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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억울해서 못살겠다” 여성 프리랜서 작가들 노조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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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웹소설·일러스트 작가들

사상검증·레진코믹스 사태 거치며

노조 필요성 절감…지난해 12월 지회 설립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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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콘지회 #우리도_노조있다

지난 3일, 낯선 해시태그가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인기 주제) 순위에 올랐다. ‘디콘지회’는 지난해 12월12일 출범한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의 약자다. 이날은 디콘지회를 알리는 ‘해시태그 총공’(여러 명이 동시에 같은 해시태그를 붙여 올려 실시간 트렌드 순위에 올리는 행위)이 있는 날이었다. 디콘지회가 출범만으로도 이토록 환영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디콘지회는 게임업계 ‘사상 검증’에 맞서 지난해 결성된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WFIU), 그리고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 갑질과 싸운 ‘레진코믹스 불공정행위 규탄 연대’(레규연)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업계 내 가장 취약한 존재인 여성 프리랜서 웹툰·웹소설·일러스트 작가들이 연대체로 뭉친 것도 이례적이었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다. 출범 당시 20명 수준이던 조합원 수는 12일 현재 120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그동안 프리랜서라는 외피 탓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매절(저작권 양도 계약)로 대표되는 불공정 계약, 부당 해고와 다름없는 일방적인 계약 해지에 무방비로 당해왔다. 게다가 여성 작가라는 점이 이들에게 이중고가 됐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게임업계 ‘사상 검증’이 대표적이다. 당시 여성 작가들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 심지어 미투 운동을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남성 이용자들의 ‘사이버불링’ 피해자가 됐다. 게임 회사는 피해자인 작가들을 보호하기는커녕 하루아침에 이들의 작품을 내리거나 이후 계약을 맺지 않는 식으로 업계에서 배제했다. (▶관련기사: “메갈 잘라라” 한마디에…게임업계 밥줄이 끊어졌다)

전국여성노조 산하에 지회를 설립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김희경(36) 전국여성노조 디콘지회장은 “지금껏 연대하며 노조의 필요성에 공감해온 인원의 절대다수가 여성인 동시에 프리랜서였다”며 “전국여성노조는 방송작가, 골프장 경기보조인(캐디) 등 불안정 노동 영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만큼 디콘지회의 과제와 특수성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연대 활동으로 이뤄낸 성과도 노조 설립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레규연의 경우 레진코믹스 대표로부터 지난해 7월 공식사과와 계약서 개정 등을 이끌어냈다. 불공정 문제 제기 작가를 배제하는 블랙리스트를 운영하고 계약서에도 없는 ‘지각비’를 받아온 점에 대한 후속 조처다. WFIU는 사상 검증 피해 작가들의 사례를 수집해 콘텐츠진흥원과 국가인권위원회에 지난해 10월 말 각각 민원과 진정을 냈고 현재 사실관계 조사가 진행 중이다. 안현정 전국여성노조 사무처장은 “이런 승리의 경험들이 노조 활동의 발판이 될 것”이라며 “노조라는 안전망이 구축되면서 그동안 피해를 입고도 자포자기하던 작가들이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더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콘지회는 “여성 프리랜서 작가들이 결집할 수 있는 구심점으로 거듭나 업계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노조법에 따른 기업과의 교섭 △노무사 상담 등 필요시 법률 지원 △현업 작가들 간의 검증된 정보 공유 △장기적인 프리랜서 노동법 보호 등을 가입 이점으로 꼽았다. 기업 갑질에 대응하기 위해 뭉친 비영리 공익법인 ‘벗’이 디콘지회에 지속적인 법무 상담과 소송 지원 등을 약속했다. 김 지회장은 “무엇보다 프리랜서 노조의 필요성을 알리는 게 선결 과제”라며 “유튜브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홍보활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남은 과제는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인 프리랜서 작가들에게 헌법상 ‘노동 3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단결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인권위는 2017년 정부에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을 위해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거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근로자’에 특수고용 노동자가 포함되도록 관련 조항을 개정하도록 권고했고 정부는 이를 수용했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해 대법원은 골프장 경기보조원에 이어 학습지 교사와 탤런트·성우·코미디언 등 방송 연기자도 노동 3권이 보장되는 노조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은 바 있다. 김 지회장은 “프리랜서 작가들은 6개월 단위 계약을 4~6년간 이어가는 등 사실상 장기 근속하고 업체 프로듀서(PD)를 통해 마감 일정을 관리받는 등 근로관리 감독을 받는다”며 “앞으로 판례를 쌓아가면서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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