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은둔형외톨이 한국 가라”…경쟁에 지친 韓·日 청년들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일본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이하 외톨이)’들이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고국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았던 삶을 벗어나 낯선 사람들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한국에서는) 지금껏 해본 적 없는 일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약 108만 2000명의 외톨이가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사진=NHK 캡처


◆삶의 괴로움 한·일 청년들

일본에서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사회와 담쌓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1970년대 처음 알려진 뒤 버블경제 붕괴를 기점으로 그 수가 크게 증가해 지금껏 해결하지 못한 사회 문제로 남았다.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일본에는 약 108만 2000명의 외톨이가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은 1990년대쯤 ‘방콕족(방안에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이란 말로 사회에 알려졌는데, 국가 차원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통계 자료가 없다. 2005년 한 민간단체에서 약 30만~50만명 정도로 추산한 바 있을 뿐이다.

◆2015년부터 한·일 청년 지원

한국에서 한·일 외톨이를 지원하는 곳은 일본 단체다. 2012년부터 활동한 이 단체는 현재 서울 성북구에서 일본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8일 찾아간 음식점에는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한국과 일본 외톨이 10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이들은 인근 주택을 빌려 함께 거주하며 교대로 나와 일한다.

이곳은 일본 외톨이 지원 단체 ‘K2’의 코보리 모토무 한국 대표가 2009년 열린 교류 사업에 참여한 게 인연이 됐다. 한국 비영리 복지단체와 교류로 문을 연 이 단체는 처음 새로운 삶을 찾아 한국에 온 일본인을 대상으로 했지만 ‘한국에 10만명 넘는 외톨이가 있다’는 한 추정치를 접한 후 2015년부터 한국 외톨이들의 지원을 시작했다.

세계일보

단체를 이끄는 코모리 씨도 과거 비슷한 고민과 아픔을 지닌 적 있다. 사진= 마이니치신문 캡처


◆대표도 과거 외톨이…“인생을 리셋하다”

이 단체를 이끄는 코모리 대표도 과거 비슷한 고민과 아픔을 지닌 적 있다. 그는 중학교 2학년쯤부터 등교를 거부하며 외톨이가 됐다. 그는 일본 외톨이 지원 단체와 부모 도움으로 뉴질랜드를 여행하며 거기서 “비슷한 또래와 만나 처음 친구를 사귀는 등 즐거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경험은 한국에서 외톨이를 지원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일본에서 같은 활동을 할 수 있지만 국내(일본)에서는 쉽게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해외에서는 이들의 과거를 모를 뿐더러 쉽게 포기하고 돌아가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외톨이들은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들”이라며 “주변에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미움받는 걸 무서워한다. 그래서 가족과 자신뿐이라는 작은 세계에 갇혀 버린다. 그러나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디면 지금껏 느낀 속박에서 해방된다. 고민할 필요가 없이 인생을 재설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신을 들었다. 학교를 중퇴하고 뉴질랜드로 간 그는 현지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호주로 갔다. 그는 호주 외톨이 지원 단체에서 일하며 대학을 졸업. 일본 요코하마 지원 단체를 거쳐 2013년 한국 내 책임자가 됐다.

◆“은둔형외톨이 한국 가라”

지난해 2월 한국에 온 일본인 A(25)씨는 음식점에서 재고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A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2년간 집에만 틀어박혀 외톨이 생활을 했다. 그는 지금 가게일 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의 건강 등 안부를 확인하는 작업을 맡고 있다.

A씨는 “일본에선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며 “한국에 와서 지금껏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을 맡아 기쁘다”고 했다.

그는 언어 문제로 의사소통에 다소 불편함을 느끼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A씨는 “한국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 놀랐다”며 “일본 사회와 일본인에게서 느낄 수 없는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외톨이들은 또래와 자신을 끝없이 비교하며 여기서 콤플렉스를 느껴 자신을 고립시킨다고 전해진다. 사진은 은둔형외톨이가 사는 방 모습. 사진=카라피아 캡처


◆은둔형외톨이…“방치하면 더 큰 문제”

일본 사회에서 외톨이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난 초창기에는 이들 스스로 사회에 복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창 활동할 ‘젊은층이 집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쓰나미 같은 경제 위기가 일본을 휩쓴 후 세상과 등을 돌리기 시작한 이들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증가했고, 지금은 이들이 나이 들어 중년 그리고 노인이 돼 가족과 사회에게 짐이 되고 있다.

코보리 대표는 “20년~30년 전부터 외톨이들이 ‘스스로 사회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자’, ‘차분히 지켜보자’는 생각이 주를 이룬 결과 중년이 되어서도 외톨이 상태로 남은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가지도록 등을 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외톨이들의 문제는 ‘또래 콤플렉스(Peer complex)’를 겪으면서 ‘자신을 고립시킨다’는 점이다. 일본의 한 학자는 “치열해진 경쟁 사회에서 주변이 친구가 아닌 경쟁자가 됐고, 여기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이러한 현상(외톨이가 증가)’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핵가족화로 인한 이웃·친척들과의 단절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급속한 사회변화 △학력 지상주의에 따른 압박감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취업하지 못하는 데에 따른 심리적 부담감 △갑작스러운 실직 △사교성 없는 내성적인 성격 등 여러 요인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래를 이끌어 나갈 청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 큰 좌절을 겪고 사회 그리고 세상과 담을 쌓는 현상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6개월 이상 △타인과 대화 거부 △낮에 취침, 밤에 TV시청이나 인터넷·게임 몰두△자기혐오나 상실감, 우울증 △부모에게 응석, 폭언이나 폭력 행사 등의 행동을 보이면 은둔형 외톨이로 분류하고 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