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홍기영칼럼] 초과稅收와 사회적 손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경이코노미

이상한 세금도 많았다. 중세 영국에서는 아궁이세, 창문세, 수염세가 부과됐다. 세금은 계속 진화한다. 현재 미국, 유럽에서는 탄산음료·패스트푸드에 비만세를 부과한다. 세금은 나라 경제를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재원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국방·교육·복지·SOC 등 공공 서비스는 세금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에는 저항이 따른다. 봉건시대 양민 재산을 수탈하는 탐관오리의 횡포는 극에 달했다. 성경에서도 세리는 천대받는 대상이었다.

지난해 초과세수가 사상 최대인 25조4000억원에 달했다. 국세수입(293조6000억원)이 예산을 크게 웃돈 것이다. 여러 세목 가운데 소득·법인세율 인상, 조세감면 축소 영향이 컸다. 부동산 가격 급등에 거래가 증가하면서 양도소득세가 7조7000억원 더 걷혔다. 유리지갑인 샐러리맨도 근로소득세를 2조3000억원이나 더 납부했다. 법인세는 반도체 호황으로 7조9000억원이나 더 징수됐다. 부가가치세와 증권거래세 수입도 각각 2조7000억원, 2조2000억원 더 늘어났다.

‘세금 주도 성장’이라는 비판과 함께 기획재정부의 세수 추계 부정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평균 3.4%에 불과했던 세수 오차율은 2016~2017년 9.2%로 치솟더니 2018년에는 9.5%까지 올라갔다. 지난해 세계잉여금은 13조2000억원으로 4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세계잉여금은 정부가 1년간 걷은 세금을 다 쓰지 못하고 남긴 돈인데 추가경정예산(추경)의 주요 재원이다. 정부가 세수 추계를 적게 잡아 세계잉여금을 늘린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거세다. 정부가 각종 선심성 정책을 벌일 수 있는 추경을 염두에 두고 세입 예산을 과소 추정한다는 지적이다.

사실 경기 둔화 국면에 초과세수가 발생한 것은 뭔가 잘못된 일이다. 서민 생활이 팍팍해지는데 징세행정력이 동원되면서 국민 세금 부담만 늘어난 셈이다. 그래서 국가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조세는 경기가 과열되거나 경착륙을 낳지 않도록 경기 변동을 자동적으로 안정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금은 경기변동폭을 줄이는 자동안정장치(built-in stabilizer) 기능을 해야 한다. 소득탄력성이 큰 조세제도는 경기가 호황일 때 세금을 많이 거둬들여 재정흑자를 만든다. 반대로 불황기에는 세금 징수가 줄어 재정적자가 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세금은 또한 남에게 전가된다. 기업에 부과한 물품세는 일부 소비자잉여 감소로 나타난다.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조세를 소비자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다. 부동산 관련 세제도 마찬가지다. 급격한 공시지가 인상은 땅부자들의 세부담을 키운다. 건물·토지 소유자는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폭탄을 맞는다. 그러나 건물 보유자는 상가 임대료 인상을 통해 세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한다. 최저임금 인상에 이은 임대료 인상은 영세 자영업자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세금을 많이 걷는다고 좋은 일은 아니다. 세금은 가격을 왜곡하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한다. 민간에서 쓰일 재원이 정부로 흘러들어간 만큼 민간의 투자·소비 여력이 줄어든다. 즉 세금은 경제적 순손실(自重損失)을 초래한다. 이는 조세 부과 후 소비자잉여와 생산자잉여 감소분이 조세수입보다 큰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초과세수가 생긴 것을 긴축재정의 결과로 봐서는 곤란하다. 대형 신규 공공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는 모럴해저드를 조장한다. 곳간이 넘친다고 무작정 퍼주기식 재정지출은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급조한 일용·임시직은 효과가 오래 못 간다.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국민 혈세가 낭비돼서는 안 될 일이다. 세수 추계의 정확성 제고와 불용예산 축소, 확고한 재정준칙 수립이 절실하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kyh@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6호 (2019.02.20~2019.02.2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