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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소년 급제·초엘리트…양승태 영욕의 42년 법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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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한 성격에 보수성향 엘리트로 승승장구

과도한 자신감 탓 ‘상고법원’ 밀어붙이다 화 자초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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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잘 아는 법조인들은 대략 네 개 열쇳말로 그를 말한다. ‘소년 급제, 강직한 성격, 초엘리트 법관, 보수적 판결 성향’이 그것이다.

경남고, 서울법대(66학번)를 나온 양 전 대법원장은 1970년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사법연수원(2기)을 마치고는 1975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법관이 됐다. 당시 서울민사지법은 사법시험과 연수원 성적을 합쳐 최상위권만 갈 수 있었다.

‘판사 양승태’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1983년에는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으로 ‘사법관료’에 입문했고, 흔히 ‘법원 내 하나회’로 불리는 ‘민사판례연구회’(민판연)에도 가입했다. 민판연은 보수 성향과 높은 성적 등 ‘자격’이 되는 후배 법관을 선배 법관이 개별 접촉해 가입시키는 폐쇄적 엘리트 조직으로 유명했는데, 그 일원이 된 것이다.

법원행정처 송무국장과 사법정책실장, 서울고법 부장, 서울지법 수석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2003년 ‘대법관 0순위’로 평가받는 법원행정처 차장에 임명됐다. 그러나 때마침 ‘제4차 사법파동’이 일어나면서 특허법원장으로 전보된다. 훗날 대법관을 지낸 박시환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의 주도로 법관 160여 명이 서열·기수 위주의 대법관 제청에 반대하는 ‘소장법관들의 의견’을 공표하자 법원 안팎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한 법관 출신 변호사는 “양 차장이 최종영 대법원장에게 ‘잘못 보좌한 책임이 크다’며 사표를 냈는데, 대법원장이 이를 반려하고 특허법원장으로 보낸 것”이라며 “그게 양 전 대법원장의 법관 인생에서 거의 유일한 구김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기’의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법관이 되면서다. 2005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대법관을 지낸 6년간 그의 판결 성향은 ‘보수와 극보수 사이’쯤으로 요약 가능하다. 집회·시위 사건에는 ‘무관용 원칙’을 선호했고, 북한에 대해서는 반국가단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학교재단은 실질적 사유재산”이라며 재단 비리로 퇴진한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의 손을 들어준 판결은 유명하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에서는 이건희 회장에 대해 무죄 취지의 별개 의견을 썼다. 반면 호주제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고,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을 인정해 인권·여성 문제에서는 유연하다는 평을 들었다.

“대법관들이 모여 판결 합의를 할 때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의 보수적 입장을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에,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인데도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영리하고 명석한 수재형이면서도 선이 굵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자신의 판단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넘쳤다.” (전 대법관)

이명박 정부에서 대법원장에 임명된 그는, 특유의 자신감으로 ‘상고법원’을 밀어붙였다. 법원 안팎의 의견수렴은 건너뛰었다. 청와대, 국회 같은 외부의 장해는 ‘로비’나 ‘거래’로 풀려 했다. 반대하는 법관들은 인사 불이익을 동원해 제압에 나섰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지나친 확신이 화를 불렀다. 그가 당시 무엇을 했는지는 구속영장에 적시돼 있다.

양 전 대법원장과 가까운 변호사가 말했다. “대법관을 퇴임하면서 ‘앞으로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법원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히말라야, 로키로 등산도 다니고, 오토바이 탄다고 면허도 땄다. 그런데 그 다짐을 왜 스스로 거뒀는지… 그걸 지켰더라면 오늘 같은 치욕은 없었을 텐데.”

인명사전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1월26일생이라고 적혀 있다. 한때 사법부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전직 수장은 42년 법관 생활의 회한을 품은 채 71번째 생일을 구치소에서 맞게 됐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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