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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57만 그루 땡감, 달콤한 마법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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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맛] [12] 상주곶감

조선일보

경북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다. 흰 쌀, 흰 누에고치, 곶감으로 유명하다. 상주 곶감이 삼백에 포함되는 것은 표면에 서리처럼 하얗게 내린 흰 가루, 시상(枾霜) 때문이다. 시상은 감을 말리는 중에 포도당과 과당이 스며 나와 생긴다. 단맛이 쫄깃하게 밴 상주 곶감은 임금도 사로잡았다. 조선왕조실록 예종편 즉위년 11월 13일 자에 '상주의 곶감을 진상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150권에도 상주 곶감에 대한 기록이 있다.

상주는 국내 최대 곶감 산지다. 지난 7일 찾은 상주 연원동 감마을 농가에서는 잘 말린 곶감을 포장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곶감 한번 잡숴 봐. 달콤하고 쫄깃한 게 말이 필요 없지." 택배 작업에 열중하던 이재훈(55)씨는 말랑한 곶감을 한입 크기로 갈라 맛을 보라며 건넸다. 이씨는 지난해 감나무 5000그루에서 수확한 감을 곶감으로 말려 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인건비·자재비 등 경비를 모두 빼고 3억원 정도를 남겼다고 한다. 이씨는 "상주 곶감은 타 지역 곶감에 비해 당도가 매우 높다"며 "매출 10억원을 웃도는 농가도 많다"고 말했다.

상주는 백두대간을 따라 펼쳐진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을 속리산이 막아준다. 건조하고 찬 바람이 많이 부는 데다 일교차가 커 곶감을 만들기에 좋다. 곶감 전용인 둥시 감나무 57만2000그루를 기른다. 전국 최대 규모다. 둥시는 땡감이라고도 불리는 떫은 감이다. 다른 감보다 수분 함량이 30% 적어 곶감 만들기에 적합하다. 지난해 상주 곶감 농가 4000여 가구(1536㏊)에서 전국 곶감 생산량의 60%인 1만1256t(3000억원)을 생산했다. 곶감은 일반 감에 비해 당분은 4배, 비타민A는 7배 정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경북 상주시 연원동의 한 곶감 농가에 곶감용 감들이 어른 키 2배 높이 덕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상주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집집마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생감은 덕장에서 60일 넘게 말려야 곶감이 된다. /상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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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곶감 만들기는 10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이 무렵이면 집집마다 아이·어른 할 것 없이 생감 따기에 분주하다. 생감을 나무에서 따 껍질을 벗긴 후 덕장에서 60일 정도 건조시킨다. 감은 덕장에 매달려 발갛게 홍시가 되었다가 겉부터 마르면서 곶감이 된다. 이때 날씨가 중요하다. 맑고 건조한 날이 좋다. 기온이 낮에는 약간 높았다가 밤에는 적당히 떨어져야 한다. 잘 마른 곶감은 설 명절 전후에 인기 선물로 팔려나간다.

상주시는 곶감에 공을 많이 들인다. 시는 2016년 '상주 곶감 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해 곶감 관리·생산·포장·2차 가공 등에 77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상주시청에서 남서쪽으로 9㎞ 떨어진 남장동과 외남면은 2005년 전국 최초로 곶감 특구(99만㎡)로 지정됐다. 마을 입구부터 도로를 따라 17㎞ 거리에 감나무로 가로수를 심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가 유명하다. 외남면 소은리의 '하늘아래 첫 감나무'다. 터주 감나무로도 불린다. 2010년 경북도와 상주시가 국립산림과학원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수령 750년을 인정받았다. 소유주는 김영주(77)씨다. 김씨는 3대째 곶감을 만들고 있다. 김씨의 곶감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지난해 10월 말쯤 2450개를 수확했다. 많을 때는 5000개도 달린다고 한다. 김씨는 "수확한 곶감은 전량 수도권 주요 백화점 등에 납품됐다"며 "30개들이 곶감 한 상자가 27만원에 팔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외남면에는 전국 최초의 곶감테마공원(3만2000㎡)도 있다. 지난 2015년 118억원을 들여 개장했다. 공원의 명물은 호랑이 모형이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 동화 덕분에 주말마다 유치원생들이 부모와 함께 견학을 온다. 매년 12월 중순 이곳에서 곶감축제가 열린다. 2011년 첫 축제를 시작해 지난해까지 100만명이 다녀갔다.

상주 곶감은 제조 과정에 첨단·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62억5000만원이 투자된 상주시 헌신동 상주곶감유통센터(1만4000㎡)에서 곶감 수매, 영농자재판매, 군납·수출 등을 담당한다. 지난해 8월 뉴질랜드에 곶감 1.6t을 처음 수출한 데 이어 최근엔 캐나다, 미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10개국에 곶감 수출 길을 열었다. 황천모 상주시장은 "상주 곶감이 명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투자해 농가 소득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상주=권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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