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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日 아베, 자위대 모집 허위통계로 개헌 띄우려다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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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팩트체크로 과장·왜곡 드러나 비판여론 직면

"엉터리 정보로 국민감정 부채질" 비난 목소리도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자위대원 모집과 관련한 통계 수치를 자신의 입맛대로 왜곡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가 언론의 팩트 체크에 발목이 잡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발단은 지난 10일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전당대회의 연설이었다.

자민당 총재인 아베 총리는 이 행사에서 "도도부현(都道府縣·일본 광역자치단체 47곳 지칭)의 60% 이상이 신규 자위대원 모집 때 협력을 거부하는 게 슬픈 현실"이라며 자위대를 명기하는 개헌을 통해 이런 상황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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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10일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전당대회에서 총재연설을 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애초 2년 말 시작된 2차 집권 초기에는 전력보유와 교전권을 부인하는 헌법 9조 2항을 삭제하고 국방군으로서의 자위대 존재 근거를 넣는 개헌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기존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야권과 국민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자 원래 조항을 그대로 둔 채 자위대 존재 근거만을 담는 개헌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국민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는 개헌 여론을 띄울 목적으로 현행 헌법규정 때문에 자위대원 모집조차 어렵다는 식의 주장을 편 것이다.

이 발언이 보도되면서 일본 내에선 큰 논란이 일었다.

국가 방위 사태뿐만 아니라 지진 같은 국가적 재난이 일어났을 때도 최일선에서 뛰어야 하는 자위대원을 모집하는 일에 지자체가 협조를 거부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충격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면서 쟁점이 됐고, 언론매체들이 지자체를 상대로 사실 확인에 나서면서 파장이 커졌다.

그런데 취재 결과 아베 총리는 완전히 자기 입맛대로 통계를 왜곡해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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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초계기가 배치된 가나가와현 아쓰기 기지를 방문한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 [교도=연합뉴스]



마이니치신문은 16일 자 조간에서 '개헌 억지'라는 제목으로 팩트 체크 결과를 크게 보도했다.

이어 16일 오후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山口)현에서도 아베 총리의 잣대로는 협조 거부 사례가 있다는 교도통신의 보도가 나왔다.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지자체는 자위대법에 근거해 방위성의 자위대원 모집에 필요한 보고를 하거나 자료를 제공하게 돼 있다.

해당 자료는 통상 고교를 졸업하는 18세, 대학 졸업 연령인 22세 주민의 이름, 생년월일, 주소, 성별 등에 관한 개인정보다.

일본 언론의 취재 결과 2017년의 경우 전국 1천741곳 기초단체(市町村) 가운데 36%인 632곳이 해당자 명부를 정리해 전달했고, 53%인 931곳은 방위성이 필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주민기본대장을 열람토록 허용했다.

그리고 나머지 10%가량인 178곳은 인구가 적다는 이유 등으로 정보제공 요청을 아예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베 총리는 이 통계 가운데 명부를 정리해 준 곳을 뺀 나머지 60% 이상을 모두 "협력 거부"로 통칭한 셈이다.

'과장왜곡' 논란이 커지자 아베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협력을 거부했다"를 "협력을 받지 못했다"라는 식으로 살짝 말을 바꾸어 발언 수위를 낮췄지만 주요 언론매체는 물러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팩트 확인에 나섰다.

교도통신 보도 내용을 17일 조간에 전재한 도쿄신문은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자위대원 모집 관련 정보제공 요청을 실제로 거부한 곳은 0.3%인 5곳에 불과했다고 소개했다.

이번 논란의 와중에 아베 총리가 진짜로 아파할 만한 '한 방'을 교도통신이 날렸다.

뉴스통신 매체 특성상 다른 언론보다 지역 취재망이 촘촘한 교도통신은 광역단체 관청 소재지를 중심으로 90곳 이상의 자치단체 반응을 취재해 보도했는데, 아베 총리 주장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주류를 이뤘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지토세시(市)는 "자위대원 모집 관련 홍보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고, 사이타마시는 "법령에 근거한 운용으로 거부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히로시마시는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방위성 요구에 따르고 있는데 '거부'라는 표현에는 위화감이 있다"고 비판했다.

명부 제출을 요청받지 않았다고 당혹해하는 지자체도 있었다.

특히 교도통신 취재로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下關)시가 요청을 받지 못해 명부를 제공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중의원인 아베 총리 지역구는 야마구치4구로, 시모노세키와 나가토(長門)시로 구성돼 있다.

교도통신은 "시모노세키시에는 명부 제출 요청이 없었다고 한다"며 "시 담당자는 이를 '거부'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베 3대'의 저자로 유명한 언론인 아오키 오사무(靑木理)는 마이니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개헌하고 싶다면 신중하게 세밀한 논의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엉터리 정보를 들고 나와 국민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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