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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 임신사실 알리니 해고통보한 법조윤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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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러스트 김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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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윤리협의회에서 상근직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여성 변호사가 임신 사실을 알린 지 2시간30분 만에 인사책임자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계약연장 요청을 거부당한 변호사는 며칠 뒤 유산했다. 인사책임자인 ㄱ사무총장은 “ㄴ변호사가 아이를 잃은 것은 안타깝지만 해당 변호사와의 근로계약 해지는 임신과는 관계없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위원장과 사무총장이 2년 단임제 임기이므로 함께 일하는 사무국장 역시 위원장 임기에 맞춰 2년 단위로 새로 뽑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로계약서상 첨부된 내부규정 어디에도 상근직 사무국장의 임기는 2년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법조윤리협의회는 2007년 7월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제안으로 출범한 기구다. 업무는 크게 두 가지다. 퇴임 2년 이내의 전관변호사의 사건 수임내역 검토 및 일정 기준 이상의 사건을 맡은 ‘특정 변호사’의 수임내역을 검토하는 일이다. 특정 변호사란 변호사법에 의거해 6개월간 맡은 형사사건이 30건 이상이면서 변호사회 전체 사건 수임 평균보다 2.5배 이상의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를 말한다. 즉, 법조윤리협의회는 전관예우 및 법조 브로커를 잡아내는 일을 하는 곳인 셈이다.

법조윤리협의회는 출범 직후부터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2016년에는 100억원대의 수임료를 부당하게 받아 챙긴 혐의로 징역 5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최유정 변호사(부장판사 출신)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뒷돈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홍만표 변호사(검사장 출신) 등 법조윤리협의회가 당연히 걸러내야 할 전관 비리조차 적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8년 3월에 2년차 계약

ㄴ변호사는 2017년 3월 법조윤리협의회에 상근 관리관 겸 사무국장으로 들어왔다. 2018년 3월에는 2년차 재계약을 했다. 처음 계약을 할 때도, 재계약을 할 때도 2년만 근무하고 나가야 한다는 언급은 없었다. 2017년 3월 ㄴ변호사와 근로계약서에 서명한 천기흥 위원장(전 대한변협 회장)도, 2018년 3월 서명한 하창우 위원장(전 대한변협회장)도 “연장은 한 번뿐”이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계약서에 단서조항도 없었다.

ㄴ변호사는 그러나 지난 1월 21일 자신의 남편이 ㄱ사무총장에게 임신 사실을 알린 지 2시간30분 만에 해고통보를 받았다. ㄴ변호사는 당시 반차를 내고 산부인과 검진을 받고 있었다. ㄱ사무총장은 ㄴ변호사가 이날 오후 출근하자 면담을 요청하고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ㄴ변호사가 “기간제보호법상 보장받지 못하는 변호사 신분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미 한 차례 재계약을 했고, 상근관리직으로 근무하면서 ‘갱신기대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미 계속 근무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임신 사실을 알리자마자 사실상 해고통보를 한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반박했다.

위원장과 사무총장은 비상근직으로 매일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사무실 유지·관리업무는 상근 관리자인 ㄴ변호사의 몫이었다. ㄱ사무총장은 그러자 이번에는 ㄴ변호사가 받고 있는 연봉이 업무에 비해 과하다고 지적했다. ㄴ변호사는 그러나 2017년부터 해당 연봉을 받아왔다.

