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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美 방산업체 ‘독무대’ 된 한국 무기도입 사업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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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도 군 전력 증강 계속 / 조기경보통제기 추가 도입 사업, 시작도 전에 보잉 E-737 도입 기정사실화 / '추가도입' F-35A부터 F-15K까지 한국군 군용기 대부분 미국제 / "전략무기 구매, 생산국가와 전략적 유대 의미" / 10년간 7조원어치 구매에도 전략적 고민 無

한때 주춤했던 미국 방산업계의 한국 시장 공략이 다시 본격화되고 있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북한 도발 대응’이라는 군 전력 증강의 당위성이 낮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국방개혁 2.0에 따른 군 구조 개편 등에 필요한 무기도입 소요는 끊이지 않는다. 미국 방산업계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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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MH-60R 해상작전헬기 편대가 훈련을 위해 해상을 비행하고 있다. 록히드마틴 제공


◆한반도 하늘, 美 방산업체 장악

대표적인 사례가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이다. 방위사업청은 약 1조원을 투입해 12대의 해상작전헬기를 도입하는 사업을 지난해 6월 입찰공고했으나 AW-159 헬기 제작사인 유럽 레오나르도만 응찰해 유찰됐다. 같은해 10월 2차 공고도 레오나르도만 응해 11월 14일 유찰됐다. 하지만 이날 미국 정부는 록히드마틴의 MH-60R을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방사청은 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으나 MH-60R 도입비용이 과도한 것으로 알려졌던 상황에서 미국측이 가격을 얼마나 낮췄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이미 국내에 후속군수지원체계를 구축해 관련 비용 소요가 크지 않은 AW-159와 달리 MH-60R은 군수지원체계 구축비용을 추가해야 한다. MH-60R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주요 장비를 뺀 껍데기를 들여오고, 세간의 관심이 잦아들 때 별도 사업을 추진해 장비를 장착하는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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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군 AW-159 해상작전헬기가 잠수함 탐지 훈련을 위해 음파탐지기를 바다로 내리고 있다. 해군 제공


1조원짜리 사업을 쉽게 수주할 것으로 예상했던 레오나르도는 비상이 걸렸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레오나르도가) 제대로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 당한 격”이라고 평가했다. 레오나르도는 뒤늦게 에이전트를 수소문하는 등 분주히 움직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별 성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경보통제기 2대를 추가 도입하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은 관련 절차가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보잉 E-737 도입이 기정사실화되는 모양새다. 다만 공군이 기존에 운용중인 E-737 4대의 성능개량과 2차 사업을 별도로 추진키로 한 것이 변수라는 지적이다.

올해 안에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인 E-737 성능개량은 제작사인 보잉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2020년대 중반까지 진행될 E-737 성능개량사업은 피아식별장치와 데이터링크(Link-16), 레이더, 통신시스템 등의 성능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문제는 추가 도입이다. 군 안팎에서는 E-737을 처음 도입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발전이 빨라진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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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E-737 조기경보기가 비행하고 있다. 공군 제공


관료적으로 E-737 추가도입을 결정하는 대신 군요구성능(ROC)을 수정, 하늘을 감시하는 조기경보통제기와 지상정찰시스템인 조인트 스타즈를 결합한 차세대 조기경보통제기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 추진 여부조차 불투명한 조인트 스타즈 도입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스웨덴 사브의 글로벌아이 조기경보통제기는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탑재, 하늘과 바다는 물론 지상에서도 2000개의 표적을 탐지할 수 있어 육해공군을 동시에 지원해야 하는 우리 군에 적합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군 당국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이외에도 록히드마틴 F-35A 스텔스 전투기 20대 추가 도입 결정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미 도입이 결정된 보잉의 P-8A 해상초계기와 노스롭 그루먼의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공군이 운영중인 F-15K(보잉), KF-16(록히드마틴)까지 합치면 한반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군용기는 대부분 미국제인 셈이다.

미국은 이같은 해외 무기도입 구도를 예전부터 그려놓은 상태다. 주한미군은 지난해 초 발간한 ‘2018 전략 다이제스트’에서 “2018년~2020년 P-8A 해상초계기와 SM-3·SM-6 함정 탑재 요격미사일, 해상작전헬기가 한국군에 도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미국제 무기 구매가 이뤄질 것처럼 명시한 것이다. 한국군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밑그림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0년간 7조원어치 구매…전략적 고민 ‘無’

한국은 지난 10년간 미국 방산업계의 ‘큰손’ 역할을 해왔다. 국방기술품질원이 지난달 발간한 ‘세계 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2008~2017년 한국은 67억3100만 달러(7조6000억원)의 미국제 무기를 구매, 미국제 무기수입국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규모를 기록했다.

한국 시장이 미국 방산업계의 독무대처럼 변한 것은 상호운용성(서로 다른 기종이나 시스템 간의 서비스 공유나 정보교환이 가능한 것)에 기인한 바 크다. 한미 연합작전을 위해서는 정보공유 및 군수품 교환이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 이같은 문제를 한국군은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미국제 무기를 도입, 운용하는 것이다. 공군의 핵심 장비들이 미국제 일색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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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F-35A 전투기 1호기가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문제는 상호운용성의 범위를 ‘미국제 무기’로 한정하면서 전략적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동일한 규격을 사용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유럽 회원국에서 생산하는 무기도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국제 무기를 도입해야 상호운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NATO 회원국들은 미국제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 하지만 NATO 회원국들은 F-35A 같은 미국제 무기와 함께 유럽국가들이 개발한 무기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할 유럽국가들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에 대해 무기도입사업에 관여하는 당국자들은 “미국 무기를 많이 사주고 반대급부를 받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F-15K 도입 이후 보잉의 기술이전 이행을 놓고 국회에서 수차례 문제제기가 있었고, F-35A 도입과정에서도 반대급부로 받기로 한 한국형전투기(KF-X) 핵심기술과 군사통신위성 제공 문제로 홍역을 치른 것을 감안하면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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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F-15K 전투기가 훈련비행을 위해 활주로를 이동하고 있다. 공군 제공


방사청은 2017년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무기를 도입할 경우 절충교역을 배제할 수 있도록 내부 규정을 개정했다. 유럽 업체들은 미국 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기술이전과 산업협력 분야에서 후한 조건을 제시해왔는데, 유럽과 미국업체가 함께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가격과 성능 외에 고려할 부분이 많지 않다.

싼값에 소요군이 쓸 무기를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기 도입과정에서 방위산업 진흥 기능을 겸하는 방사청이 국내 방위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방사청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는 외국 무기 구매 시 부품 중 일부를 국내 중소기업에서 조달토록 하는 산업협력 쿼터제 등의 실효성을 스스로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군 소식통은 “전략무기를 구매한다는 것은 생산국가와 높은 수준의 전략적 유대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라며 “산업협력조차 쉽지 않은 미국에만 의존하는 대신 군의 요구만 충족한다면 유럽이나 이스라엘 등 제3국의 무기도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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