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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사회,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 피멍든 임신부 "남편 퇴근 두려워"...폭력상담 하루 2,600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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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폭력피해자 - 가정·데이트폭력에 신음하는 여성들

"이러다간 죽을지 모른다 생각들어" 48년간 맞은 부인, 보호시설 입소

이별 통보하자 "성관계 소문" 협박...작년 가정·연인폭력 신고 24만여건

폭언에 시달린 아이, 공격적 성향...정서적 악영향으로 폭력 대물림도

임신 6개월째인 A씨는 온몸에 멍자국이 선명하다. 남편이 걸핏하면 때려서 생긴 상처다. 남편의 폭력은 아이들에게도 이어졌다. 아빠에게 맞고 자란 아이는 ‘아빠가 호랑이가 돼 동생을 잡아먹었다’는 악몽에 시달렸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숫자와 글도 떼지 못했다. 둘째 아이는 3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폭력적인 분위기 속에 A씨는 임신 후 반년이 지나는 동안 산부인과를 한번도 가지 못했다. 그는 “남편이 아이에게 손찌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남편이 퇴근하기 전 날카로운 것들을 서둘러 치워놓기도 했다”며 “남편은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빚도 많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집안 문제라고만 생각했다”고 전했다.

가정폭력·데이트폭력으로 경찰·관계기관을 찾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폭력의 수준도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육체적 고통이 우울증·무기력증 등 정신적 문제로 이어지고 폭력의 대물림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즉각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밀하게, 오래 진행되는 폭력=경찰청 및 관계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신고된 것만 총 22만8,000여건에 달했다. 지난 2013년 16만건에서 5년 만에 6만건 이상 증가한 셈이다. 데이트 폭력 역시 경찰에 신고된 건수가 2016년에는 1만건도 안 됐지만 지난해에는 1만7,233건을 기록했다.

데이트폭력·가정폭력을 개인 문제로 인식해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혼자 삭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더 많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여성긴급전화 1366, 해바라기센터 등 관계기관·시민단체에서 각종 폭력을 상담한 것만도 47만건을 넘는다. 이는 하루 평균 2,600여건으로 경찰이 한 해 받는 신고 건수의 배를 넘은 수준이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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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단체에서 상담받은 사례들의 면면을 보면 장기간 폭력에 노출된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을 찾은 B씨는 결혼생활 48년 동안 이어진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긴급피난처에 입소했다. 결혼 초부터 남편은 B씨의 목을 조르고 발로 밟고 의자로 짓눌렀다. 쓰레기를 버리러 잠시 나간 B씨를 ‘남자와 바람난 것 아니냐’며 의심하기도 했다. 하루는 남편에게 심하게 맞아 병원에 입원했지만 남편이 병원까지 찾아봐 폭언을 쏟아붓고 난동을 부려 퇴원한 적도 있었다. B씨는 “집에 가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보호시설에 들어왔다”며 “하지만 남편과 함께 지내는 자녀에게 폭력이 행해질까 두려워 집으로 가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결혼 전 데이트할 때부터 폭력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결혼 이후로도 폭력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그 위험이 크다. 상담을 한 C씨는 남자친구와 3년째 연애 중이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크다. 남자친구의 술버릇이 마음에 걸렸다.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으로 돌변해 욕하고 물건을 부수고 밤새도록 C씨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술에서 깬 다음날이면 금주하겠다고 약속하지만 한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결혼하면 달라지겠다는 남자친구의 말도 믿기 어렵다. 남정임 1366 중앙센터 상담팀장은 “최근에는 중고등학생에게서 데이트폭력 상담 문의가 간혹 들어온다”면서 “젊은 사람들의 경우 데이트폭력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 신체적·정서적 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것”이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대물림되는 폭력 피해=가정폭력 상담 현장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불안해하고 충동적·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기 쉽다고 입을 모은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학대가 대물림되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D씨는 최근 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학교에서 소리를 지르고 친구들을 때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이 술만 마시면 소리를 지르고 D씨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배운 탓이다. 남편의 고성에 시달리던 D씨도 알코올중독의 모습을 보였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을 자지 못했다.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자녀들이 가정폭력에 노출되면서 물리적 학대뿐만 아니라 정서적 학대에 노출되게 된다. 남 팀장은 “폭력의 피해자들은 본인이 피해를 봤음에도 신고할 경우 자신이 가정을 깨뜨린다고 생각한다”며 “국내에서 한부모가정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에게 아빠가 없는 가정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크다”고 설명했다.

가족에게까지 피해가 이어지는 것은 데이트폭력도 마찬가지다. E씨는 6개월 전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지만 여전히 남자친구의 연락을 받고 있다. 다시 만나자며 집 앞에 찾아오고 카톡을 보내는 것은 일상이다. E씨가 계속 만남을 거부하자 급기야 E씨의 부모님까지 위협하기 시작했다. E씨는 “‘네가 날 떠날 수 있을 줄 아느냐’는 내용의 카톡을 보내고 성관계한 사실을 부모한테 알리고 학교에 소문내겠다고 한다”며 “부모님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는데 정말 무섭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국내에서는 여성긴급전화 ‘1366’으로 가정폭력·성폭력·데이트폭력 등의 상담이 접수되면 병원 치료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한 해바라기센터나 지역별 상담 내용에 따라 개별 상담센터로 분류돼 각종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당장 가해자와 분리가 필요할 경우 일주일간 긴급피난처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피해자가 먼저 목소리를 내야 가능하다. 형사처벌 역시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가정폭력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주거지를 공유하고 피해자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있으며 자녀와 가족 등을 볼모로 피해자를 협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발 위험이 매우 큰 범죄”라며 “(사회가) 가족이나 연인에 대한 폭력을 중대한 범죄로 다루도록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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