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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달착지근하고 짭조름한 겨울 바다의 맛··· 울진 대게 ‘먹방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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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 후포항 위판장에선 겨우내 아침마다 대게와 붉은대게 경매가 열린다. 산지에서 바로 쪄먹는 대게는 한겨울에 즐기는 별미 중에서도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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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는 겨울 식도락의 정수다. 요즘은 방어나 과메기도 대중적 인기를 누리며 지위가 격상됐지만 바다에서 나는 겨울 진미 중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대게다. 대게를 먹으려면 동해로 가야 한다. 영덕을 먼저 떠올렸다면 평범한 사람이다. 국내 대게 어획량 1위 포항을 선택했다면 중수쯤 된다. 고수들은 울진으로 간다. 울진은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하던 대게 ‘원조’ 감투를 놓고 영덕과 다투는 곳이다. 울진대게 맛을 상찬한 조선시대 문헌 기록이 여럿이다. 대게는 먼바다보다 연안에서 잡은 걸 더 쳐주는데, 울진대게는 전부 앞바다에서 건진 놈들이다.

대게는 12월부터 조업에 들어가 이듬해 5월까지 잡는다. 설이 지나면서부터 살이 차기 시작해 3월까지가 한창 맛있을 때다. 대게는 특별한 요리법이 필요 없다. 산지에서 바로 쪄먹는 맛을 이길 방법은 없다. 해마다 이맘때면 고속도로도 철도도 연결되지 않은 ‘교통 오지’ 울진으로 미식가들이 꾸역꾸역 몰려오는 이유다.

■ 커서 대게가 아니라, 대나무 닮아 대게

대게 ‘먹방여행’의 시작점은 울진 최남단 후포항이다. 눈요기부터 하라는 뜻이다. 대게 철인 한겨울부터 봄까지 후포항 위판장에선 매일 아침 경매가 열린다. 오전 8시부터는 대게, 9시30분부터는 흔히 홍게라 부르는 붉은대게 경매가 이뤄진다. 느지막이 경매를 하는 건 당일 새벽 잡아온 게가 아니라 전날 어획량을 내놓기 때문이다. 덕분에 관광객들도 여유 있게 아침을 먹고 경매 구경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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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로 잰 몸통 길이가 9㎝를 넘지 않는 대게는 잡을 수도 팔 수도 없다. 그것도 수컷 얘기다. 암컷 대게는 아예 포획이 금지돼 있다. 잡아먹을 수 있는 크기로 대게가 자라기까지는 7~10년이 걸린다. 후포항 위판장에서 수협 관계자가 경매를 위해 준비된 대게의 크기를 측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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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차에서 꺼낸 대게를 바닥에 부리고 나면 작업자들의 손이 빨라진다. 눈대중으로 얼른 훑어보고 대게를 크기에 따라 분류해 줄 세우는데 움직이지 못하도록 배가 위로 향하게 놓아둔다. 순식간에 열 맞춰 누워 버둥거리는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군침이 먼저 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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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가 시작되기 전 바닥에 도열한 대게의 상태를 눈으로 살피는 중도매인들. 숫자가 적힌 모자와 목이 긴 장화 등 차림새로 위판장의 일꾼들과 관광객을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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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열한 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상태를 확인하는 중도매인들의 눈매가 날카롭다. 어느 놈이 실한지 배 부분을 꾹꾹 눌러보기도 하고 색깔도 유심히 살핀다. 잠시 후 빨간 모자를 쓴 경매사가 등장하더니 사이렌을 울리며 경매 시작을 알렸다. 중도매인들은 저마다 손바닥만 한 접이식 흑판에 분필로 조그맣게 숫자를 적어 내민다. 그걸 받아 확인한 경매사는 딱딱 소리를 내며 흑판을 접어 돌려주다가 가장 높게 써낸 가격을 큰 소리로 외치는데 그걸로 낙찰이다. 저마다 분주히 움직이는 경매장은 활기가 넘친다. 구경꾼인 관광객들도 쪼그려 앉아 꿈틀대는 대게에 카메라를 들이밀며 어색하지 않게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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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를 쓴 경매사는 중도매인들이 적어낸 가격을 차례로 확인한 뒤 가장 높은 숫자를 불러 낙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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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먹는 거 잘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법. 대게도 마찬가지다. 먼저 이름의 유래부터. 몸집이 크다고 해서 대게가 아니다. 집게발을 제외한 8개의 길고 마디진 다리가 대나무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죽해(竹蟹·대나무게)라 불렀다. 살이 꽉 찬 게는 박달나무처럼 단단하다 해서 박달대게라 부르는데 한 번 조업 나가면 배 한 척이 서너 마리 잡을까 말까 한 귀하신 몸이다. 가격도 대게의 두세 배쯤 한다. 반대로 속이 덜 차 물이 든 게는 물게, 수(水)게라 해서 헐값에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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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 가마솥에서 쪄낸 붉은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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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을 때나 익힌 뒤에나 색이 한결같이 빨간 붉은대게는 대게보다 금어기가 짧고 값도 헐하다. 대게보다 달착지근한 맛이 덜하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이 구별하기는 힘들다. 수심 100~500m 내외에 서식하는 대게와 달리 1000m 이상 심해에서 잡히는 붉은대게는 철에 따라 대게보다 더 찰진 식감을 자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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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부분이 하얀 것이 대게, 몸 전체가 짙은 주홍빛을 띄는 것이 붉은대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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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대게는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0여㎞ 떨어진 왕돌초 일대에서 잡는다. 울진 사람들은 왕돌짬이라고 부른다. 짬은 물속의 큰 바위 ‘여’를 뜻하는 사투리다. 바닷속 여의도 두 배만 한 광활한 바위지대에 대게를 포함, 120여종의 해양생물이 둥지를 튼 수중 보고다.

