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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로힝야 난민캠프·예멘 위협한 ‘구시대’ 감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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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폭력·차별로 ‘백신 밖’ 살아온 로힝야... 전쟁으로 의료 시스템 붕괴

쿠키뉴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로힝야 난민 캠프에 사는 압둘 라흐만(10)과 여동생 타스밀라(8)는 지난해 12월 15일 목이 붓고 아파 '국경없는 의사회'(MSF)의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 측은 '괜찮다'는 말과 함께 알약 5알을 줬다.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별다른 치료는 받지 못했다.이들의 증상은 급성감염질환으로 분류되는 디프테리아(Diphtheria)와 흡사해 보였다. 남매가 머무는 '쿠투팔롱-D1 2W' 캠프에 사는 또 다른 남매 압둘 못롭(9)과 누르 콜리마(8)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쿠투팔롱 캠프에서 남쪽으로 약 23km 달리다 보면 해안가를 끼고 삼라푸루 난민 캠프가 형성돼 있다. 샴라푸르 캠프는 미얀마를 탈출한 로힝야 난민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로힝야 슬럼가'다. 삼라푸르에 'Camp 23' 번호가 매겨지고 본격적으로 엔지오의 도움을 받게 된 건 2017년부터다.

그해 8월 25일 로힝야 반군의 2차 공격을 구실삼아 미얀마 정부군은 최악의 인종학살을 자행했고 단 몇 달 새 70만이 방글라데시로 쫓겨 왔다. 그중 약 1만여 명 정도가 이곳 샴라푸르에 둥지를 틀었다.

미얀마 라까잉주 마웅도 타운쉽 '고도루 사라' 마을에서 온 무하메드 알리(70) 가족도 그해 11월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 현재 'B블록'에 거주하는 70세 노인 알리가 디프테리아에 감염된 시기는 지난 해 4월. 이들은 국제이주기구(IOM) 의료기관을 찾아갔다. S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쿠투팔롱 MSF 병원으로 환자를 전원시켰다. 알리는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6일 만에 퇴원했다. 그는 미얀마에 살아온 약 70년간 예방주사를 맞아본 적이 없었다. 그는 미얀마 정부를 두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곤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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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예방주사 맞아본 적 없어'

디프테리아는 기원전 5세기 첫 발발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구시대'의 감염병이다. 감염되면 미열과 인후통, 편도선이 부어 음식을 삼키거나 숨을 쉬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면역이 약한 사람은 신체접촉만으로도 감염될 수 있고, 감염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분비물로도 감염될 수 있다. 치사율은 5~10% 가량이다. 그러나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유아와 아동에게는 치명적이다.

로힝야 캠프에서 디프테리아 의심사례가 처음 보고된 것은 2017년 11월 10일이다. MSF 긴급의료팀 코디네이터인 크리스탈 반리유웬은 디프테리아 감염 의심 환자를 최초 발견한 동료로부터의 연락에 '몹시 놀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로힝야 캠프의 디프테리아 창궐 상황을 담은 MSF 보고서에서 그는 '난민 캠프에서 일할 때,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파상풍, 홍역, 소아마비 등을 면밀히 체크해왔지만 디프테리아는 나의 '레이더'안에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크리스탈 반리유웬은 2017년 12월 기준 디프테리아 치료제인 '디프테리아 안티톡신'(DAT)이 전 세계에 5000병(viral) 정도 밖에 남아 있는 사실을 우려했다. 그는 '모든 환자들을 치료하기에 충분치 않아 도덕성과 평등의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2017년 12월부터 이듬해 초까지 디프테리아는 급속도로 확산됐다. 방글라데시 가족건강복지부, WHO, 유니세프, MSF 등은 디프테리아 대응 TF(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이후 50여개 디프테리아 백신투여 센터가 설치됐다.

