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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이탄희 판사 “판사 뒷조사는 동료들에 총구 겨누라는 것…사직서 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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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알리고 떠나는 이탄희 판사

경향신문

이탄희 판사는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의 부당한 지시에 항의하고 사직서를 내면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이 세상에 드러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 6일과 7일 이틀간 진행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저는 여기서 쉼표를 찍지만 법원에 남은 분들은 아름다운 도전이라고 생각한 일들을 계속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25일 법복을 벗는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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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탄희 판사(41)와는 총 4번에 걸쳐 만났다. 지난해 6월 서울 여의도에서 처음 만날 때는 부인 오지원 변호사(42·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장)도 함께 자리했다. 당시 이 판사는 매우 지쳐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진상규명이 되면 인터뷰하겠다”고 했다. 지난 1월18일 만남에서는 “예전처럼 재판을 잘할 자신이 없다”며 “계속 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때 이미 그가 사직서를 낸 상태였음은 뒤늦게 알았다.

이틀 밤 새우고 낸 사직서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겸임 발령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 관리와

‘사법 관료화’ 문제점 제기했던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지시받아


이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이 세상에 드러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7년 2월 법원행정처로부터 판사들을 뒷조사한 파일이 있고 이를 관리하는 게 직무라는 말을 듣고 사직서를 낸 게 발단이었다. 그리고 그가 쏘아올린 용기는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관들의 무더기 기소로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재판거래·재판개입·공금유용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지난 6일과 7일 이탄희 판사를 만나고 11일 추가로 전화통화를 했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과 전 대법관들이 재판에 넘겨지는 모습을 보며 어떤 마음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씁쓸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겪어나가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오는 25일 법복을 벗는다.

-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이 전 대법원장의 기소로까지 이어지며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어요. 2017년 2월, 이 판사에게 법원행정처 겸임 발령이 나면서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거죠.

“그에 앞서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소위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 사법관료화의 문제점에 대해 일선 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게 시작이었어요. 저는 이 연구회의 기획총무였는데, 2017년 1월 중순 법원행정처가 이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학술대회를 취소하라고 압박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자 설문결과가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해왔어요. 회유책인지 이규진 위원(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저를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내도록 추천하겠다고도 했고요. 이때 이미 법원이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 설문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길래요.

“응답자의 88%가 사법행정권자와 다른 의견을 내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답했어요.”

- 이규진 전 위원 말대로 이 판사는 2017년 2월20일부로 법원행정처 겸임 발령이 났어요. 그리고 인사차 갔다가 이 전 위원에게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을 관리하게 될 텐데 놀라거나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알아요.

“직전 한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특히 그날은 판사들을 뒷조사한 파일이 관리되고 있고 무엇보다 그 관리업무가 제 직무라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았는데 더 심각했어요.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기로 결정했고 제가 관련된 업무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거예요. 전임자도 힘들어하는 눈치였어요. 게다가 이날 와해조치와 관련해서 일선 판사들을 속이기 위한 허위의 논리들을 기획조정실에서 만들었다면서 그걸 전파하라는 지시도 받았어요.”

- 충격이 컸겠군요.

“이틀간 한숨도 못 잤어요. 배신감과 참담함을 강하게 느꼈죠. 제가 느끼는 이러한 감정들이 공적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 이틀 동안 고민했어요. 결론적으로 판사로서 제가 가진 모든 경험과 지식에 비춰볼 때 법원행정처가 법관사회의 좋은 가치들을 모두 배신했다고 판단했어요. 그러면 배신을 따라가지 말고 제 가치를 지켜야죠. 저는 그것을 명예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순간에 떠오른 문장은 하나였어요. ‘좋은 판사로 남자.’ ”

- 그래서 바로 사직서를 낸 건가요.

“저로서는 사직에 대한 결단을 더 미룰 수가 없었어요.”

-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 자리는 법관 세계에서 단 1%의 엘리트들만 갈 수 있는 출세의 지름길이라던데요. 판사직도 그렇고 그동안 들인 노력이 아깝지 않았나요.

“출세가 싫다는 차원이 아니라 법원행정처의 지시를 수용하는 순간 제가 포기해야 할 게 너무 크게 느껴져서예요. 10년간 쌓아온 판사로서의 평판, 로스쿨 유학시절 전 세계 판사들과 교류하며 바람직한 판사상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반드시 구현하고자 했던 제 의지…. 무엇보다 제가 동료 판사들에게 느꼈던 소속감….”

