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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커버스토리]내 일도 벅찬데 신입 교육까지…어느날 나도 후배를 태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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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되는 ‘태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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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느샌가 신입 간호사를 ‘태우고’ 있었다. 결국은 내가 힘들어서였다. 나 스스로도 무서워 일을 그만둬야 했다.”

2017년 중순경 병원을 그만둔 수술방 간호사 경력 5년차 ㄴ씨는 태움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당시 그의 상태는 “번아웃(탈진) 상태”였다. 신입 간호사 시절 태워도 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젖은 장작’이라고까지 불렸던 ㄴ씨다.

병원 생활이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경력의 마지막 병원인 경기도 소재 종합병원에서 일하며 ㄴ씨는 때때로 보람도 느꼈다. ㄴ씨는 “ ‘일 잘한다’고 하거나 후배들이 ‘좋은 선배’라고 할 때 좋았다”고 했다. 첫 병원이던 서울 소재 주요 대학병원을 한 달, 일반 종합병원을 1년 만에 그만뒀던 것과 달리 ㄴ씨는 이 병원에서 3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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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 될 때까지 태워버린다’는 뜻으로, 의료계에서 통상 권력관계에 따라 이뤄지는 폐습을 말한다.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나 인격모독과 괴롭힘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선배 간호사에 의한 태움이 만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의사나 환자가 태움의 주체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하는 쪽에선 ‘태운다’, 당하는 쪽에서는 ‘(활활) 탄다’ ‘탔다’고 표현한다.


수술실 수습 2주 끝내고 3주 만에 실전 투입

수술기구 몰라 당황하자 선배 간호사들

“그것도 몰라” “너랑 안 맞는 것 같아” 질책


처음 간호사 업무를 시작했을 때, ㄴ씨는 여느 간호사들처럼 병동에서 환자들을 간호했다. 예비 합격자 명단에 포함돼 10개월을 기다리고 대학병원에 입사한 ㄴ씨에게 주어진 수습기간은 단 3주. 4주차가 되자 혼자 18명의 환자를 돌봐야 했다. ㄴ씨는 “당시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당장 일하라고 해서 도망치듯 그만뒀다”며 “환자를 직접 처치하는 게 무서워 차라리 수술방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수술방 간호사(스크럽)는 의학 드라마에서 수술 도중 의사가 “메스”를 외치면 도구를 건네주는 역할을 하는 간호사다. 드라마와의 차이점은 업무의 난이도다. 각 과별 수술이 다르고, 수술마다 기구가 다르다. 같은 수술이라도 의사별로 수술법이 다르고, 실전에서 의사는 기구 이름을 잘 불러주지도 않는다. 수술별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용도와 각도에 맞게 알아서 기구를 건네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기구 수천개의 이름을 외워야 하고 수술방법을 두루두루 알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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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씨가 수술방 간호사로 일을 시작한 2번째 병원은 수습기간을 단 2주 줬다. ‘모른다는 것’이 두려웠던 ㄴ씨는 면접 때부터 “프리셉터 제도(선배 간호사가 개인지도교사가 돼 신규 간호사를 가르치는 제도)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 병원에는 당신을 가르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우려대로 그는 3주 만에 세컨드 스크럽으로 실전 수술에 투입됐고, 5개월 뒤에는 책임이 더 무거운 퍼스트 스크럽을 맡았다.

퍼스트 스크럽으로 처음 수술에 참여한 날 ㄴ씨는 60개의 기구 중 뭘 건네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했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애를 왜 들여보냈느냐”는 지청구만 들었다. 그날 불이 꺼진 수술방에서 ㄴ씨는 홀로 울었다. 이후로도 “너 그것도 몰라?” “너 수술방이랑 안 맞는 거 같다” 등 의사와 선배들의 질책이 쏟아졌다.

