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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해방의 여전사’로 나선 사이보그 소녀의 쾌감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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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알리타: 배틀 엔젤>

특권층 사는 공중도시와

아래 쓰레기더미 고철도시

가상의 미래 계급사회 배경

인간 뇌+기계 몸의 걸크러시

어둠의 세력 맞서 싸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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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로드리게스가 감독을 맡았다는 것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제임스 캐머런이 제작했다는 사실 또한 주목받고 있는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 제목도 흡사한 <아바타>의 개봉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알리타>의 주인공 캐릭터 또한 인간 배우가 아닌 ‘풀 시지(CG, 컴퓨터그래픽) 배우’라는 점,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적용된 ‘퍼포먼스 캡처’(표정 연기를 포함한 배우의 동작 전부를 컴퓨터그래픽 데이터로 바꾸는 기술)가 사용된 점 등이 여전히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뭐, 이런 기술들은 이제 매우 보편적인 것이 되어 이미 그 기술을 전면적으로 쓴 영화도 수두룩하며, 심지어 요즘에는 뮤직비디오(대표적 예로서 케미컬 브러더스의 <프리 유어셀프>)에서도 <알리타>에 적용된 주요 기술들이 거의 그대로 쓰이고 있다.

그럼에도 <알리타>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영화라기보다는 인간 배우가 등장하는 시지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접근방식, 그리고 그것을 실현해낸 기술 및 거대예산이라는 면 등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2020년 <아바타 2>의 개봉을 앞둔 제임스 캐머런의 애정 어린 프로젝트라는 면에서.

만화 ‘총몽’ 바탕, 제작비 2억달러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된 나비족 캐릭터들과 전투 드로이드들이 잔뜩 등장했던 <아바타>처럼,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 ‘알리타’(로사 살라자르) 이외에도 시지 캐릭터가 잔뜩 등장한다. 26세기로 설정된 <알리타>의 세계는 인간의 몸(두뇌는 제외)을 기계가 대체하는 것이 거의 치과 임플란트와 다를 바 없이 일상다반사인 세계다. 하여 <알리타>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은 얼굴을 뺀 나머지 부분을 ‘기계몸’으로 가지고 있다.

대부분 시지로 만들어진 이런 기계몸체를 가진 것은 대부분, 알리타와 생사를 건 육탄대결을 벌이는 ‘저쪽 편’ 캐릭터들이다. 기계몸들이 벌이는 갖가지 사지·신체 절단 액션은 이 영화의 원작만화인 <총몽>(기시로 유키토 작, 1990~)의 주성분을 이루는 핵심요소라 할 것인데, 바로 이 대목에서 로드리게스 감독과 <알리타>의 궁합 포인트가 보인다.

무슨 얘기냐면, 로드리게스 감독의 특기 중 하나인 ‘하드고어 액션’, 즉 찌르고 자르고 가르고 날리는 등의 각종 신체부위 훼손 및 해체 장면을 듬뿍 함유한 액션을 다름도 아닌 12살 이상 관람가라는 연령대 낮은 등급에서 자유로이 펼칠 수 있는 것은, 이 액션의 재료가 실제로 피를 흘리는 인간(또는 생명체)이 아니라 푸른색 코피를 흘리거나 절단 부위에서 피 대신 윤활유 뿜는 기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맞다. <알리타>에 관람등급은 매우 중요하다. 이 영화는 무려 2억달러가량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이므로.

한가지 더, 로드리게스 감독의 터치가 느껴지는 대목은 이 영화의 미술(프로덕션 디자인)이다. 이 이야기는 크게 두 세계, 즉 하늘을 뒤덮기에 적당한 고도에 고고히 떠 있는 특권층의 공중도시 ‘자렘’과 그들이 쏟아내는 산더미 쓰레기를 뒤져 사는 스캐빈저 도시 ‘고철도시’, 이 두 세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자렘은 영화 내내 거의 밑바닥만이 보이므로 실질적으로 <알리타>가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세계의 98퍼센트 이상은 고철도시가 차지한다.

감독 자신은 ‘스포일러가 될 것이므로 (영화 보기 전엔) 보지 마세요’라고 농담을 하더라만, 아무튼 원작만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비디오 전용 애니메이션(OVA)에서의 고철도시는 어둡고 기계적이며 곳곳의 한글 간판 외에 딱히 지역색을 특정할 수 없는 메마른 ‘누아르풍’의 슬럼가다. 하지만 영화의 고철도시는 실제 파나마의 건물과 거리 풍경을 모델로 삼아 만들어졌을 정도로 다분히 ‘남미풍’이다.

자, 대략 이 정도가 <알리타>에서 직접적으로 감지되는 로드리게스 감독의 체취이겠는데, 아무튼 이러한 시각적, 기술적인 부분에서 <알리타>가 도달해 있는 완성도는 충분하다. 물론 명암 대비가 뚜렷한 원작만화의 누아르풍 분위기는 많이 희석되어 있고, 영화를 보는 내내 ‘저기까지는 세트, 그 너머가 아마도 그린스크린…’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도록 하는 컴퓨터그래픽의 위화감도 전혀 없진 않았다만 대세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

하지만 할리우드로 간 <공각기동대>가 남겼던 전례를 생생히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걸작 ‘만가’-‘아니메’가 실사 영화로 구현될 때 그 완성도까지 자동 이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더구나 더욱 기본적으로는, 일단 영화는 원작을 전혀 모르는 관객들을 전제로 한다는 것 역시.