ㄴ변호사 측은 지난해 법조윤리협의회 파견검사 문제로 사무총장과 한 차례 갈등을 빚으면서 사이가 멀어졌고, 자신이 임신 사실을 알리자 계약갱신 거부 통보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행정처는 윤리감사관 소속 6급 법원공무원 1명을, 법무부는 검사 1명을 예산지원과 함께 법조윤리협의회에 파견하고 있다. 그러나 2017년 7월 파견을 나온 검사는 지속적으로 사무총장과 사무국장, 내부 직원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해당 검사는 외부에서 조사업무를 맡고 있는 전문위원들이 판·검사 출신 전관변호사의 사건 수임내역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법이라며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심지어 사무총장을 거치지 않고 위원 9명에게 “전문위원 제도가 불법”이라는 취지의 e메일 의견서를 독단적으로 보내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ㄴ변호사와도 충돌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ㄴ변호사는 하혈을 했다. 병원은 “상세불명의 이상자궁 및 질 출혈이 있다”며 “지속적인 경과 관찰을 요한다”고 진단했다.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점점 심화됐다. 그 검사는 직원들의 업무에 간섭하며 “너 허투루하면 내가 기소해버릴 것”이라고 했다.

파견검사 문제로 사무총장과 갈등

지난해 5월 말에는 만취상태로 사무실로 들어와 ㄴ변호사에게 “야 이 X아”라며 욕설을 퍼붓고 “검사인 내가 전문위원 제도의 불법을 지적하는데 네가 뭔데 내 말을 듣지 않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위원장과 사무총장 모두 법무부에 해당 검사에 대한 파견해제 요청을 하지 않고, 사과 및 사무실 분리 등의 조치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ㄴ변호사는 대검찰청에 진정을 넣었다. 진정이 들어간 지 보름 만에 해당 검사는 원복조치됐다. 사무총장 역시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위원장의 반려로 업무에 복귀했다.

ㄴ변호사는 “사무총장은 검사로부터 욕설과 폭언을 들은 직원을 보호해주기는커녕 ‘해당 검사의 파견해제를 요청할 경우 법무부에서 추가로 검사를 보내주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해당 검사는 ㄱ사무총장을 직함이나 ○변호사라는 호칭 대신 ‘큰형님’으로 부르며 평소 친분을 과시해왔다.

ㄱ사무총장은 <주간경향>과의 전화통화에서 “ㄴ변호사의 남편이 임신 사실을 알린 당일 오전에 사무실에 갔었다. 계약 연장을 안 할 것이라는 통보를 하려고 갔던 것”이라며 “위원장과 재계약 여부를 상의한 뒤 ‘내가 직접 알리겠다’며 사무실에 갔던 것이기 때문에 임신 사실 통보보다 계약 연장 거부 결정이 먼저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상적인 재계약 논의시점보다 이른 시점인 1월에 통보가 이뤄진 것은 앞으로 ㄴ변호사와 법조윤리협의회가 다퉈볼 부분이다. ㄴ변호사의 계약만료일은 3월 5일이다.

ㄱ사무총장은 또 사무국장인 ㄴ변호사의 업무성과가 여타 직원에 비해 낮았다고 했다. 이를 입증할 근거는 없다. 협의회에서 정한 사무국장의 업무 및 역할은 국회 자료 제출, 위원 전원회의 및 간사회의, 수임자료검토특별위원회(전문위원회) 및 자문위원회 운영에 관한 사항, 예·결산 및 사업계획 수립과 집행, 인사관리, 연구용역 발주 등이다. ㄴ변호사는 업무사항에 명시돼 있지 않은 상근검사 담당 전관변호사·특정변호사 수임자료 조사업무도 사무총장의 명령에 따라 반기별로 5건씩 담당해왔다.

노무법인 노엘의 백도현 고문은 “해당 변호사는 가만히 있어도 오는 3월이면 계약이 종료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다퉈봤자 실익이 없는 사건”이라며 “그러나 법적 실익이 없다고 해서 차별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백 고문은 “임신을 한 노동자에 대해 사측이 재계약을 거절하면서 임신 외의 사유를 드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라며 “그러나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계약을 갱신했을 것으로 기대되는 근거, 단적으로 2018년 3월에 한 차례 계약 갱신을 했다는 것은 ㄴ변호사의 업무성과가 재계약을 할 정도였다는 것으로 재계약 거부 통보는 결국 임신을 근거로 한 차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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