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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지식인은, 이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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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지식인’이 생산하는 담론과 그 지식인의 삶 사이의 괴리는 상당했다. 그러나 적어도 ‘배운 사람’들로 하여금 ‘현장’으로 눈을 돌리게끔 하는 것은 이런 당위적 지식인의 초상이었다.

과거의 지식인 계층은 노동계급처럼 분열되고 말았다. 지식의 착취 공장, 한국 대학의 피라미드를 뒷받침하는 시간강사와 비정년 교수, 연구자들은 말 그대로 ‘지식 무산 계급’으로 재편됐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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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의 한 강연 자리에서 “요즘 지식인들의 고민들이 옛날에 비해 훨씬 덜 치열한 것 같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사실 나로서는 답변다운 답변을 내놓기가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과연 요즘 같은 한국 사회에서는 누구를 ‘지식인’으로 지칭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적 ‘지식인’은 한국의 20세기 역사가 만들어놓은 중요한 발명이었고 20세기 역사의 주역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누구를 여전히 ‘지식인’이라 호명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의문이다.

지식인뿐인가? 신자유주의는 한국 사회 계층의 지형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노동계급을 사례로 들어보자. 나는 ‘노동귀족’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주당 평균 48시간이나 일하고 기업 경영에 발언권을 갖지 않는 대기업 정규직은 ‘중간계층에 가까운 노동자’일지는 모르지만 ‘귀족’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크다. 그런데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연봉이 대기업 정규직의 연봉에 비해 40%밖에 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두 계층을 같이 아울러 ‘노동계급’이라고 부르는 것도 옛날처럼 쉽지 않다. 그만큼 신자유주의는 과거의 노동계급을 심하게 분열해놓았다. 그런데 지식 노동자 사이의 분열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과거와 같은 지식인 초상은 증발되고 말았다.

한국의 ‘지식인’은 ‘인텔리겐치아’의 번역어다. 근대 번역어들의 대부분은 서구의 언어, 즉 영어나 불어, 독어에서 기원한 것들이지만, ‘지식인’은 드물게 러어의 ‘인텔리겐치아’를 번역한 말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자명하다. 역사적 발전의 과정상 서구보다 러시아는 한국에 훨씬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전세계적 자본주의 발달을 주도하는 구미권 핵심부 국가에서는 지식 기술자, 즉 인텔렉추얼 계층은 국가와 자본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으며 그 성향상 자유주의적이거나 보수적이었다. 카를 마르크스(1818~1883)나 조지 오웰(1903~1950)처럼 급진 사상이나 문학을 창조했던 무일푼의 괴짜들은 구미권 인텔렉추얼 중에서는 늘 비주류로 밀려 있었다. 한데 근대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 준주변부로 분류되어 혹독한 압제 밑에서 살아야 했던 러시아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급진파일수록 오히려 폭정에 지친 사회에서 존경을 받았고, 레프 톨스토이(1828~1910)와 같은 문호일수록 국가와 대립의 각을 세우는 사회였다. 이런 사회에서 만들어진 인텔리겐치아라는 개념은 서구의 ‘인텔렉추얼’보다 동아시아의 ‘이민위천(以民爲天)의 지사(志士)’에 더 가까웠으며, 그만큼 ‘지식인’으로 번역되어 한국 사회에서 쉽게 뿌리를 내렸다.

