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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향우 일본]③ "무서운 국수주의로부터 평화 지켜야"…깨어있는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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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외국인 차별·혐오발언 반대 활동 꾸준

위안부 할머니·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도 활발

(도쿄=연합뉴스) 김정선 특파원 = 일본 사회의 '우향우' 행보가 빨라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우경화를 대표하는 현상인 개헌 추진과 혐한(嫌韓) 발언 등에 맞서는 양심적 시민세력의 목소리도 결코 작아지지 않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7년 5월 '평화 헌법'의 핵심 조항으로 불리는 9조의 1항(전쟁·무력행사 영구 포기)과 2항(전력 보유와 교전권 부인)을 남겨두고, 자위대의 존립 근거를 명확히 하는 내용을 추가하는 것을 먼저 관철하겠다는 단계적 개헌구상을 제시했다. 국민 여론의 무관심, 야당은 물론 집권 여당 내에서도 만만치 않게 터져 나오는 개헌 반대론을 '단계적 개헌론'으로 우회 돌파하겠다는 복안으로 해석되지만, 개헌을 정치적 과업으로 여기는 아베 총리의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지난 10일 아베 총리는 집권당인 자민당 당 대회(전당 대회)에서는 개헌을 '창당 이후의 비원(悲願)'이라고 표현하며 개헌 추진 의사를 재확인했다.

연합뉴스

자민당 전당대회서 연설하는 아베…"개헌, 창당 이후의 비원"
(도쿄 교도/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당대회(전당대회)에서 총재연설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개헌을 '창당 이후의 비원(悲願)'이라고 표현하며 "헌법 개정에 힘쓸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leekm@yna.co.kr



아베 총리는 그간 우익세력을 집결, 개헌을 통해 전쟁 가능한 국가를 만들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를 저지하려는 시민단체들은 개헌 추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있다.

또한,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은 혐한을 비롯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를 용인해선 안 된다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더불어 이들은 징용배상 판결에 반발하는 일본 내 움직임에 맞서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꾸준히 돕고 있다.

◇ "개헌은 안 돼…평화헌법 지켜낼 것"

'전쟁을 시키지 말라·(헌법) 9조를 부수지 말라! 총궐기행동 실행위원회'(이하 실행위) 등은 지난달 28일 국회 앞에서 내각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정기국회 일정이 시작된 날에 맞춰 열린 이날 집회에는 450여명이 참가했다.

실행위는 안보법 논란이 가열되던 2014년 12월 당시 안보법 저지에 뜻을 함께했던 시민단체들로 구성됐다.

연합뉴스

日도쿄서 열린 개헌반대·아베퇴진 촉구 집회
지난해 5월 3일 일본 도쿄(東京) 고토(江東)구에서 열린 개헌반대·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퇴진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플래카드를 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자위대의 임무 확대 내용 등을 담아 군국주의 행보를 가속한다는 비판을 받은 안보법은 2016년 이들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결국 시행됐다.

뜻을 함께하는 시민단체들은 오는 5월 3일 헌법기념일에 도쿄도(東京都) 고토(江東)구의 공원에 모여 '허락하지 말라! 아베 개헌 발의'라는 주제의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지난해 같은 날 열린 반(反)개헌 집회에는 6만명이 모여 평화헌법의 핵심 조항인 헌법 9조를 지키자고 호소했다.

실행위의 다카다 겐(高田健) 공동대표는 2016년 9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국수주의는 매우 무서운 것"이라면서 "일본은 지금 위험하며 평화를 위한 운동은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3년이 지난 시점에도 다카다 공동대표는 "지금도 평화헌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의 서명도 계속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1천350만명의 서명을 받은 상태다.

다카다 공동대표는 "현재까지 시민들과 야당이 결속해 싸운 결과로 아베 총리의 개헌을 저지하고 있다는 것은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민당은 4월 통일지방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개헌을 이슈화하고 싶어 하지만, 개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높지 않은 편이다.