■ 해각포, 게짜박이…알고 먹어야 제맛

후포항 근처에는 대게 전문점이 여럿이다. 주인장이 경매로 들인 대게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후포여객선터미널 앞에도 대게집이 몰려 있는데 ‘왕돌수산’은 커다란 무쇠 가마솥에 찐 대게를 낸다. 게 다리에 칼집을 내서 주는데 살짝 손으로 비틀기만 하면 살이 쭉 빠져나와 먹기 편하다. 게살을 다 발라먹고 나면 살과 내장이 남은 게딱지에 따뜻한 볶음밥을 담아주는데 잊기 힘든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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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집을 낸 대게 앞발을 살짝만 비틀면 꽉 찬 속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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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딱지 볶음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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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사람들이 즐기는 별미 중에 홑게가 있다. 대게는 몸집이 자라면서 여러 차례 탈피를 하는데, 탈피 직후 껍질이 부드러워진 놈을 홑게라 부른다. 홑게는 회로 먹는다. 박달대게보다 더 구하기 힘들어 맛보려면 미리 대게집에 부탁해 수소문을 해야 한다. 대게 다리살을 쪄서 말린 해각포도 독특한 맛이다. 바삭하면서 짭조름하니 맥주 안주로 곁들이면 딱이다. 어부들은 저장해둔 해각포로 죽을 끓여 입맛이 없을 때나 해장이 필요할 때 먹기도 한다. 예전엔 위판장에서 끊어진 대게 다리를 주워다 집집마다 해각포를 만들어 먹곤 했는데, 대게 몸값이 비싸진 요즘은 죽은 대게를 싸게 사다가 따로 만든다고 한다. 대게집에 갔다면 남은 해각포가 없는지 슬쩍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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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대게 다리살을 말린 해각포. 주전부리로 가볍게 즐기기도 하고 죽을 끓여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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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의 고장답게 울진엔 대게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집도 있다. 울진군 근남면의 대게 식당 ‘이게대게’는 대표 메뉴로 게짜박이를 선보인다. 게짜박이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 대게를 오래 보관하며 먹기 위해 만든 음식이다. 게살과 몸통을 매콤달콤한 양념으로 버무렸는데 갓 지은 뜨거운 밥에 비벼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태국 음식 ‘푸팟퐁 커리’의 매운맛 버전이라 하면 감이 잡힐까. 포장용기에 담아 파는 게짜박이는 집에서 스파게티를 해먹을 때 토마토소스 대신 활용하면 특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게대게는 대게찜은 물론 전골, 구이, 회 등 코스 요리도 낸다. 대게돌솥비빔밥, 게살비빔만두 등 선택의 폭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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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짜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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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돌솥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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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는 남획으로 어획량이 줄면서 갈수록 비싸지는 추세다. 왕돌수산 임효철 사장(51)은 “배 한 척이 하루 경매할 수 있는 양이 800마리로 정해져 있는데 요즘 실제 내놓는 건 300~400마리밖에 안된다”며 “찾는 사람은 많은데 잡히는 양은 줄다 보니 가격이 계속 오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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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대게, 오른쪽이 붉은대게다. 