ㄴ씨는 “제가 느낀 괴롭힘은 안 알려주는 괴롭힘”이라며 “내가 공부해서 잘 설명해보겠다는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오기로 버틴 성과는 3번째 병원에서 조금씩 발휘됐다. 선배 간호사의 출산휴가로 8~10년차가 하는 ‘수술방장’을 ㄴ씨는 3년차에 맡게 됐다. 해당 수술방의 간호사 업무를 총괄하며 신입 간호사 교육도 맡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교육을 준비했다. 일하는 중에도 교육법을 고민하고, 밤늦게 퇴근하고서도 교육 자료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신입을 태운 건 아니다. 신입이 실수를 하면 “나는 신입 때 멍청한 실수 많이 했는데 나보다 낫다”고 칭찬해줬다. 각종 수술기구를 설명할 때는 “부인과 기구는 ‘엘리스’처럼 여자 이름이 많다”는 식으로 쉽게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어느 후배가 “ㄴ선생님 밑에서 배우면 복받은 거야”라고 했을 때 일이 즐거웠다.

‘안 알려주는 괴롭힘’ 견뎌내고 버텼더니

마지막 병원선 최소 8년 차 업무를 3년 차에 맡겨놓고

후배 간호사들 교육까지 시켜


그렇게 2년을 보냈지만 ㄴ씨의 속은 어느샌가부터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제가 화장실 못 가고 밥 못 먹고 해도 신입이 ‘선생님, 화장실 가고 싶어요’ 하면 먼저 배려해주다 보니까 나중에는 ‘나는 누가 챙겨주지’ 하는 생각에 서러웠다”며 “계속 신입이 들어오고, 한 번에 2~3명씩 가르치는 상황까지 되니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내 일도, 후배를 가르치는 일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몸으로 나타났다. 방장을 맡은 지 3개월 만에 ㄴ씨는 수술 중에 숨이 안 쉬어지는 걸 느꼈다. 후배에게 “마스크를 내려달라”고 했는데 그대로 쓰러졌다. 깨어나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그럴 수 있다”는 얘길 들었다.

경험이 쌓여갈수록 일 또한 무게를 더해갔다. “잠깐 방심한 사이에, 당장 큰 실수는 아니더라도 이게 도미노가 돼 걷잡을 수 없이 큰 사고가 나는” 경험들이 쌓였다. 암이 온몸으로 전이된 환자를 수술하던 어느 날, 기구 하나가 수술실 바닥에 떨어졌다. ㄴ씨는 기구를 소독하기 위해 멸균용액에 담그고, 교대자와 번갈아 밥을 먹으러 갔다. 기구 위치에 대한 인수인계를 빠뜨렸고, 갑작스레 필요해진 기구를 찾지 못한 사이 수술방에서 사달이 났다. ㄴ씨는 “기구를 바로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트라우마가 있다”며 “한국 병원은 의사나 간호사 개인의 작은 실수에도 생명이 좌우된다. 안전장치가 없다”고 했다.

‘나처럼 힘들게 하지 않겠다’ 생각에 후배들 실수에도 배려했지만

그러는 사이 건강 안 좋아져 수술 중 쓰러져

후배에게 “너랑은 안 맞는 것 같다”

내가 들었던 얘기 꺼내며 울컥


“너 수술방이랑 안 맞는 거 같다.” 신입 시절 선배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ㄴ씨는 자신이 맡은 마지막 신입 간호사에게 내뱉었다. 그날 밤 후회하며 신입을 찾아가 울면서 사과했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됐다. “네가 싫은 게 아니고 내가 정말 힘들다”고 털어놓는 ㄴ씨의 말에 신입은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결국 수간호사에게 “신입을 다른 수술방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ㄴ씨는 “후배 입장에서는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내가 못하니까 나를 버렸구나, 싫다는 거구나’ 이렇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고 했다.

당시 ㄴ씨는 “화가 울컥울컥 나고”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는 “명상시간에도 화가 난다”는 이유로 2년간 배운 요가를 그만뒀다. 대신 사격장을 다녔다. 분이 좀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어디 기댈 곳 없이 후배들 실수를 커버해야 되고, 뭔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버겁다”는 부담감은 씻어낼 길이 없었다. 결국 그는 “내 자신이 무섭다”며 사표를 냈다. 한동안 정신상담을 받아야 했다. ㄴ씨는 후배를 태우고, 그 자신도 태워버렸다.

ㄴ씨는 “간호사는 한 발짝만 내디디면 떨어지는 높은 곳에 서 있는데 난간은 없고 조심하라고만 한다”며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열심히 했었는데 그러려면 그럴수록 더 파탄이 났다”고 말했다.

이효상·김서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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