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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요리라는 이름의 예술, 로산진의 미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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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맛있는 음식 먹고 싶다”

전설적인 도예가·미식가 로산진

식재료, 음식 대하는 태도 다뤄

“식기와 음식은 부부같은 사이”



한겨레

요리를 대하는 마음가짐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이민연 옮김/글항아리·1만6000원

무타협 미식가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김유 옮김/허클베리북스·1만5000원

일본의 전설적인 서예가, 도예가, 요리인, 무엇보다 미식가인 기타오지 로산진의 글을 묶은 책 두 권이 같은 시기에 출간되었다. <요리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무타협 미식가>로, 상당 부분 내용이 겹친다. 그는 “사람으로 태어나 먹고 마시지 않는 이는 없으나 그 맛을 잘 아는 이는 드물다”는 맹자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데, 맛을 잘 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글을 묶은 책들이다. “평생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던 로산진은 자신이 건강한 이유를 먹고 싶은 것, 맛있는 것만 먹기 때문이라고도 강조했다. 뭐 먹겠냐는 질문에 “아무거나”라고 대답해본 적이 없는 사람.

기타오지 로산진은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 1883년 태어나 1959년 세상을 떠났는데 서예에 뛰어났고, 그림을 그렸고, 낙관을 새겼고, 고미술을 사랑했고, 도자기를 빚었는데, 평생 변함없이 추구한 것이 미식이었다. 미식을 추구했다면 부유한 집안 출신의 도락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는 교토의 가미가모 신사에 속한 사가에서 태어났는데, 쉽게 설명하면 단지 신사를 지키는 일을 하는 가난한 집안이어서, 그는 태어난 지 이레도 지나지 않아 “내다버리듯” 가난한 농부의 집 수양아들로 보내졌다. 이후 스무 살에 교토를 떠나 도쿄로 가기까지 그는 여러 집을 떠돌며 살았다. 아홉 살 되던 해 봄부터 스스로 밥을 지어먹고 학교에 갔는데, 식도락가였던 수양부모와 살면서 서서히 맛을 배워나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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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진이 도쿄로 옮긴 것은 서예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는데, 이십대 중반에 조선에서 3년간 머물며 인쇄국에 근무하기도 했다.(이후 조선 백자를 알기 위해 다시 방문해 가마터를 찾기도 했다) 로산진은 조선의 순천, 마산, 부산 방면을 여행하며 먹은 도미회가 맛있었다며 일본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아카시도미와 비교가 안 될 정도라고 쓰기도 했는데, 이 훌륭한 도미가 어디로 팔려나가는지를 알아보니 시모노세키 방면에서 배가 들어와 대부분의 도미를 가져간다고 했단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지만, 식민지였던 조선을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요리문화에 대해서는 서양 요리나 중국 요리와 비교해 일본 요리의 우수성을 강조한 글도 있다.

로산진은 40살이 될 때까지 서예, 그림, 전각, 고미술에 전념했지만 생은 여전히 궁핍해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어도 꿋꿋하게 버텼다”. 그의 황금기는 42살 때부터 53살까지, ‘호시가오카사료’ 시절이었다. 호시가오카사료는 일본 요릿집으로, 경영이 유지되는 선 이상의 이익은 취하지 않는다고 자부한 곳이었다. 요리도(料理道)를 본격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도장이라고 해야 하나. “식기와 음식은 부부같은 사이다”라는 평소 주장에 걸맞게 음식과 한 쌍을 이루는 그릇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로산진은 직접 그릇을 만들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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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로산진의 미식론이 바로 이 책들에 담겼다. 혹시 일본 여행에서 도움이 될 만한 미식 관련 팁이 있을지 궁금하다면, 아주 약간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요즘 맛에 대한 정보가 특정 식당의 특정 메뉴를 알리는 데 치중한다면 로산진은 맛집이 아니라 재료를 중시한다. 요리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식재료라면 단순히 무엇이 중요하지 않고, 계절과 산지가 중요하다. 로산진은 이 두 권의 책에서 그 모든 것을 거의 80년 전 기준으로 논했다. 교토에서 이십 년을 살고 도쿄로 이주한 그는 맛에 깐깐한 교토 사람 특유의 신랄함을 갖춰, 책에는 수도 없이 도쿄 사람은 맛을 모른다는 투덜거림을 늘어놓곤 했다. “나는 요즘 요리사 중에 쌀밥을 제대로 맛있게 지을 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걱정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라고도, “이제 교토의 요리도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다고도 썼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읽다보면 로산진이 그 옛날 먹었을 ‘그 요리’는 이제 없다는 결론뿐이다. 그럼에도, 식재료의 특징과 조리법, 음식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구구절절 흥미진진하다.

한국 사람도 좋아하는 식재료 이야기 중에는 장어가 있을 텐데, “장어 맛은 계절과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장어가 끊임없이 자신의 감각에 따라 먹이를 쫓아 이동해 서식하는 바다나 먹이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먹이를 배부르게 먹은 장어야말로 우리 입맛을 가장 만족시키는 장어.” 그러면 양식 장어에게 좋은 것을 먹게 하면 어떻겠는가? 이에 대한 답변이 재미있다. “사실 값비싼 먹이를 준다고 해서 장어의 질이 더 좋아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어차피 인간은 장어가 어떤 먹이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로산진이 꼽는 특이한 음식 중 맛있는 것으로는 도롱뇽이 있다. 60㎝ 안팎의 도롱뇽을 직접 손질해 먹은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생김새가 그로테스크하고 피부도 번들거리니 요리사도 선뜻 손질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일도 있는 모양이다. 배를 가르면 도롱뇽 특유의 냄새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는데, 이 냄새를 두고 로산진은 ‘산초어’(山椒漁)라는 이름의 유래를 짐작한다. 맛은 자라와 복어를 섞어놓은 듯한데, 자라처럼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로산진의 미식론은 단순한 듯 따라하기 어렵다. 그는 직접 요리를 하는 사람답게 “매일 먹는 가정 요리를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어내느냐”를 따지고, 냄비 요리의 재료를 그릇에 담는 방법을 꽃꽂이에 비유한다. 맛을 어떻게 느끼게 하는가에 대한 로산진의 신랄함은 유머러스할 정도다. “맛에 둔감한 이에게 맛을 느끼게 하려면 배를 곯게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진정한 미식가라고 할 수 없는 이들은 뭔가 지혜롭게 그럴듯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으면 맛있는 것도 맛있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속임수로 음식을 맛있게 먹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 또한 하나의 요리법이다.” 마지막으로, 미식에 정통한 사람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게 직접 요리를 해보라고 말하라. 뭔가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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