- 소속감이라뇨.

“저는 어릴 때 자주 길을 잃었어요. 그래서 갖게 된 고립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동네 공터에서 아이들과 공 차고 놀 때부터 타인들과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갖게 되는 소속감이 정말 따뜻하고 좋았어요. 성인이 되어서는 공동의 목표가 공적 이상이었죠. 특히 판사들은 정의로움, 공정함, 독립된 재판, 고독하고 외롭지만 지성인으로서 내리는 양심적인 결단, 그런 것을 공동의 가치로 삼잖아요. 제가 이를 열심히 추구하면 동료들이 응원해주면서 서로 연결된 느낌, 소속감을 느꼈어요.”

이 판사는 “그런 동료들에게 거짓말하고 뒷조사하고 음해하라고 하는 건 나에게 총을 거꾸로 들라는 말이고, 공적인 가치로 봐도 판사는 법정에서 진실을 드러내는 사람인데 진실을 은폐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한 번 물들다가는 내가 망가지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진실 밝히자” 결심하게 된 건…

동료 판사에 거짓말·음해하라니

행정처가 법관 가치 배신해 충격

‘여기 물들면 내가 망가진다’ 생각

함께 진실 규명한 동료들에 빚져


- 사직서를 처음 제출할 당시 법원행정처는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마치 법원행정처는 영원할 것이고 감당하지 못한 개인만 낙오자라는 식으로 저의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계속 은폐만 하려고 했죠. ‘너는 안 시킬 테니 다시 들어와라’ ‘사법정책연구원이나 사법연수원에 가 있으면 6개월 후나 1년 후 다시 법원행정처로 발령내겠다’는 등의 제안을 하며 사직서를 철회하라고 요구했어요. 저는 모두 거절했죠. 그러다 결국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정책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원소속 법원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어요.”

대법원은 2월20일 겸임해제를 해 이 판사를 원소속인 수원지법 안양지원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3월6일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를 견제하고, 이에 항의한 이 판사의 행정처 발령이 번복됐다는 의혹이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 안양지원으로 돌아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 같아요.

“언젠가 이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만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그런데 얼마 후 언론 보도가 나왔고, 이후 상황이 급변했어요.”

경향신문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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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보도 이틀째인 3월7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은 이 판사에 대한 겸임 해제 사유가 개인사정이므로 일선 판사들은 언론 보도에 동요하지 말라는 공지사항을 법원 내부망에 올렸다. 그러자 다음날 이 판사는 “그 공지사항이 사실과 다르며 더 이상 침묵만 하지 않겠다”는 반박글을 게시했다. 이 글에는 이례적으로 판사 240여명이 실명으로 지지댓글을 달았다. 이어 국제인권법연구회, 법원공무원노조, 대학법학교수회가 들고 일어났고, 법원장 회의에서도 진상조사 요구 발언이 나왔다. 3월1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1차 진상조사를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뒷조사 파일은 없다’며 덮으려 했다.

- 2017년 4월18일 ‘뒷조사 파일이 없다’는 1차 조사 결과를 접하고 어떤 심경이었나요.

“조사위에서 증언도 했는데, 결과를 보고 실망했어요. 사직서를 내야 하나 다시 고민했죠. 그때 주변 판사들이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같이 만들자고 했어요. 이를 통해 진상규명을 계속 요구할 거라면서 같이 버티자고 했어요. 다시 힘을 냈죠.”

이 판사는 자신이 “동료 판사들에게 빚을 많이 졌다”고 말했다. 판사들이 진상규명을 끈질기게 요구했기 때문에 자신의 말이 진실임이 밝혀졌고, 그가 느꼈던 분노가 공적으로 정당한 분노였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판사들과의 연대를 통해 느껴왔던 소속감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임이 증명됐고, 그 자체로 큰 것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추가 조사를 요구해 김명수 대법원장으로 바뀐 후 2차, 3차 진상조사가 이뤄졌어요. 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도 다 읽어봤습니까.

“보고 상처가 컸어요.”

- 왜요.

“진상조사보고서에 법원행정처 기조실 판사들의 진술 내용이 나오는데, 진상위에서 거짓 증언한 것을 봤으니까요. 그중에는 ‘너를 다치지 않게 지켜주겠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마저도 많이 숨긴 것 같더라고요. 실망했죠. 저는 항상 개인에 대한 감정을 갖지 않고 공적인 태도로 접근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이 사안에 대해서도 개인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상황 자체에 대한 실망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보니 감정을 억누르면서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한 것 같아요(웃음).”

