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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병원비만 10억원 넘어…"국가가 도와줘야 하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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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청원 일주일째… 찬반 충돌 / 병원측 “의학적으로 코마상태 / 지금 당장 한국 이송은 불가능”/ 귀국 앞두고 유학생 보험 만료 / 여행자 보험마저 없어 ‘무방비’

세계일보

미국 그랜드캐니언으로 여행갔다가 추락사고를 당한 유학생 박준혁(사진)씨가 혼수상태에 빠진 지 23일(현지시간)로 25일째를 맞았다. 1주일 전 청와대 국민청원에 “박씨의 병원비가 10억원이 넘고, 환자 이송비만 2억원에 달한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그를 도와야 한다’는 입장과 ‘세금으로 사고당한 개인을 도와선 안 된다’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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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글만 보면 후자에 대한 호응이 더 높다. 하지만 국가가 박씨를 도울지에 대한 논의 자체가 당장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씨에 대한 청원이 올라온 것은 천문학적인 병원비와 이송비 때문인데 병원 측은 “의학적으로 코마상태라서 당장 한국 이송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간 박씨가 한 차례 눈을 뜨고 손가락을 움직였지만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으면 퇴원이나 이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씨는 캐나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에 앞서 동료 등 9명과 그랜드캐니언 단체여행에 나섰다가 지난해 12월30일 오후 4시 사우스림 야바파이 포인트 인근에서 발을 헛디뎌 수십m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인근 플래그스태프 메디컬센터로 옮겨져 수차례의 골절접합 수술 등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의식이 없다. 박씨 가족은 지난 1일 미국으로 날아와 병원을 드나들며 병간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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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혁씨의 치료비와 국내 이송비용에 대한 정부지원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현재 2만여명이 동의했다.


박씨가 부담할 병원비가 10억원이 넘게 된 것은 미국의 의료체계가 국민건강보험 의무가입인 한국과 달라서이다. 미국은 개인이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보장받을 수 있는 독특한 의료체계를 갖고 있다. 의료비 수가부터 의료행위 전반을 민간병원과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정해 의료비가 비싼 구조다. 다만 피보험자의 보험 회사나 변호사 등 전문가가 병원과 협상해 병원비를 낮출 수 있다.

귀국을 앞두고 유학생 보험이 만료된 박씨 상황이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여기다 박씨는 여행자 보험도 없었다. 보험사가 각각의 진료에 대해 병원과 계약한 보험을 개인이 구입하는 형태라서 비싼 보험일수록 보장 범위가 넓다. 여행사가 보험가입 고지 의무를 지켰는지 여부에 따라서 병원비 일부에 대한 여행사의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의 한인 여행사 관계자는 “여행사는 보험을 파는 곳은 아니지만 가입 고지 의무가 있다”며 “개인 부주의 때문인지 시설 문제인지도 따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씨의 병원비는 더 오를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박씨가 골절 접합 수술을 여러 번 했다면 해당 병원, 마취과의사, 내과의사 및 수술의사, 간호사, 약국 등에 각각 의료비를 내야 하기 때문에 전체 비용이 천정부지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보험사 관계자는 “지난 17일 기준으로 전체 병원비가 10억원이라면 지금쯤 더 많은 청구서가 날아와 총액이 늘었을 것”이라며 “미국에선 대장내시경을 위한 마취비용만 5000달러 정도, 위내시경 마취비는 3000달러다. 환자 이송용 헬기가 한 번 뜨는 데 5만달러가 든다”고 귀띔했다. 전체 비용을 병원이 한꺼번에 청구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수술에 관여한 의사와 간호사, 약사 등이 각각 진료비를 청구한다. 통상 여행자보험은 의료비 총액 10만달러를 기준으로 환자 부담액이 최고 1만달러 정도다. 박씨가 보험에 가입했다면 전체의 10% 정도만 부담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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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의 유명 전망대 지점인 사우스림 모하비 포인트에서 관광객들이 전경을 둘러보고 있다. 게티이미지


병원 측은 이미 박씨가 전체 진료비를 지불하기 힘들 수 있다고 판단, 일부 비용을 손실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의료비가 없는 환자를 강제퇴거할 수 없다. 차후 환자의 경제사정에 따라서 의료비를 깎아주거나 손실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주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은 사고 발생 직후 교민인 영사협력원을 급파해 초기대응에 나섰고, 박씨 가족의 생활 등에 도움을 주는 한편 병원비 처리와 이송 문제 협의에 관여하고 있다. 황인상 부총영사는 “의료비와 이송비와 관련해서 한국에서 논란이 많은 걸 안다”며 “현재는 재외국민 지원에 준해서 행정적으로 불편한 게 없는지 계속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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