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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출발점에 선 광주형 일자리, 상생 이루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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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 일자리 유치 경쟁 현실화…노동조건 하향평준화 부를 위기

내수시장 안주하면 일감 놓고 '제로썸 게임'만 낳을 뿐

정부 주도에서 노사책임경영으로 거듭나야 사업도 성공할 수 있어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노컷뉴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4년여만에 본격 시동에 들어갔지만, 노사상생을 통해 적정임금 일자리를 안착시키겠다는 목표로 나아가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보인다.

광주시가 2014년 9월 21세기 미래 산업으로 친환경 자동차 산업 유치를 내걸었던 광주형 일자리는 4년 반의 긴 세월을 거쳐 먼 길을 돌아 노사정 협력 아래 비교적 낮은 임금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현재의 목표로 바뀌었다.

온갖 논란에도 지난 달 31일 광주시와 현대차가 투자 협약을 체결하고 투자자를 모집하면서 첫발을 뗐지만, 이를 둘러싼 불안한 눈길은 여전하다.

노동계의 가장 큰 근심거리 중 하나는 자칫 더 오래 일하고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임금을 쪼개 더 많은 일자리를 나누자는 광주형 일자리의 취지 탓에 비교적 낮은 임금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완성차 생산라인에 비해 절반 수준의 임금을 제공하면서도 주44시간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일하도록 해 지나치게 노동조건이 후퇴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게다가 최근 광주형 일자리 타결 소식에 군산, 구미, 대구, 거제 등 여러 지역에서 광주형 일자리와 유사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나서면서 '저임금 일자리 유치 경쟁'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노동조건이 점차 개선되려면 노동자들이 사측을 대상으로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노조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광주형 일자리 협약에는 노조 대신 이른바 '상생협의회(노사협의회)'를 두기로 조항을 뒀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조인식에 대해 입장문을 내면서 "노동3권은 합의를 해야 발생하는 권리가 아니다"라며 "광주시와 현대차가 별도합의에서 노동3권을 거론한 것은 역설적으로 노동권 제한 필요성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 강훈중 대변인은 "보통 노동자는 임금으로 생활하지만, 광주형 일자리는 지자체가 나서서 복지여건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며 "지자체와 노사가 적정한 임금과 노동조건, 권리 보장을 통해 청년들이 선호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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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저임금 일자리 유치 경쟁은 기존 완성차 공장 노동자에게도 부담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미 지난해 8월 현대차 노사는 울산공장에서 경형SUV를 생산하기로 약속했는데, 광주공장에서도 경형SUV가 생산될 예정이다.

현대차가 경형SUV 생산목표를 대거 높이지 않은 한 울산공장의 생산물량을 광주공장에 넘겨줄 수밖에 없고, 광주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던 기존 울산 노동자들에게는 그만큼 고용불안을 피하기 어렵다.

현대차가 레드오션인 내수시장을 넘어 해외 시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결국 일감을 놓고 다른 지역 공장과 '제로썸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가톨릭대 김기찬 경영학부 교수는 "광주형 일자리를 찬성했지만, 실패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 때에는 정부 주도로 진행했지만, 이제 수익을 내느냐 마느냐는 시장에 달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익을 거두려면 신제품을 내놓고 새롭게 시장을 개척하거나, 충분한 수요를 갖춘 시장을 찾아내야 한다"며 "국내시장만 봐서는 '제로썸 게임'일 수밖에 없고, 해외 시장을 반드시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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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 '광주형 일자리'가 '관(官)주도형 일자리'에 머물러서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나치게 높은 정부 지분과 자금을 현대차 사측이 인수하는 것은 물론, 노사책임경영이 이뤄지기 위한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만 건전한 경영이 가능하다는 비판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민 교수는 "현재까지 현대차 행보로 봐서는 내수시장을 노리고 있어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렇게 된 데에는 광주형 일자리가 책임과 관리 등이 분리된 기형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1대 주주는 광주시고, 자금은 산업은행이 대고, 현대차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경영만 맡고 있다"며 "나중에 노사 협의를 시작하면 서로 책임을 미루려 할 수 있고, 노조도 사안에 따라 유리한 대상을 골라 대화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대차는 겨우 수백억원만 내고 경영권을 쥔데다, 정부의 최대 골칫거리를 해결한 것을 빌미로 각종 이득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정작 광주공장의 성패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며 "반면 정부와 광주 시민은 광주형 일자리가 잘못되면 그 책임을 다 뒤집어써야 하고, 막대한 세금을 퍼붓더라도 이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지금처럼 정부 주도로 재벌에게 사탕을 주고 노동계 팔을 비틀어서 억지로 일자리를 창출하면 안된다"며 "점차 현대차가 지분을 인수해서 정부 대신 현대차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한편, 노동이사제 도입 등을 통해 노사책임경영이 이뤄지는 정상적인 회사로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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