- 사법농단 사태 2년간 오면서 고위 법관들의 주장을 근거로 법원 내 갈등이 심화된다는 언론 보도도 많았어요..

“진상 규명에 소극적이던 고위 법관들이 저는 다수가 아닌 소수라고 확신해요. 근거로는 2017년 2월부터 2년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내용의 판사회의 결의를 한 법원이 다수였어요. 문제는 법원을 위계조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고위층에 있는 판사들이 과다 대표된다는 점이에요. 법원은 피라미드 조직이 아니고 3000개의 사법부가 연합된 형태로 모여 있는 거예요. 법관 한 명, 한 명이 독립된 기관이죠. 그런 차원에서 보면 고위직에 있는 사람 중 일부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해요.”

- 진상조사 과정에서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와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재판거래를 한 문건들이 쏟아져 나왔잖아요. 여기까지 예상했나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어요. 이래서 그렇게 조사를 못하게 막았구나 싶었어요. 사실 이해가 안됐거든요. 컴퓨터에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고 하면 열어서 확인만 하면 될 텐데, 사생활 보호, 강제개봉 같은 단어까지 쓰며 못 열게 했으니까요. 또 양승태 대법원장도 조사위 출석 요구를 거부하고 ‘재판은 신성하다’는 말만 반복했고요. 동시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판사들은 어떤 성향이 있다는 식의 음해가 있었잖아요.”

- 상고법원이 뭐길래, 양 전 대법원장은 청와대와 재판거래까지 하며 무리수를 뒀을까요.

“단순히 상고법원 제도 도입 때문이 아니라 결국 상고법원 인사권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해요. 행정처 문건에도 상고법원 인사권을 두고 당시 청와대와 줄다리기하는 것이 나오니까요.”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는 47개의 ‘사법농단’ 혐의가 기재돼 있다. 특히 검찰이 공소장에 적은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 간 협력 사례는 일제 강제징용·키코·KTX 승무원·콜텍 및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다. 이 판사는 “저를 포함한 젊은 법관들과 국민들은 양 대법원장의 위선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임기 내내 일선 판사들에게는 염결성을 강조하면서 오해를 살 행동조차 하지 말고 그럴 의지가 없으면 그냥 옷 벗고 나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자신은 대법원장 집무실에서 사건의 한쪽 대리인을 몰래 만났어요. 정치세력이 사법부에 침투하면 안된다고 말해놓고 정작 대법관은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에 가서 사건을 논의했고요. 양 대법원장은 평소 자신의 소신이 소외된 약자 보호라고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밝혔어요. 그러나 강제징용·KTX 승무원·쌍용차 해고자 사건 등의 문건을 보면 정반대로 행동한 것으로 보여요. 게다가 검찰 소환에 응할 때는 대법원을 배경 삼아서 조직을 끌고 들어가려 했고요.”

- 이 판사가 생각하는 법원행정처의 미래 모습은 어떤 건가요.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는 거죠. 예고된 대로 법원사무처로 이름만 바뀌는 것은 포장지만 바뀌는 것이지 내용이 바뀌는 게 아니에요. 판사들은 더이상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지 않도록 해야 해요.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기내에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지만 이번에 대법원에서 국회사법개혁특위에 제출한 법원조직법안에 대한 의견에서는 탈판사화 조항이 빠져 있어요. 이 부분이 심히 우려돼요.”

- 사법농단 형사처벌도 중요하지만 법원 내부 징계와 탄핵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재판 독립을 침해한 것으로 드러난 판사들이 재판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재판받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외부에서 어떤 압력이 들어와도, 인사권자가 어떤 요구를 해도 단호히 거부하고 공개된 법정에서 적법하게 제출된 자료만 갖고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해줄 거라 과연 믿을 수 있을까요?”

사법부 신뢰 회복이 급선무

염결성 외치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한쪽에선 청와대와 재판 거래…

국민들 이런 법원 믿을 수 있을까

비판 두려워도 ‘투명한 법원’ 돼야


-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이 급선무라고 봅니까.

