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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외적을 뜻하는 '오랑캐', 대체 어디서 온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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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몽골 삼림지대에 살던 '우량카이족'에서 유래

몽골 유럽원정의 주역, 수부타이도 우량카이 출신

15세기 명과 조선에서 만주 여진족도 오랑캐라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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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최종병기활' 장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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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우리나라의 전 근대시대의 전쟁을 다룬 기록들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로 '오랑캐'란 말이 있다. 북방 여진족부터 왜구, 심지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교전한 프랑스와 미국도 '서양 오랑캐'라 칭해왔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를 침공했던 모든 외적을 통칭하는 말이 오랑캐인 셈이다. 국어사전에도 '이민족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 나와있고,1447년 쓰인 용비어천가에도 출전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써온 단어로 알려져있다.


흔히 이 오랑캐란 단어의 어원은 15세기 두만강 일대 만주지방에 살던 여진족을 멸시하는 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왜 '오랑캐'란 단어 자체가 여진족을 멸시하는 말이 됐는지, 그리고 외적 전체를 통칭하는 말로 쓰여왔는지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다. 실제 오랑캐의 어원을 찾기 위해서는 두만강 일대 만주지대보다 더 북쪽으로 눈을 돌리고, 시계열 또한 15세기보다 2백년 정도 위로 올라가야 한다. 오랑캐란 말은 13세기, 몽골이 세계를 정복했던 시절 몽골족이 쓰던 '우량카이(UriyanKqat)'란 말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중세 몽골 유목민들이 쓰던 이 '우량카이'란 말은 삼림지대, 즉 '숲에 사는 사람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북몽골 삼림지역 일대 살아가던 몽골-퉁구스계 수렵민족을 통칭해서 부르던 말로서 오늘날 러시아 연방 내 투바공화국 일대 사는 '투바'족과 '타뉴 우량카이'족 등 일부 유목민들을 낮춰 부르던 말로 알려져있다. 몽골제국이 13세기 말 이후 중국 일대의 원나라를 비롯, 유라시아 대륙 일대 문명권들을 정복해 점차 농경민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여전히 초원에 남아 살던 유목민들을 낮춰 부르는 말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칭기스칸의 4대 장군 중 한사람이며, 몽골의 러시아 및 동부유럽 원정에 참여했던 수부타이(Subutai) 장군이 우량카이족 출신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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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몽골족들이 우량카이라 낮춰 불렀던 투바족 유목민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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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이후 유목민들을 일컫는 말로 중국에 정착된 이 '우량카이'란 단어는 이후 15세기 명나라와 조선에서도 그대로 쓰였다. 다만 이들의 주적이 몽골족에서 만주의 여진족으로 바뀌면서 우량카이는 여진족을 일컫는 말이 됐다. 이중 명나라와 교역하며 상당수 문명을 받아들인 건주여진족들은 그들보다 문명수준이 떨어졌던 야인여진을 우량카이라 부르기도 했다. 몽골 북부 삼림지대에 살던 수렵종족을 뜻하던 단어가 야만인을 뜻하는 단어로 변한 셈이다. 이때부터 조선에서도 북방 개척과 함께 자주 교전했던 두만강과 남만주 일대 야인여진 부족들을 통칭해 우량카이라 불렀으며, 이 단어가 오늘날 오랑캐의 어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에서 주로 우량카이, 즉 오랑캐라 불렀던 야인여진은 두만강 일대와 남동 만주 일대에 부족단위로 유목생활을 영위하며 조선과는 약탈과 교역을 반복했다. 조선왕조도 여기에 맞춰 교린정책을 펼치며 상황에 따라 공격하기도 하고 유화정책을 펴기도 하며 점차 이들을 북쪽으로 내몰기 시작했다. 세종대왕 이후 조선왕조의 강력한 개척 및 이민정책에 따라 남쪽의 조선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이들과 크고 작은 분쟁이 생겼다. 임진왜란 때는 이 야인여진족과 일본군 2군을 이끌고 함경도로 북상했던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가 교전했으며, 가토군이 참패해 돌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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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에 있는 척화비의 모습. 19세기말 개항기에 이르러 오랑캐란 단어는 양이, 즉 '서양 오랑캐'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사진=위키피디아)


이후 17세기 명나라가 멸망하고 오랑캐라 낮춰 부르던 여진족의 후예인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 청나라의 주인이 되면서 우량카이란 단어는 더욱 다양한 종족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청나라는 1757년, 북몽골 일대를 점령하고 이 지역에 우량카이 팔기군을 설치했으며, 알타이, 탄누, 켐치크, 살차크, 토주, 후브스굴 등 근방에 살던 유목민족들을 통틀어 우량카이로 묶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병자호란 이후부터 대체로 만주족을 오랑캐라 칭하게 됐지만, 19세기말 개항기부터는 서구국가들을 오랑캐라 지칭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뜻이 광범위한 오랑캐에 비해 중국인들을 낮춰 부르는 비속어로 알려진 '되놈'의 경우엔 오랑캐보다 좀더 오래 전에 만들어진 단어로 추정된다. '되'는 중세 한국말에서 주로 북쪽을 가리키는 말로 알려져있으며, 오늘날에도 북풍을 지칭하는 우리말인 '된바람' 등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 말은 11세기 여진족 일파를 일컫던 말인 '도이(刀伊)'란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본의 역사기록에도 도이란 단어가 남아있는데, 1019년 여진족 일파로 추정되는 해적들이 일본의 규슈 지역 일대를 약탈했으며, 이를 일본사에서 '도이의 입구(刀伊の入寇)'라 지칭한다. 어원을 따지자면 현대 중국의 주요 종족인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과 얽힌 단어지만, 오늘날에는 중국인 자체를 의미하는 비속어로 정착하게 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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