배 부분이 하얗고 등껍질은 누르스름한 빛을 띄는 대게와 달리 붉은대게는 살아 있을 때나 익힌 다음에나 몸 전체가 짙은 주홍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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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에서 대게를 가장 싸게 구입하는 방법은 후포항 경매장에서 낙찰받은 중도매인에게 직접 사는 것이다. 보통 경매가에 수수료 정도를 더한 가격에 판매된다. 흥정도 어렵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면 대게 전문점에서 사는 것도 방법이다. 대게집에선 주문하기 따라 산 채로도 익혀서도 대게를 살 수 있다. 집까지 택배도 보내준다. 2월 둘째 주 현재 울진대게 시세는 판매 가능한 최소 크기인 몸통 9㎝짜리 한 마리가 경매가 기준 1만4000원 정도다. 12㎝ 이상 되는 대게는 경매가 2만원을 넘나든다. 붉은대게는 같은 가격이면 대게보다 좀 더 큰 놈을 구입할 수 있다. 대게 전문점에선 통상 경매가의 1.5~2배 가격에 찜 요리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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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항 우성식당의 물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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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와 함께 만찬을 즐긴 다음날 해장으론 곰치국만 한 게 없다. 곰치는 동해안 전역에서 잡히는 어종이다. 흉측한 생김새와 달리 입 안에서 스르륵 부서지는 식감은 부드럽다. 표준명은 꼼치지만 지역마다 곰치, 물곰, 물텀벙 등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울진에선 물곰이라 한다. 붉은대게를 잡는 통발에 걸려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묵은 김치를 썰어넣고 후르륵 끓여낸 물곰국은 뱃사람들의 배를 채우고 몸을 데워주던 향토 음식에서 이제는 도시의 미식가들도 찾아다니며 먹는 별미가 됐다. 울진 죽변항에 2대째 물곰국을 파는 우성식당이 유명하다. 디포리(밴댕이), 새우, 황태 머리에 양파, 무, 대파 등 각종 채소를 넣고 끓인 육수에 물곰 서너 토막을 넣은 뒤 5~7분 끓인 물곰국은 먹고 나면 속도 든든하지만 무엇보다 숙취 해소에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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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항 경매장에 나온 꼼치. 울진에선 물곰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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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은 이달 28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후포항 왕돌초광장 일대에서 ‘2019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를 연다. ‘월송 큰 줄 당기기’ 등 전통 민속놀이와 대게춤 플래시몹, 대게춤 경연대회, 거일리 대게원조마을 풍어 해원굿 등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대게 경매와 깜짝 할인 행사, 등기산 대게길 걷기 등 대게를 주제로 한 이벤트도 상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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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항 인근의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대게로 배를 채운 뒤 산책 삼아 둘러보기 좋다. 바다 위 20m 높이에 135m 길이로 뻗은 인공 산책로인데, 끝부분 57m 구간은 바닥이 투명한 유리로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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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 본 후포 갓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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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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