올해 선거 결과와 여론의 향방이 아베 총리의 개헌 시동을 가늠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만큼 개헌반대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들의 결집 또한 빨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 시민들, '헤이트 스피치' 퍼트리는 우익에 맞서다

지난해 12월 9일 우익세력 40여명이 도쿄 도심에서 "일한(日韓) 단교"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혐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외국인도 많이 찾는 도쿄역과 긴자(銀座) 일대를 이동하며 시위를 벌였는데, 현장에선 이에 맞선 맞불 시위도 이어졌다.

맞불 시위자들은 "차별주의자는 부끄러움을 알라", "헤이트 스피치를 용납하지 않겠다" 등이 적힌 종이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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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시위하지 말라"…위안부 다큐 상영장 앞에선 일본시민들
지난해 12월 8일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일어서는 위안부'(이하 '침묵')의 상영회가 열린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웰시티시민플라자 앞에서 일본 시민들이 우익들의 혐한시위를 막기 위해 플래카드를 들고 모여 있다. 플래카드에는 '전쟁 가해를 반복하지마라! 노(NO)! 헤이트스피치!'라고 쓰여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보다 하루 전인 12월 8일에는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한 영화 '침묵-일어서는 위안부'의 상영회가 열린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스카(橫須賀) 시민회관에선 우익의 방해행위를 걱정한 시민 70여명이 몰려와 건물 곳곳을 지켜냈다.

앞서 이 영화의 상영을 앞두고 뜻을 함께하는 변호사 140여명이 대리인으로 나서 상영장 인근의 우익단체 방해행위에 대해 현지 법원으로부터 금지가처분 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 활동하는 간바라 하지메(神原元) 변호사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으로 우익단체의 그러한 행위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좀더 조직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추방하기 위해 일본의 165개 인권 단체들이 모여 만든 인권시민단체도 있다.

'헤이트 스피치를 용서하지 않는 가와사키(川崎) 시민네트워크'는 2016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헤이트 스피치 반대운동과 극우단체 집회를 저지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단체는 지난해 9월 한국의 선플재단 선플운동본부로부터 제1회 '선플 인터넷 평화상' 실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당시 이 단체의 세키타 히로오(關田寬雄·90) 회장은 "지금 일본에서 일어나는 헤이트 스피치는 명백한 인권침해 행위"라며 "우리는 헤이트 스피치에 대항해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 활동가들, 징용피해자들 편에…지식인들 "日 반성을"

일본 우익세력은 지난 연말 혐한 시위에서 징용배상 판결과 관련, "일본 기업을 지키자", "국제적 약속을 무시한 것은 한국"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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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중공업 앞에서 항의하는 일본 시민들
지난 1월 18일 일본의 '나고야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소속 일본인 활동가들이 일본 도쿄(東京) 마루노우치(丸ノ內)에 위치한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본사 앞에서 이 회사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시민단체 활동가인 야노 히데키(矢野秀喜·68) 씨는 강제연행·기업 책임추궁 재판 전국 네트워크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야노 사무국장은 1995년 강제징용 피해자의 일본 법원 제소를 돕는 것을 시작으로 20여년간 일본과 한국의 강제징용 재판에서 원고인 징용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그는 지난해 11월과 12월 한국 변호사들이 대법원의 배상판결 이행을 촉구하고자 도쿄에 있는 신일철주금 본사를 두 차례 방문했을 때도 자리를 함께했다.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등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지난달 18일 도쿄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를 찾아 협의에 응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요청서를 전달했다.

이 모임의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76) 공동대표 등은 2007년 7월부터 미쓰비시의 사죄와 자발적 배상을 촉구하는 '금요행동'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우익세력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만 지난 6일 일본 지식인 226명은 일제의 한국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등은 이 성명에서 "일본과 한국은 이웃 나라로 서로 협력해야만 양국에 사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관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지식인들은 징용배상 문제에 대해선 "전시 노무동원 피해자가 큰 문제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며 위안부 문제와 마찬가지로 한층 더 진지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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