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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차이나 인사이트] 미국 편에 설 것이냐 중국 편에 설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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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경쟁의 핵심은 4차산업혁명

기술혁신 주도자가 패권 장악

미·중 ‘디커플링’ 시대로 진입

싸우기보다는 헤어지기 과정

단기 셈법, 양자 택일은 위험

중국과 ‘함께’할 방안 고민 해야

혼돈의 시대다. 미중 무역전쟁은 안보를 둘러싼 전략 경쟁, 글로벌 패권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끼인 주변 중소 국가들은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는 그간 우리가 추진해왔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이나 ‘연미화중(聯美和中·미국과 연합, 중국과 화목)’의 전략이 모두 작동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세계사적 전환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우리는 어떻게 타개해야 할 것인가?

미중 전략 경쟁의 승패는 글로벌 정세를 이끌 리더십, 국제 네트워킹 역량, 기술 혁신 능력 등의 면에서 누가 더 뛰어날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군사력, 경제력, 과학기술력 등의 ‘하드파워’와 문화 역량을 의미하는 ‘소프트 파워’는 여전히 중요하다. 여기에 최근 중국의 행태를 비판하는 개념으로 등장한 ‘샤프(Sharp)파워’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회유와 협박은 물론 교묘한 여론 조작 등을 통해 영향력을 키우는 힘이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객관적 국력 평가는 여전히 미국이 중국보다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왜 이리 심각하게 중국의 부상에 대해 긴장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미중 전략 경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는 역시 기술혁신 전쟁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과거 세계 패권 경쟁의 승패는 시대를 변화시킬 혁신 능력 확보에 달려있었다. 석탄·철의 활용과 총포의 발달, 석유산업의 발전, 핵 시대의 개막, 정보화 시대의 등장 등을 선도한 국가가 패권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술 혁신 패권은 어디에서 나올까? 소위 말하는 제4차산업혁명 분야가 답이다. 이 영역의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안보 역량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에 미래 패권 향방이 달려있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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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4차산업혁명 분야 기술은 ‘승자독식’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데 있다. 선두는 스스로에게 유리한 표준과 규범을 만든다. 후발 주자들이 이를 역전시키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기술 혁신에서 뒤질 때, 기존 패권 국가나 선도 기업도 순식간에 존폐를 위협받을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현재 미중 간에 전개되고 있는 기술혁신 관련 갈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패권 경쟁의 가장 본질적인 영역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국가가 주도한다. 4차산업혁명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중국 제조 2025’와 ‘인터넷 플러스’에 기반을 둔 기술혁신 전략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2035년까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고, 2049년까지 세계 최고의 산업 강국이 된다는 계산이다. 핵심은 빅데이터의 확보와 처리, 그리고 인공지능(AI)이다. 권위주의 체제인 중국은 사생활 보호라는 제약을 받는 서방국가를 넘어 이미 이 분야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기술은 넓어지고, 또 깊어지고 있다. 차세대 정보통신산업(5G), 혁신적인 물류 공급 체계, 독자적인 GPS 체제, 슈퍼컴퓨터, 양자 기술, 초고속 미사일 개발 등의 분야에서 이미 미국과 거의 대응하거나 추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국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미중 간 전략·기술전쟁은 더욱 치열하게, 장기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 영역은 상호 규율과 조절이 어렵기 때문이다. 양국은 각기 자국 우선주의를 보다 분명하게 추진해가고 있다. 시진핑은 ‘중국 특색의 발전 방식’을 강조한다. 이를 기존 정치, 경제, 군사 등에는 물론이고 4차산업혁명 영역에도 적용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또 다른 중국식의 버전이다.

과거 핵전쟁 시기 ‘공포의 균형’ 또는 ‘최소 억제 역량’은 강대국 간 전면전을 불가능하게 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산업혁명 분야 기술 혁신은 이 균형을 위협할 수 있겠지만 당분간 전통적 ‘공포의 균형’은 유지될 수밖에 없다. 특정 기술 혁신은 상대의 옵션을 크게 제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 수단으로서 ‘전쟁’이라는 옵션을 선택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대규모의 전쟁을 택할 수 없는 미중은 이제 싸우기보다는 헤어지기, 디커플링(decoupling)을 시도할 개연성이 크다. 2001년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가입이후 진행된 미중 ‘커플링 시기’에서 이탈하게 되는 셈이다.

미중 무역분쟁은 점차 전략 및 군비경쟁, 이념 전쟁으로까지 격화되고 있다. 인공지능, ICT, 사이버, 우주 등의 영역에서 주도권을 놓고 상호 경쟁해 나갈 것이다. 경쟁의 일상화다. 양국은 경쟁의 프리즘으로 세계를 바라보면서 줄서기를 강요할 것이다. 전략경쟁의 결과로 인한 일방 주도의 ‘팍스아메리카’ 또는 ‘팍스시니카’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미중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한 거대 블록화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미중의 흡인력이 과거 미소 냉전 시기에는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국가들은 당장 미중의 궤도에 올라타기보다는 스스로의 생존 전략을 고심해야 한다. 두 소용돌이가 부딪쳐 쏟아내는 파편과 거대한 폭풍우는 주변 어느 누구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념과 가치에 의한 편향이나, 단기적인 셈법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 무역분쟁에서의 단기적 승패, 전통적 방식의 국력 평가만으로 미중 전략 경쟁의 향방을 예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경제적으로는 ‘위험 분산’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중국의 대안’을 추구하기보다는 ‘중국과 함께’라는 전략 기조는 여전히 유지해야 한다.

중국은 여전히 우리의 경제적 생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 상수로 남을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오히려 변수가 되는 시점에 처해 있다. 미중 전략경쟁을 여러 시점으로 나누어 시기에 걸맞은 리스크 요인의 최소화, 기회 활용의 최대화 정책을 취해야 한다. 당장은 양자택일의 관점을 지양하고, 신중하게 상대방의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 전략적인 집단 지혜의 형성을 통해 내재적 역량(internal balancing)을 키워야 한다. 우리 정부나 정치지도자들은 북핵 문제 너머로 다가오고 있는 국제적 혼돈 상황에 대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그 답을 제시해야 한다.

◆김흥규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시간대 정치학 박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를 거쳐 현재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국방개혁 추진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시진핑 시기 외교안보 패러다임』(공저) 등 10여 권이 넘는 저서가 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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