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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데스크 칼럼]‘교복 입은 글로벌 시민’을 만나는 Y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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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먼저 서울 지역 중등 임용고사 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 국어는 응시자 1464명 중 49명만이, 영어는 1161명 중 41명만이 교단에 설 기회를 얻었더군요. 1차 필기 합격의 기쁨도 잠시, 1.5배수가 경쟁하는 2차 강의 시연과 면접 준비과정 등 24일간의 중압감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일부 탈락한 수험생들은 내년에는 선발 인원이 더 줄어들 거라며 다른 행정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전 LA타임스는 “한국의 공시가 미국 하버드대학 입학하기보다 어렵다”는 특집기사를 실었습니다. 한국의 취업 상황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한국의 교육 환경을 생각하면 교사의 길은 이미 꽃길은 아닙니다. 학교 폭력은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입니다. 현장은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의 지나친 간섭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지나친 행정업무도 교사를 괴롭힌 지 오래입니다.

올 2월 전국 중고교 교원 명예퇴직 교사가 6309명이라고 합니다. 서울지역에서만 1367명이 떠날 예정입니다. 세 번 도전은 기본이고, 다섯 번, 여섯 번 도전해 교사가 되려는 현실과 달리, 교육 현실은 이렇게 무겁습니다. 그 어려운 관문을 뚫은 지 2년도 안 된 교사가 학생을 귀찮아하는 현상도 목격된다고 합니다. 누가 이 의욕 넘치는 신입 교사를 지치고, 방관자로 만들었을까요.

교육청은 학생들의 인권존중을 최우선으로 내세웁니다. ‘교복 입은 시민’으로 대우하라고 합니다. 단 한 명도 교육적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소위 말해 ‘정의로운 차별’입니다. 서울 교사 노조는 ‘교사 권리 찾기’ 운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하면 화기애애한 학교가 될 수 있을까요?

나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학생은 대우해야 할 대상이고, 교권은 지켜야 할 대상이라는 이 대립구조는 위험합니다. 이 이분법은 폭력적입니다. 누가 누구를 제압할 때만 풀릴 수 있습니다. 회색 위에 회색을 덧칠하는 일입니다. 사유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학생 안에는 이미 교사가 들어와 있고, 교사 안에는 학생이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이 마주침의 사유, 연결의 사유가 학교의 출발점이 돼야 합니다. 교사도 학생도 이 겹침의 사유, 틈의 사유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학교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합니다. 그런데 ‘교복입은 시민’에 이 ‘관계’가 빠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복 입은 자유인’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습니다.

칸트는 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내 안의 도덕법칙이 내 의지를 규정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롭다’고 설파합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져야만 하는 ‘자유’가 바로 주체로서의 교사와 주체로서의 학생을 ‘연결’할 수 있는 마룻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자유의지는 교사와 학생이 공유해야 할 절대가치입니다. 학생들이 자유로운 주체라고 느끼는 순간, 그들은 책임 있는 주체로 거듭 태어납니다. 학교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자유가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교복 입은 자유인’을 만나는 기회를 얻은 선생님,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힘든 길이지만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한 이 길, ‘나의 수업’을 즐기십시오.

김능옥 레이아웃룸 에디터 kn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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