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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성소수자들 화려한 ‘볼’ 문화 이면의 사랑과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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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포즈>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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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미국 뉴욕, 독특한 퀴어 문화인 ‘볼’은 밤마다 수많은 성소수자에게 문을 활짝 연다. 성소수자들은 ‘볼’에서 특정 주제별 코스튬 쇼, 춤, 개인기 등 여러 종목을 놓고 경연하면서, 밖에서 표출하지 못한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그곳을 평정한 최고의 그룹 ‘어번던스 하우스’의 2인자 블랭카(엠제이 로드리게스)는 자신만의 새로운 하우스를 꿈꾼다. 어느 날 에이치아이브이(HIV) 보균자 판정을 받은 그녀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온다. 게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춤을 추던 흑인 소년 데이먼(라이언 자말 스웨인), 블랭카와 같은 트랜스여성 에인절(인디아 무어)이 새 가족으로 합류한다. 그들이 이끄는 이밴절리스타 하우스는 곧 어번던스 하우스에 도전하는 신흥 하우스로 급부상하게 된다.

지난해 미국 <에프엑스> 채널에서 방영한 <포즈>(Pose)는 성소수자들의 화려한 ‘볼’ 문화와 에이즈의 공포가 공존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다. <글리>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등을 만든 미국 최고 제작자 라이언 머피의 신작으로, 머피 특유의 독창적인 콘셉트와 감각적인 스타일이 여지없이 발휘돼 공개와 동시에 평단을 사로잡았다. 라이언 머피는 여성과 소수자들 기용에 힘쓰는 제작자로도 잘 알려졌는데, 특히 이 작품은 역대 티브이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많은 트랜스젠더 배우가 출연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세웠다.

최다 출연진이라는 사실도 의미가 크지만, 실제 극중에서도 트랜스여성 캐릭터들의 다채로운 묘사가 돋보인다. 기본적으로는 “여자, 흑인, 라틴계, 게이, 그다음이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고 한탄할 만큼 ‘모든 소수자 그룹 중에서도 바닥’에 있는 존재들의 아픔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이러한 차별과 대면하는 양상이 꽤 다양하다. 자신을 쫓아낸 게이 바에서 시위를 벌일 정도로 차별과 용감하게 싸우는 블랭카, ‘평범한’ 여성들처럼 ‘정상 가족’을 꿈꾸는 에인절, ‘백인 여성들과 다를 바 없는 대접’을 받는다는 점을 자랑하면서 동시에 자기혐오를 숨기고 살아가는 일렉트라(도미니크 잭슨) 등 하나같이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실 <포즈>의 표면적인 이야기는 매우 대중적인 서사 공식을 따라간다. 이것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소수자들이 혈연을 초월한 대안 가족을 형성해 사랑과 위로를 나누는 가족극이자, 낮은 자존감을 극복하고 꿈을 찾아가는 성장 드라마이자,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죽어가는 연인들의 강렬한 멜로드라마다. 이 모든 익숙한 이야기가, 주인공들이 성소수자라는 사실 때문에 그 자체로 사회적 편견과 맞서는 저항의 드라마가 된다는 점이 <포즈>의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한 지점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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