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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겨울 바다, 흰줄박이오리는 파도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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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단열 뛰어난 깃털…파도 뚫고 잠수해 먹이 사냥하는 드문 겨울 철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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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 토성면 아야진을 몇 차례 다녀왔다. 겨울 철새 흰줄박이오리를 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움직이는 자연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날그날의 날씨와 환경이 맞아야만 해, 이 새를 만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드디어 1월18일 앙증맞은 흰줄박이오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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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뜰 무렵부터 흰줄박이오리를 기다렸지만 보이지 않는다. 오늘따라 파도마저 높고 거센 바람이 시야를 가려 관찰이 쉽지 않다. 차디찬 바닷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시퍼런 물결은 냉기를 더한다. 성난 파도가 쉬지 않고 모래사장을 향해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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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줄박이오리는 거침없이 거센 파도를 이용해 잠수한다. 이런 날이라야 바닷물이 뒤집히며 만족스럽고 풍부한 먹이를 파도가 운반해 준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센 파도에도 익숙한 솜씨로 사냥하는 흰줄박이오리야말로 파도를 다스리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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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께 흰줄박이오리가 보인다. 파도를 피해 바위에 올라선다. 이름 대로 흰색 줄무늬가 유난히 눈에 띈다. 하나둘씩 모여들어 모두 7마리의 흰줄박이오리가 바위에 앉았다. 서로 아주 가까이 앉아 있으면서도 영역을 지키려는 몸짓 언어가 긴장감을 돌게 한다.

온종일 집채만 한 파도와 싸워가며 생활하는 흰줄박이오리의 수영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지만 아야진 먼바다에서 잠수하여 작은 게, 패류, 갑각류, 무척추동물 등을 잡아먹는 일이 이들에게도 힘든 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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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은 필수적이다. 아야진항 가까운 곳의 나지막한 바위는 흰줄박이오리의 휴식처로 적합하다. 운동장처럼 넓은 바위는 파도가 마지막으로 쉬는 곳이라 홍합이 자리 잡았다. 해조류가 풍부하고 파도에 실려 오는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환경이다. 주민들도 이곳으로 낚싯대를 들고나온다. 홍합을 따거나 파도에 밀려온 해조를 줍곤 한다. 하물며 새들이 이런 천혜의 환경을 모를 리 없다. 사람과 새가 함께 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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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후 4시께 바위에서 휴식하던 흰줄박이오리가 하나둘 바다로 뛰어든다. 거센 파도를 물리치며 먹이 사냥에 나섰다. 파도와 맞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잠수하여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이 경이롭다. 잠수성 오리답다. 잠수성 오리들은 파도타기의 명수다. 주변에 있는 수면성 오리인 홍머리오리나 청둥오리는 엄두조차 못 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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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터 인근 바위에서 사냥하던 흰줄박이오리들이 먼바다를 향해 날아간다. 먹잇감이 있나 보다. 흰줄박이오리는 몸길이 43㎝로, 45㎝인 원앙보다 약간 작다. 원앙처럼 금실이 좋으며 행동하는 모습도 비슷해 보인다. 부부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내며 사냥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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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은 전체적으로 검은 회색이며 부리 위, 머리, 눈 뒤, 목 앞 뒷부분, 가슴에 흰 줄무늬가 있다. 특색 있는 무늬다. 옆구리의 붉은빛 감도는 밤색이 인상적이다. 부리는 회색빛이고, 다리는 갈색이다. 암컷은 어두운 갈색 몸에 눈 주위로 세 개의 흰점이 있다. 부부가 함께 있으면 암수의 깃털 색이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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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줄박이오리는 잠수하기 전에 주변을 신중히 살핀다. 잠수를 마치고 나올 때 위험요인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민하고 조심성이 많아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특히 눈치를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물 밖으로 나올 때는 잠수하기 전보다 매우 민첩한 행동을 보여 언제 수면 위로 올라왔는지 모를 정도다. 마치 코르크 마개가 물속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다. 몸집이 작은 이 오리는 단열을 위해 깃털이 매우 빽빽하게 나 있다. 털 속에 공기를 많이 머금기 때문에 부력이 커, 물속에서 총알처럼 빠르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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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흐르는 산림 계곡에서 번식하고 서식하며, 둥지는 물가 바위틈, 풀숲의 땅 위에 마른 풀과 나뭇가지를 이용해 만든다. 알을 낳는 시기는 5~8월이다. 노르스름한 빛이 옅게 도는 흰색 알을 4~8개 낳아 28~29일간 품으며 그동안은 거의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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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들은 부화 후 둥지에서 바로 이소하며 어미와 함께 물길을 따라 이동한다. 새끼들은 2~3년이면 번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 매년 같은 장소에서 번식하며 캄차카, 시베리아 동부, 사할린, 쿠릴 열도 북부, 알류산 열도, 알래스카, 북아메리카 등이 번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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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줄박이오리는 월동했던 장소에 해마다 찾아온다.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새가 먼저 떠나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다. 바닷가에 암석이 많은 우리나라 고성, 양양, 속초, 울진, 포항 등의 동해안과 사천만, 부산, 울산 등의 남해안, 그리고 제주도 해안에서 월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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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도래하는 개체 수는 적으며, 2000년 동해안 10개체, 2001년 동해안 37개체, 2004년에 60여 개체, 2006년 66개체, 2008년 130여 개체, 2010년 30여 개체가 관찰됐다. 지난 10년 간 개체 수는 전반적으로 증가했으나 불규칙적이다(환경부 1999~2010). 적은 수의 흰줄박이오리가 우리나라를 찾아오지만, 어망에 걸려서 익사하는 경우가 있으며, 기름 유출에 의한 오염도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 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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