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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밭 이랑 선과 빛으로 만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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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춘모 전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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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쑈 아트썰-17] 남춘모(58) 작품의 선(線)과 빛깔은 경북 영양군 두메산골에서 나왔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향 밭이랑을 덮은 검정 비닐이 햇빛에 반짝거리고 바람에 펄렁이던 잔상이 강렬했다.

독일 쾰른시와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을 오가며 작업하는 작가는 "검은 비닐의 반짝임에서 빛을 얻고, 높고 낮은 이랑에서 선을 얻었다. 인간의 삶이 담긴 빛과 선이다. 대구 중학교로 진학한 후 도시에서 살았지만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은 고향 풍경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향마을 산비탈과 이랑 선과 빛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서울 리안갤러리 개인전에서 선보인다. 대표작인 격자 골조 '빔(Beam)' 시리즈, 곡선을 적용한 신작 '스프링(Spring)', 1990년대 후반 초기작을 재해석해 발전시키기 시작한 '스트로크스(Strokes)' 연작 등 부조회화와 드로잉, 설치 작품을 펼쳤다. 선이 공간을 만들고 빛이 들어오면서 고즈넉한 풍경이 된다. 한 화면에서 빛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 신비롭다. 선 하나하나에 작가의 응축된 에너지가 들어 있다.

그는 "선을 입체로 만드는 데 20여 년 걸렸다. 서양화는 물감을 화면 전체에 덮는 반면에 우리 조상들은 몇 개의 선만으로 여백의 공간감을 표현하는 게 흥미로웠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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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춘모 전시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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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공간에 구현해 낼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평면 회화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인 'ㄷ'형을 고안했다. 광목천을 나무틀에 고정시키고 합성수지를 발라 건조한 후 일정 크기로 자른 'ㄷ'형을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붙여 패턴화된 공간을 만든다. 이후 검정과 하양, 빨강과 파랑 등 단색 아크릴 물감을 칠해 작품을 완성한다. 대략 한 달 정도 걸리는 길고도 지난한 작업이다.

하지만 작가는 의도적으로 'ㄷ'형을 정확한 규격으로 찍어내지 않는다. 자연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작업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원이나 돌담은 규칙을 갖고 있지만 자연스럽다. 그의 작품에 생동감과 역동성이 넘치고 서구 회화랑 차별화된 지점이다. 서양의 일정하고 획일화된 벽돌과 달리 돌 하나하나가 가진 본연의 형태를 그대로 살렸다.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Neo-plasticism)와 같은 서구의 기하학적 추상은 이성적이고 수학적인 접근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프랭크 스텔라 등 미니멀 회화 작가들은 틀에 박힌 사각형 캔버스 형태를 역동적인 다각형으로 변모시켜 회화 공간 너머로 확장성을 추구했지만 여전히 2차원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남춘모의 부조회화는 오히려 반대로 현실 공간 요소들이 회화 안으로 끊임없이 축적되고 결집되는 것처럼 보인다. 빛과 그림자는 선과 면의 입체적 3차원성을 강화시켜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며 생동감을 극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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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춘모 개인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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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오는 6월 독일 코블렌츠 루드비히미술관 개인전을 위한 전초전이기도 하다. 앤디 워홀 등 팝아트 거장들의 작품과 피카소 작품을 다량 소장하고 있는 독일 대표 미술관 중 하나로 쾰른과 코블렌츠 등에 있다. 베아테 라이펜샤이드 루드비히미술관장은 남춘모 작품에 대해 "서양화를 전공해 색채는 서구적인데 재료와 선, 흑백 대비는 동양적이어서 매료됐다"고 호평했다.

단색 부조회화로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는 "황무지를 개간하는 심정으로 앞으로도 계속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시는 3월 30일까지. (02)730-2243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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