192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역사적 조건은 크게 달라졌지만 그 70여년간 한반도 땅에서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은 대체로 엇비슷한 함의를 계속 지녔다. 지식인은 좁게는 민족이나 계급을, 넓게는 인류를 시야에 놓은 ‘사상분자’였고, 민족 내지 계급, 아니면 인류 보편의 이해나 원리원칙에 거역하는 지배자들에게 저항을 해야 하는 주체였다. 저항은 못 해도 적어도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지식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식인은 ‘운동’의 장에서 ‘대중’을 만났고 늘 ‘현장’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이러한 지식인 개념에서 문제를 찾자면 천가지, 만가지도 넘을 것이다. ‘지식인’과 ‘대중’을 나눈다는 묵시적 엘리트주의 자체가 그다지 민주적 발상이 아니었다는 것부터 당연히 문제삼아야 한다. 게다가 지식인의 거시적 역할은 그 미시적인 삶의 현장과는 거의 연결되지 않았다. 사회에서 ‘참여 지식인’으로 명성을 누리는 ‘민중 신학자’나 ‘민중 사학자’는 학교라는 소사회에서는 얼마든지 독재자와 같은 면모를 보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지식인은 중산층 남성들이었고 적어도 그 사생활에서는 중산층 내지 남성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마디로 20세기 한국 ‘지식인’이 생산하는 담론과 그 지식인의 삶 사이의 괴리는 상당했다. 그러나 적어도 ‘배운 사람’들로 하여금 ‘현장’으로 눈을 돌리게끔 하는 것은 이런 당위적 지식인의 초상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의 변화가 찾아왔다. 1970년대 말 레이건주의와 대처주의로 시작된 세계적 보수화의 물결은 1990년대 초중반에 한국까지 덮치고 말았다. 물론 그 상황 속에서 한국적 특성도 보였다. 문민정부 출발과 함께 군 출신들이 정부의 요직에서 대거 물러나게 되고, 이렇게 해서 비워진 자리를 채운 것은 바로 학벌 좋은 지식인이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는 아예 운동 사회의 일부 지도층까지 정부 요직에 흡수되었고, 그만큼 그들이나 그 출신 단체들이 주류화, 보수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의 부동산 경기 호황 시절에는 일단 집을 보유한 기존 지식인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는 보유 자산 가치의 엄청난 인상을 봤고 사회적 위치 차원에서 단순한 ‘지식 노동자’에서 중간계층이나 그 이상으로 상향 이동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쓸모 있는’ 지식 위주의 극도로 신자유주의적인 ‘신지식인론’을 제창한 1999년에는, 운동 사회와 연결돼 있었던 과거의 지식인 사회는 이미 사실상 와해돼 있었다. 이에 뒤이은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은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반도에 존재했던 ‘인텔리겐치아’와 같은 유형의 지식인을 확인사살 하고 말았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의 신자유주의화를 경험한 대학은 착취 공장으로 변모했다. 4년제 대학의 정규직 교원 수는 5년 전에는 6만4천명, 작년에는 6만8천명으로, 거의 늘지 않는다. 한데 국내만 해도 1년간 박사학위를 새로이 취득한 이들이 1만명 이상이다. 이들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지난 20년 사이에 공장이 각종 비정규직의 ‘종합세트’가 됐듯이 대학도 ‘무늬만 교수’의 왕국이 됐다. 강의전임교수, 산학협력교수, 교양교수, 연구교수, 비정년트랙 교수, 겸임교수, 계약교수… 새로운 직급을 나타내는 신조어는 다양하지만 의미는 매한가지다. ‘배운 사람’으로 하여금 “찍소리도 못 하게” 해놓고 정규직보다 훨씬 더 적은 연봉을 주면서(대개 3500만원도 안 된다) 영어논문 생산과 강의 등을 강요하며 싼값에 지식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과연 ‘사회 참여’할 엄두를 내기가 쉽겠는가?

이렇게 해서 과거의 지식인 계층은 노동계급처럼 분열되고 말았다. 지식의 착취 공장, 한국 대학의 피라미드를 뒷받침하는 시간강사와 비정년 교수, 연구자들은 말 그대로 ‘지식 무산 계급’으로 재편됐다. 정권이 바뀌면 정치적으로 ‘불온한’ 예술인·연예인의 블랙리스트가 해지되지만, 조금이라도 윗사람이나 소속기관에 저항했던 비정규직 연구자들의 비공식적 블랙리스트는 정권이 아무리 교체돼도 그리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지식 무산 계급’이 투쟁의 현장으로 나가기는 지난한 일이다. ‘지식 무산 계급’을 관리하면서 그 노동의 일부 과실을 착취하는 ‘지식 기술자’, 즉 전임교원들은 이제는 대개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충원된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사회의 문제와 거리가 멀다. 그리고 맨 위에서 대학과 연구자 사회를 총지휘하는 ‘고급 지식 관리자’들의 대부분은 도미 유학파 출신으로 신자유주의의 적극적인 신봉자들이다. 오늘날의 속칭 ‘헬조선’을 만드는 데에 앞장선 그들을 ‘지식인’이라고 부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텔리겐치아는 죽고, 서구형 인텔렉추얼을 지향하는 ‘지식 기술자’나 ‘관리자’, 그리고 그들이 착취하는 ‘지식 무산 계급’만이 남아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의 피해자들은 ‘배운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필요한 부분을 스스로 배워나가면서 이 나라를 지옥으로 만든 신자유주의 체제와의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비정규직 노동자임을 깨달은 ‘지식 무산 계급’의 일부 역시 언젠가 난관을 뚫어 이 투쟁에 크게 보탤 수 있을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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