“우선은 투명성이죠. 사법농단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최소한 2012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동안 행정처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국민 누구도 몰랐잖아요. 판사들을 위해서도 투명성이 필요해요. 이상을 품은 좋은 판사가 많지만 재판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실제로 재판받는 국민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생생히 알지 못해요. 국민들이 법원에 바라는 게 뭔지 정확히 알기 어렵기도 하고요. 비판이 두렵더라도 감추지 말고 국민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법원 내에서도 사법 신뢰가 강요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 사법 신뢰가 강요된다고요.

“예를 들어 사법부가 재판거래는 없었다고 선언하면 국민들이 그 선언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방식으로 사법 신뢰가 해결될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돼요. 이미 그러한 시대는 끝났어요. 이제 국민들은 스스로 보고 스스로 판단하기를 원하니까요.”

- 이 사건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얻은 것은, 우선 제가 꿈꿨던 공직사회를 많은 사람들도 꿈꿨다는 것과 옳은 일을 하면 반드시 사람들이 지켜준다는 것을 배운 거예요. 그리고 잃은 것은… 판사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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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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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개인사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서울대 법대 97학번이다. 대학 재학 중인 2002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8년 판사로 임관했다. 법무관 복무는 특전사에서 했다. 부인 오지원 변호사와는 사법연수원 동기다.

- 왜 판사가 됐나요.

“사법연수원 1년차일 때 이라크 파병에 위헌성이 있다고 지적하는 의견서를 사법연수생들이 작성해서 발표한 적이 있어요. 그때 그 의견서 초안을 제가 썼는데 그 일로 저를 비롯한 여러 연수생들이 서면경고를 받았어요. 그때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필두로 우리 사회에 헌법에 입각한 법치주의 논의가 움틀 때였기에 저는 시대를 앞서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경고를 받으니 저에 대해 부당한 평가가 내려졌다고 생각했고 그 부당한 평가에 대해 지기 싫었어요. 판사가 되면 마치 저에 대한 부당한 평가가 바로잡힐 거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 판사 일이 잘 맞았습니까.

“재미있었어요. 최선을 다했고요. 단독판사 할 때 공판중심주의라고 하는 재판원칙에 빠져 있었어요. 공판중심주의 재판의 핵심은 사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해서 결론을 당사자에게 통보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공개된 법정에서 많은 이들의 참여 속에 투명하게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에도 중점을 두는 거예요. 한 건 한 건 집중해야 하는 방식이라 업무량이 더 많아지니 직원들은 힘들어했죠. 그래도 재판 당사자들의 승복 비율이 높아지는 게 확연히 보여 보람을 느꼈어요.”

그는 지방변호사협회에 의해 2012년, 2013년, 2015년 우수법관으로 선정됐다. 당시만 해도 단독판사가 3회 선정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 매년 대법원이 선발하는 해외 연수 법관에 뽑혀 2014년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1년간 연수를 했는데, 도움이 많이 됐나요.

“학생들 중에는 각국에서 온 법조인들이 많았고, 그들과 교류하며 많이 배웠어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국 판사 한 분이 법관은 한 명 한 명이 독립된 기관이라고 강조하는 모습이었어요. 또 하버드대 로스쿨 석지영 교수의 말씀도 기억나요. 하버드에서는 한국 판사들 중 로스쿨 유학생을 판결·연구내용 등을 보고 직접 선발하고 싶어 하는데, 한국 대법원에서는 자기들이 선발한 판사를 그대로 뽑아주기를 원하는 것 같아 이상했다는 거예요. 판사는 관료가 아닌데, 한국 법원은 판사를 회사원이나 관료처럼 평가하는 것 같다고 우려하셨어요.”

“법관 한 명 한 명이 독립기관”

양승태 구속, 미래 위해 겪을 과정

양심에 비춰 판단해야 하는 판사일

나는 잠시 쉼표 찍지만…

후배들은 공적인 가치 지켜나가길


-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생각인가요.

“당분간은 그냥 쉬고 싶어요. 그런 다음 제게 어울리는 일을 찾아봐야겠죠.”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당부의 말이 있습니까.

“저한테도 항상 과제였는데, 독립기관으로서의 실질을 갖추면 좋겠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판사의 일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아무리 외롭고 고독해도 판사가 양심에 비춰 혼자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여기서 일단 쉼표를 찍지만 남은 분들은 아름다운 도전이라고 생각한 일들을 계속하면 좋겠어요. 또 공적인 가치를 꼭 지키려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박주연 오피니언팀장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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