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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독다방, 난향, 담카페…30년 전 '핫플'서 찾은 뉴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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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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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다방의 예전 모습과 현재의 독다방을 비교해 놓은 이미지.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유물정보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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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다방에서 5시? 오케이!”

카톡에 답을 하고 보니, 30년 전 늘 해오던 말이다. 창천교회 앞 ‘독수리다방(늘 부르던 대로 독다방이라 하겠다)’은 만남의 광장이었다. 독다방 안이 아니라, 독다방 앞 메모판이 말이다.

‘극예술 연구회, 연희집으로 옮김. 8시부터’, ‘89 현주, APRIL로 와!’ 핸드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 메모판에 쪽지를 꽂으며 우리는 서로를 호출했다. 약속을 안 했더라도 교문을 나서면 메모판 앞에서 지인의 술자리를 찾곤 했는데, 놀랍게도 학회, 써클, 친구들의 쪽지가 하나 이상은 붙어 있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내렸다. 오랜만이다. 요즘 이쪽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면 연남동이나 상수동, 망원동으로 간다. 신촌은 나도 상대방도 떠올리지 않는다. 소위 ‘핫플’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이곳을 천천히 둘러보며 걸어보리라. 신촌역을 나오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여전히 ‘홍익문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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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문고의 모습과 내부. 홍익문고 1층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특정 테마로 큐레이션 한 책들이 놓여 있다. [사진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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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부터 4층까지 건물 전체가 서점이라는 게 지금이야 특별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규모 면에서도 서점이 주는 정서적 매력에서도 신촌 하면 떠오르는 공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잡지와 베스트셀러, 몇 가지 주제로 큐레이팅한 책들이 꽂혀있는 1층은 변함없었다. 이곳에 서서 책을 뒤적이고 있으면 약속한 누군가가 문밖에서 손을 흔들곤 했는데….

홍익문고가 60주년을 넘겼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일구어 놓은 서점을 이제는 중년이 된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있다는 게 고마울 뿐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신촌 곳곳에는 그때의 시간을 함께했던 곳이 몇 군데 남아 있다. ‘형제갈비’와 같은 큰 식당부터 ‘고바우’ 같은 노포형 고깃집, 라면 맛이 일품이었던 ‘훼드라’, 록 음악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던 ‘우드스탁’까지. 지나치기만 할 뿐인데, 그때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 오늘은 이 기분을 쭉 가져가 봐야겠어. 몇 년 만의 ‘잘살아보세’팀 모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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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거리 모습. 신촌 로터리에서 연세대로 향하는 거리. 확실히 보행 도로가 넓어졌다. [사진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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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극예술연구회에 가입해 동아리 활동을 했다. 연극이라는 장르에 속수무책 빠져 있었을 때라 입학하자마자 문을 두드렸고, 졸업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늘 몰려다니던 동아리 내 절친들도 있었다. 86학번에서 89학번 여성 학우 6명으로 구성된 일명 ‘잘살아보세’팀. 연극작업은 물론 학교생활도 당차게 해나가고 있다며 선배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직장 초년시절과 결혼과 출산 즈음까지는 가끔 만나 안부도 전했는데, 30대 중반 이후 각자의 일과 육아가 바빠지고 지방으로 해외로 생활반경이 달라지면서 연락이 뜸해졌다. 한두 명 따로 만나기는 했지만 이렇게 제대로 모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아이들이 크고 직장생활의 정점을 찍고 난 후 다시 친구들이 모이게 된다고 들었는데, 우리도 그즈음이 되어서야 단톡방을 열었고 드디어 오늘 만나기로 한 것이다.

독다방은 8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이곳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띈다. ‘독수리 다방은 1971년 음악다방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70~80년대 대학생의 아지트였지만 2005년 문을 닫았다’는 내용이다. 독다방을 운영하던 분의 손자가 2013년 재개업했다고 들었다. 안으로 들어섰다.

당시의 정서를 소개하기 위해서인지 예전 사진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혼자 앉아 책을 있을 수 있는 ‘독’방, 친구들과 담소를 할 수 있는 ‘수’방, 단체로 모일 수 있는 ‘리’방으로 나누어진 공간의 구성이 요즘 대학가의 문화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빼 와 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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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다방'의 입구와 커피 모습. 독수리다방 입구에는 연혁을 간략하게 설명해 놓은 안내문과 이전처럼 쪽지를 붙여 놓은 메모판이 있다. 메뉴는 물론 달라졌다. 우리는 연유가 함유된 다방 커피를 주문했다. [사진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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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독다방이 이렇게 변했네. 커피는 여전히 맛있다. 여기서 만나길 잘했네.”

“그때는 커피를 시키면 모닝 롤이 나왔는데, 그것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학교로 올라가곤 했었어”

“요즘은 공부하는 곳이 카페더라구. 저기 독방에 앉아있는 학생들처럼 말이야.”

오랜만에 모여 앉은 우리는 독다방의 변화와 요즘 카페 문화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제는 대학생의 생활로, 교육과 입시, 드라마 ‘스카이 캐슬’로 옮겨갔다. 하긴, 우린 어쩔 수 없는 엄마니까. 자녀들의 대입을 앞둔 학부모 말이다.

