 규제에 발목이 잡힌 기업은 휴이노뿐 아니다.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용 점자 스마트워치를 개발한 ‘닷’은 제품을 내놓은 지 불과 2년 만에 450만달러 수출 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중국·중동·러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정작 국내에는 해당 품목이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 보조기기로 인정받지 못해 판매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불필요한 규제가 어떻게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스마트 헬스케어 규제는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에만 해당하는 장벽이 아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9’과 ‘갤럭시S9+’에는 특수 광센서가 탑재돼 있어 별도의 기기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혈압과 스트레스를 직접 측정할 수 있다. 갤럭시S9을 쓰고 있는데 금시초문이라고? 놀랄 것 없다. 국내가 아닌 미국 판매 제품에 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성숙한 국내 시장을 떠나 해외로 눈을 돌리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재활훈련을 위한 스마트 의료기기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를 개발한 네오펙트는 일찌감치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미국 재향군인병원과 손잡고 진행한 임상실험에서 손 마비 증상에 시달리던 미군 환자가 1년 만에 일상생활에 지장 없이 손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효과를 입증했다. 환자가 집에서 하는 재활훈련 기록을 작업치료사가 컴퓨터 등으로 확인한 뒤 적절한 재활운동법을 알려주는 방식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했다.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전문가 진단과 상담을 금지한 국내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방식이다. 네오펙트 관계자는 “국내 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제대로 기술 개발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라며 “애초부터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과감한 규제 완화 이뤄져야

▷5차 산업혁명 이끌 새로운 먹거리

다가올 5차 산업혁명의 선봉으로 꼽히는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은 놓쳐서는 안 될 미래 먹거리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같이 고령화의 가속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선진국은 정부 차원에서 스마트 헬스케어 보급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 중이다.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 역시 낮은 의료 수준과 부족한 의료 인프라로 인한 의료 서비스 공급 부족을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를 통해 해소하려 하고 있다.

경쟁 국가들이 스마트 헬스케어 활성화에 발 벗고 나선 반면 우리나라 대응은 답답한 수준이다. 일례로 보건소를 방문하지 않고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맞춤형 건강관리를 해주는 모바일 헬스케어 사업의 경우 2016년부터 2년 넘게 시범사업만 진행 중이다. 가장 큰 이유는 업계의 거센 반발 때문. 의사가 환자와 직접 만나지 않고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원격진료를 비롯한 모바일 헬스케어 허용 법안은 의사단체의 반대로 수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높은 진입 규제와 어려운 인허가 절차, 작은 국내 시장 규모는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이광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헬스사업팀 부장은 “경제적 타당성과 새로운 혁신에 부합되지 않는 법적 규제를 일일이 준수하다 보면 스마트 헬스케어 분야가 사업화로 발전하기 쉽지 않다. 혁신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환자를 중심에 둔 시장 참여자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방대한 의료 정보와 디지털 인프라로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이 성장하기 좋은 여건을 이미 갖추고 있는 만큼 시장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유연한 규제 접근 방식과 데이터 활용을 위한 법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규제 완화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정부가 가이드라인 마련과 함께 우선순위에 따라 단계적으로 규제를 개선해나가야 한다.” 박경수 삼정KPMG 헬스케어산업전문 이사의 안타까움 섞인 일성이다.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6호 (2019.02.20~2019.02.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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