하여 <알리타>가 원작의 왕눈이-휴머노이드-사이보그-배틀 엔젤 소녀를 컴퓨터그래픽으로 훌륭하게 재현했다는 점이나, 그녀의 아버지 격 캐릭터인 로봇의사 ‘이도’(크리스토프 발츠)와 남자친구 캐릭터인 ‘휴고’(키언 존슨)가 원작만화의 캐릭터와 대단히 닮았다는(물론 ‘이도’ 캐릭터는 연령 면에서 원작과 꽤 차이가 있다만) 점 등은 대부분의 관객에겐 큰 매력이 되진 못한다. 또한 상당히 방대한 원작만화 중 가장 드라마가 강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1, 2권의 내용과 시각적 쾌감이 가장 강하다 할 만한 ‘롤러볼’ 경주(고철도시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트랙 경주) 에피소드를 결합하여, 드라마와 액션 쾌감을 동시에 취하는 전략을 택했다는 사실 역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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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감독 캐머런 제작
컴퓨터그래픽 볼거리 화려
극적 전개 긴장감은 부족


목숨 건 ‘롤러볼’ 장면 하이라이트

사실 최근 이 영화와 흡사한 기술적 접근방식을 취한 <레디 플레이어 원>의 개봉을 이미 접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드라마의 설득력, 즉 로봇의사 이도가 거대 쓰레기산에서 알리타를 찾아내어 알리타의 숨겨진 능력을 알게 되는 과정, 그리고 자렘으로 올라가는 것이 인생 목표인 소년 ‘휴고’(키언 존슨)를 만난 알리타가 그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얼마나 정서적 설득력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하늘의 ‘자렘’과 지상의 ‘고철도시’로 나뉜 세계가 단적으로 표현하듯, 이 이야기가 직설적으로 건드리고 있는 계급 문제, 양극화 문제가 얼마나 지금 이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절절하게 다가올 것인가 하는 부분이 이 영화의 정서적 핵심일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알리타>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사실 ‘최고 수준의 전투기계’로서 각성된 알리타는 싸움 본능, 전투 충동 그 자체에 의해 움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고도의 전투능력을 앞세운 알리타의 싸움은 기본적으로 ‘휴고’의 꿈을 이뤄주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더 높은 세계’를 꿈꾸는 소년 휴고의 절망과 열망이 <알리타>의 정서적 발판이 될 것인데, 문제는 영화에서 그것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나는 자렘에 올라갈 거야. 그게 내 꿈이야” 등등의 대사는 있다. 하지만 정작 갖가지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낮은 세계’의 삶, 그곳에 갇혀 있는 그의 절망감은 그리 효과적으로 표현돼 있지 않다.

꼭 원작처럼 자렘에 짓밟혔던 휴고의 과거 개인사를 영화에 살렸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첫 등장부터 외바퀴 오토바이(꽤 있어 보인다)를 타고 등장해 알리타를 태우고, 거리의 친구들과 알리타에게 롤러볼 경기를 살짝이나마 맛보여주고, 전망 좋은 나만의 장소에 그녀를 데려가 도시의 이곳저곳을 소개하는 등 거의 알리타의 관광가이드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는바, 관객으로선 그의 고철도시 탈출 열망, 그리고 신분 상승 열망을 느낄 기회가 도무지 없다. 그리고 덕분에 사랑하는 휴고를 위해 목숨 건 도전을 하는 알리타의 열의 또한 추력을 얻지 못한다. 더구나 그 도전이 ‘목숨을 건’ 것이 되는 과정 또한 상당히 인공적 긴장증폭장치로 느껴지며, 무엇보다도 알리타가 휴고를 ‘그렇게까지’ 사랑하게 되는 감정의 흐름 자체부터 별로 와닿지 않는 마당에야.

하여 이 영화의 시각적 하이라이트로서 제공되는 알리타의 ‘목숨 건 도전’, 즉 롤러볼 경기 장면에서 역시 그 화려한 액션에 걸맞은 긴장감은 없다. 원작을 읽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열람할 수 있는 이 경기의 복잡다단한 규칙은, 사실상 영화 속에서는 거의 알아볼 수 없도록 뭉개져 있다. 하여 액션 속 극적 장치로 이용될 수 있었던 ‘야비한 반칙’이라는 카드는 아예 처음부터 사용 불가가 된다.

더구나 만화 독자와는 달리 영화 관객에게는 ‘원래 그런 카인드 오브 세계’라는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기회조차 없다. 하여 이 롤러볼 경주 장면은 거대 콜로세움에 세워진 트랙 질주를 곁들인, 이미 흠씬 본 육탄격투의 반복 이외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더구나 그 경기의 결과야 시작 전부터 이미 구구단 1단만큼이나 명명백백하게 예측되는 마당에야.

물론 이는 알리타를 자렘에 맞선 ‘해방의 여전사’ 반열로 끌어올려 이야기의 규모를 키우기 위한 설정이었겠으나, 그 의도 또한 너무 빤히 읽히는지라 차라리 사랑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편이 훨씬 영화와 관객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의 미래 동력원 중 첫번째는 시나리오(이야기의 힘)’라는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최근 언급이 자주 생각나는 요즘이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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