WHO에 따르면, 두 차례의 대대적인 백신 투여 캠페인이 지난해 2월 12일 얼추 종료됐고 39만1678명의 어린이들이 디프테리아 면역 주사를 맞았다. 이 백신 캠페인은 생후 6개월~7세 아동이 우선 타깃이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8세~14세가 대상이었다. 앞서 밝힌 알리 등의 노인은 백신 투여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라흐만과 타스밀라 남매도 백신 캠페인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남매 가족은 2016년 10월 미얀마 라까잉주 마웅도 타운쉽 나사푸르 마을에 살다가 방글라데시로 이주했다. 아버지 모하마드 이수(45)는 남매가 출생 후 백신을 맞힌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얄궂게도 미얀마가 '예방접종확대계획(Expanded Programme on Immunization, EPI)'을 시작한 시기는 미얀마(당시 버마)군의 대 로힝야 1차 축출작전을 벌였던 1978년이었다.

미얀마는 2016년부터 어린이들에게 10가지 백신을 무상 접종하고 있다. 전체 국민의 약 80~90%가 기본적인 감염병 예방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시민권이 없는 로힝야들은 이런 기본적인 국가보건정책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로힝야의 예방접종률이 '극단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근거로 디프테리아 발생의 원인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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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 예멘에 불러들인 콜레라,디프테리아

예멘에서는 로힝야 캠프보다 석 달 앞서 디프테리아가 발생했다. 당시 WHO 예멘 대표였던 네비오 자가리아(Dr. Nevio Zagaria)는 '2017년에 디프테리아가 발생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로힝야의 제노사이드와 예멘 전쟁 등 오늘날 대표적 인도주의적 재앙으로 꼽히는 두 지역은 구시대 감염병을 불러들였다. '유니세프'(Unicef) 예멘 사무소에 따르면, 2017년 후반에서 2018년까지 예멘에서 총 3079건의 디프테리아 발생 건수가 보고됐고, 이중 178명이 사망했다.

또한, 예멘에서는 콜레라도 '전례 없이' 발발했다. 2016년 10월 첫 콜레라 환자가 보고된데 이어 2017년 4월 감염자 수는 100만 명으로 급증, 2300명이 사망했다. 예멘의 23개 지방(governorate) 중 22곳이, 333개 지역(district) 가운데 306곳이 콜레라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였다.

'전쟁 이전에도 급성 물설사(AWD)는 매년 30만 명 가량 꾸준히 보고됐다. 하지만 콜레라는 지난 10년 동안 제한된 일부 지역에서만 발견됐었다. 대대적인 확산은 전쟁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다.'

유니세프 예멘 사무소의 타이자 카스틸로(Thaiza Castilho)는 전쟁 전후의 콜레라 실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어 '전쟁 이후 급성 물설사(AWD)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며 '의료서비스나 세척 시설 등 기본 사회시설망이 심각히 악화됐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전쟁으로 나빠진 치안과 경제상황은 그나마 남아 있던 기본 보건의료 시설에 접근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카스틸로에 따르면, 예멘은 지난 해 콜레라 고위험군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백신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전년보다 감염률이 급감해 사망자 수는 435명으로 줄어들었다. 사망자의 1/3은 어린이였다. 전염성은 높지만 백신으로 충분히 예방 가능한 홍역은 예멘 어린이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감염병 중 하나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아동의 홍역 감염률은 2만3000건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5000건이 줄어든 수치였다. 카스틸로는 '예멘 어린이들이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10분에 한 명꼴로 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예멘의 인도주의적 재앙이 인재였다는 사실은 다방면에서 증명됐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주도한 아랍동맹의 폭격이 수도 시설과 병원 등을 수십여 차례 강타해 감염병 확산에 기여했다.아랍동맹은 지난 해 9월 19일 예멘 동북부 사다지방 누수르 지역에 위치한 수도시설을 폭격했다. 이미 같은 해 3월에도 해당 시설을 두 차례 폭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유니세프는 이 시설이 1만500명의 예멘인에게 식수를 공급해왔다고 전했다.

분쟁의 야만성은 이처럼 직접적인 살상 못지않게 생명유지와 직결된 시설물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에서 극대화된다. 예멘은 이런 등식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분쟁지역이다.

*방글라데시 현지의 아불 칼람, 무하마드 칸 두 통신원의 도움을 받아 작성됐습니다.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lee@penseur21.com,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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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국민건강 증진 공공 캠페인」 (한국인터넷신문협회-한국의학연구소 주최)에 선정된 기획보도입니다.

쿠키뉴스 이유경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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