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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소도시 힐링] 논산 `미션` 여행서 뜻밖의 힐링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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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드라마 미스터선샤인 촬영지인 논산 선샤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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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힐링이다.' 반쪽만 맞는 말이다. 경험상 가끔 힐링이 아닌 여행도 있더라. 배낭여행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던가, 기차를 놓쳐 일정이 전부 꼬이게 됐다던가 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 발생하면 여행은 힐링에서 스트레스로 바뀌어버린다. 예민한 성격 탓에 혼자 하는 해외여행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까칠이 예민 보스 기자가 최근 '여행은 힐링이다'는 명제를 완벽하게 믿게 되는 경험을 했다. 기대도 안 했던 여행지 충남 부여와 논산에서 말이다.

여행의 단초는 논산 '선샤인스튜디오'였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장을 가보려고 여행을 계획했다. 기왕 떠난 거 논산 옆 동네 부여를 엮었다. 논산과 부여는 시외버스로 30분이 걸린다. 개인적으로 부여를 좋아한다. 부여는 서울에서 가깝고 궁남지, 낙화암, 부소산성, 정림사지 오층석탑 등 볼거리가 시내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 걸어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 아름다워 더 슬픈 정림사지 오층석탑

부여의 옛 이름은 사비성. 백제 성왕이 538년 천도를 하고 백제가 멸망한 660년까지 수도였다. 사비도성 한 가운데 절이 하나 있었는데, 지어졌을 당시 이름이 뭐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수도가 함락되면서 나무로 만들어진 절간은 불타 없어지고 탑만 남았다. 1942년 절터를 발굴했을 때 이곳에 고려시대 때 정림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 이후로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이름이 길다. 하나 이름의 사연을 알고 나면 절대 불평할 일이 아니다. 탑 주변이 정람사 절터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이 탑은 '평제탑'이라고 불렸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했다는 내용의 글귀가 탑에 새겨져 있고 이를 바탕으로 평제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다. '소정방이 백제를 평정했다'는 굴욕적인 의미를 담은 이름으로 꽤 오랜 기간 불렸다. 이런 사연을 듣고 나니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라는 8글자의 이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탑은 모두 149개 화강암으로 이뤄졌다. 백제 장인들은 멀리 일본에까지 기술을 전수한 당대 최고 기술자들이었다. 예술적 감각이 없는 사람도 탑을 보고 있자면 입이 떡 벌어지고 절로 감탄사가 터진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치는 백제문화 특유의 기품이 느껴진다. 상표를 감추고 있는 초고가 럭셔리 제품 같은 느낌이랄까. 지붕돌 디테일이 특히 뛰어나다. 처마 끝처럼 살짝 하늘 위로 들려 있다.

수려한 탑에 비해 불상은 어딘가 부족한 모습. 비율도 안 맞고 막 만든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 불상이 만들어진 것은 1028년인데요. 이 지역 토호세력은 후백제의 후예로 힘도 재력도 별로 없었죠. 그래서 불상이 탑에 비해 너무 볼품없는 거예요." 박경남 해설사가 말했다. 망국의 고도라는 쓸쓸함이 불상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는 대목이다.

◆ 드라마와 책으로 뜻밖의 힐링

어느 계절 어느 시간대에 봐도 질리지 않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뒤로하고 부여 최남단으로 향했다. 산길을 따라 깊숙한 곳까지 찾아간 이유는 바로 '송정그림책마을'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이 깊은 곳에 뭐 볼 게 있다고 가는 거야. 아…. 낙화암을 갈 걸 그랬어. 하늘을 보니 오늘 일몰이 참 예쁠 거 같은데.' 여기를 추천한 동행이 조금 미워지려 할 때쯤 마을에 도착했다.

적막을 깨는 엔진 소리에 마을 어르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마중을 나온다. 올해 76세라는 박상신 이장과 86세 박신태 할아버지를 따라 마을 구경에 나섰다. 예전엔 80가구 수백 명이 살던 마을인데, 지금은 26가구 50여 명만 살고 있다. 마을 주민들 평균 나이는 70대. 쥐 죽은 듯 고요했던 마을이 활기를 되찾은 건 2013년 시작된 마을 사업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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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단순히 마을 찻집을 만들려고 했다. 외지 사람들이 와서 체험 프로그램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생각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된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에 영감을 받아 마을 주민이 직접 책을 쓰고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방향을 틀었다. 2017년 문을 연 마을 찻집에선 작가들이 직접 자기가 쓴 책을 읽어준다.

이날은 박신태 할아버지와 박송자 할머니(77)가 책을 낭독했다. 박신태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마을 야학당에서 공부했던 기억과 추억을 토대로 '야학당이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제목의 동화책을 만들었다. 박송자 할머니의 동화책 제목은 '꽃 심는 닭 이야기'. '남편이 술을 좋아해서 속을 끓였지만 착하고 성실해서 한평생 믿고 의지하고 살았기에 그 이야기를 그려 보았다.' 작가가 직접 적은 책에 대한 설명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육성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눈으로 보면 3분도 안 걸릴 정도로 짧은 내용인데도 여운은 꽤 오래 남았다. 낭독회는 10명 이상 예약할 때 진행된다. 1인 1만원을 내면 작가 4분이 낭독회를 하고 마을 해설, 주먹밥을 제공한다. 최소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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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논산 선샤인스튜디오를 둘러봤다. 적산가옥과 한옥, 서양식 건물이 섞인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오픈 2달 만에 12만명(2018년 12월 기준)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다. 글로리호텔 카페와 의상대여실, 사진관 등 주요 세트장을 카페, 의상실, 갤러리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의상대여실에는 100벌 넘는 의상이 준비돼 있다. 대여시간은 기본 2시간. 옷 종류에 따라 대여요금이 약간씩 다르다. 한복은 1만5000원, 드레스는 2만원이고 소품 비용도 따로 받는다. 선샤인 스튜디오 입장료는 어른 7000원, 청소년 5000원, 어린이 3000원.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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