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도 군 전력 증강 계속 / 조기경보통제기 추가 도입 사업, 시작도 전에 보잉 E-737 도입 기정사실화 / '추가도입' F-35A부터 F-15K까지 한국군 군용기 대부분 미국제 / "전략무기 구매, 생산국가와 전략적 유대 의미" / 10년간 7조원어치 구매에도 전략적 고민 無
미 해군 MH-60R 해상작전헬기 편대가 훈련을 위해 해상을 비행하고 있다. 록히드마틴 제공 |
◆한반도 하늘, 美 방산업체 장악
대표적인 사례가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이다. 방위사업청은 약 1조원을 투입해 12대의 해상작전헬기를 도입하는 사업을 지난해 6월 입찰공고했으나 AW-159 헬기 제작사인 유럽 레오나르도만 응찰해 유찰됐다. 같은해 10월 2차 공고도 레오나르도만 응해 11월 14일 유찰됐다. 하지만 이날 미국 정부는 록히드마틴의 MH-60R을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방사청은 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으나 MH-60R 도입비용이 과도한 것으로 알려졌던 상황에서 미국측이 가격을 얼마나 낮췄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이미 국내에 후속군수지원체계를 구축해 관련 비용 소요가 크지 않은 AW-159와 달리 MH-60R은 군수지원체계 구축비용을 추가해야 한다. MH-60R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주요 장비를 뺀 껍데기를 들여오고, 세간의 관심이 잦아들 때 별도 사업을 추진해 장비를 장착하는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국 해군 AW-159 해상작전헬기가 잠수함 탐지 훈련을 위해 음파탐지기를 바다로 내리고 있다. 해군 제공 |
1조원짜리 사업을 쉽게 수주할 것으로 예상했던 레오나르도는 비상이 걸렸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레오나르도가) 제대로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 당한 격”이라고 평가했다. 레오나르도는 뒤늦게 에이전트를 수소문하는 등 분주히 움직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별 성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경보통제기 2대를 추가 도입하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은 관련 절차가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보잉 E-737 도입이 기정사실화되는 모양새다. 다만 공군이 기존에 운용중인 E-737 4대의 성능개량과 2차 사업을 별도로 추진키로 한 것이 변수라는 지적이다.
올해 안에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인 E-737 성능개량은 제작사인 보잉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2020년대 중반까지 진행될 E-737 성능개량사업은 피아식별장치와 데이터링크(Link-16), 레이더, 통신시스템 등의 성능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문제는 추가 도입이다. 군 안팎에서는 E-737을 처음 도입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발전이 빨라진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공군 E-737 조기경보기가 비행하고 있다. 공군 제공 |
관료적으로 E-737 추가도입을 결정하는 대신 군요구성능(ROC)을 수정, 하늘을 감시하는 조기경보통제기와 지상정찰시스템인 조인트 스타즈를 결합한 차세대 조기경보통제기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 추진 여부조차 불투명한 조인트 스타즈 도입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스웨덴 사브의 글로벌아이 조기경보통제기는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탑재, 하늘과 바다는 물론 지상에서도 2000개의 표적을 탐지할 수 있어 육해공군을 동시에 지원해야 하는 우리 군에 적합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군 당국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이외에도 록히드마틴 F-35A 스텔스 전투기 20대 추가 도입 결정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미 도입이 결정된 보잉의 P-8A 해상초계기와 노스롭 그루먼의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공군이 운영중인 F-15K(보잉), KF-16(록히드마틴)까지 합치면 한반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군용기는 대부분 미국제인 셈이다.
미국은 이같은 해외 무기도입 구도를 예전부터 그려놓은 상태다. 주한미군은 지난해 초 발간한 ‘2018 전략 다이제스트’에서 “2018년~2020년 P-8A 해상초계기와 SM-3·SM-6 함정 탑재 요격미사일, 해상작전헬기가 한국군에 도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미국제 무기 구매가 이뤄질 것처럼 명시한 것이다. 한국군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밑그림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0년간 7조원어치 구매…전략적 고민 ‘無’
한국은 지난 10년간 미국 방산업계의 ‘큰손’ 역할을 해왔다. 국방기술품질원이 지난달 발간한 ‘세계 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2008~2017년 한국은 67억3100만 달러(7조6000억원)의 미국제 무기를 구매, 미국제 무기수입국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규모를 기록했다.
한국 시장이 미국 방산업계의 독무대처럼 변한 것은 상호운용성(서로 다른 기종이나 시스템 간의 서비스 공유나 정보교환이 가능한 것)에 기인한 바 크다. 한미 연합작전을 위해서는 정보공유 및 군수품 교환이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 이같은 문제를 한국군은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미국제 무기를 도입, 운용하는 것이다. 공군의 핵심 장비들이 미국제 일색인 이유다.
한국 공군 F-35A 전투기 1호기가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
문제는 상호운용성의 범위를 ‘미국제 무기’로 한정하면서 전략적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동일한 규격을 사용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유럽 회원국에서 생산하는 무기도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국제 무기를 도입해야 상호운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NATO 회원국들은 미국제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 하지만 NATO 회원국들은 F-35A 같은 미국제 무기와 함께 유럽국가들이 개발한 무기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할 유럽국가들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에 대해 무기도입사업에 관여하는 당국자들은 “미국 무기를 많이 사주고 반대급부를 받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F-15K 도입 이후 보잉의 기술이전 이행을 놓고 국회에서 수차례 문제제기가 있었고, F-35A 도입과정에서도 반대급부로 받기로 한 한국형전투기(KF-X) 핵심기술과 군사통신위성 제공 문제로 홍역을 치른 것을 감안하면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국 공군 F-15K 전투기가 훈련비행을 위해 활주로를 이동하고 있다. 공군 제공 |
방사청은 2017년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무기를 도입할 경우 절충교역을 배제할 수 있도록 내부 규정을 개정했다. 유럽 업체들은 미국 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기술이전과 산업협력 분야에서 후한 조건을 제시해왔는데, 유럽과 미국업체가 함께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가격과 성능 외에 고려할 부분이 많지 않다.
싼값에 소요군이 쓸 무기를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기 도입과정에서 방위산업 진흥 기능을 겸하는 방사청이 국내 방위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방사청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는 외국 무기 구매 시 부품 중 일부를 국내 중소기업에서 조달토록 하는 산업협력 쿼터제 등의 실효성을 스스로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군 소식통은 “전략무기를 구매한다는 것은 생산국가와 높은 수준의 전략적 유대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라며 “산업협력조차 쉽지 않은 미국에만 의존하는 대신 군의 요구만 충족한다면 유럽이나 이스라엘 등 제3국의 무기도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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