저녁 식사를 위해 중국집 ‘난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 역시 92년에 개장했으니, 꽤 오래된 곳이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고량주 한잔을 나누며 그동안의 안부를 본격적으로 물었다.

“얼마 전 독감에 걸려 일주일을 고생했어요. 설마 내가 걸릴까 싶어 지금까지 예방접종을 안 하여 왔는데 이제 정말 면역력이 떨어졌나 봐요.” “늦게 시작한 박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 마지막으로 논문 심사 준비 중이야. 논문을 끝내고 나면 일을 하더라도 회사에 다녔었던 이전과는 조금 다른 속도로 일하고 싶어.”

예전의 기억도 떠올려 보았다.

“그때 언니들이 갑자기 학교에 투피스를 입고 나타나 삼겹살을 먹으러 간다고 해서 따라갔었잖아요.”

“아, 우리 둘이 어디를 좀 다녀오던 길이라 옷이 그랬었나 보다. 그걸 다 기억하네.”

“학교 다닐 때는 네 이야기가 조금 황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어려서 그런 게 아니라 자신감이 남달랐다는 생각이 드네.”

기억의 조각들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게 뭐 대수랴. 퍼즐을 맞춰가는 이 시간이 즐겁기만 한 것을. 그 조각들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나이가 아닌가. 당시의 신촌은 청춘을 설레게 하는 곳이었고, 그때의 우리는 이 신촌에 모여 서로를 열심히 바라봐 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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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담'의 내부와 사장님의 모습. 올해로 개장한 지 30년이 된다는 카페 '담'과 그동안 한 자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 [사진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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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다시 한번 자리를 옮겼다. 이전에 다녔던 곳을 찾아보자며 골목을 뒤지는데 ‘담(談)’ 카페가 눈에 띄었다. 병맥주를 마시고 싶을 때, 맥주 파와 음료 파가 함께일 때 갔었던 곳이다. 분위기는 여전했다. 나무 테이블과 LP판, 차분해 보이는 조도와 너무 북적이지 않아 이야기하기 적당한 소음. 사장님의 모습도 익숙했다.

“혹시 예전에도 계시지 않으셨어요? 담 언니, 맞지요?”

“네, 맞아요. 오랜만에 오셨나 봐요.”

89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30년째 같은 자리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도 하네요. 처음 오픈 했을 때 오신 손님들은 그래도 알아보겠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올해가 30주년이라 조그맣게라도 이벤트를 해야 할까 생각 중이었어요.”

“하세요! 옆에 있는 ‘다모토리’도 앞쪽의 ‘우드스톡’도 간판이 그대로라 반가웠어요.”

“다음번에 다시 와도 그때 공간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70년대와 80년대 젊은이들의 ‘핫플’은 신촌이었다.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신촌지역 곳곳에서 원두커피, 언더그라운드문화, 록카페, 라이브카페, 소극장, 서점 등의 청년문화가 만들어졌고, 젊은이들은 대학가라는 특수성이 더해진 개방적 분위기에서 그것들을 향유했다.

미네르바에서 사이폰 커피를 마셨고, 신촌 블루스와 들국화의 소극장 공연을 관람했으며, ‘레드 제플린’과 ‘러쉬’를 오가며 록음악을 들었고, ‘BENZ280’에서 땀 흘리며 춤을 췄고, ‘향음악사’에서 새로 나온 음반을 뒤적였으며, ‘오늘의 책’과 ‘알서림’에서 선배들이 권해주는 책들을 찾아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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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청년문화개척지, 신촌' 전 포스터. 청년문화의 중심지인 신촌을 재조명하는 전시였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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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기획전이 2016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었다.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청년문화의 중심이었던 신촌을 과거부터 현재까지 재조명하는 자리였다고 기억한다.

어찌 됐건 당시의 청년 문화와 대학 문화는 90년대에 들어 신세대문화에 자리를 내주었고, 이는 신촌에서 압구정동과 홍대로 무대가 바뀌는 계기가 됐다. 청년들은 세대를 이루며 그들의 일상이 담긴 취향과 문화를 만들어왔고, 이에 맞춰 상징적인 공간들은 달라진다. 요즘은 밀레니얼 세대를 지나 Z 세대를 논하고 있는 때이니,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신촌은 그저 2호선 신촌역 앞 대학가일 뿐이다.

그런데도 흥미로운 지점도 눈에 띈다. ‘뉴트로(New+Retro의 합성어)’라는 이름으로 이전 세대 문화에 빠진 청년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 롤러 스케이트장의 복귀만 봐도 그렇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뉴트로’를 2019년을 대표하는 트렌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10대와 20대에 번지고 있는 이런 과거로의 회귀는 속도감에 지쳐있는 현재에 대한 반작용이란 분석이다. 디지털 시대의 불안감을 아날로그 공간에서 아날로그 물건으로 위안한다는 것이다. 청년들도 위안을 받는데 50대에 들어선 우리야 말해 무엇할까. 그들에겐 과거에서 찾아낸 신선한 자극의 ‘뉴트로’가 우리에겐 과거를 떠올리는 따뜻한 감성 ‘레트로’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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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보세팀' 몇 년만에 자리를 만들어 만난 '잘살아보세' 팀 친구들. 다른 듯 비슷한 근황을 나누고, 지난 시간도 추억했던 시간이 즐거웠다. 왼쪽부터 김미나, 김혜경, 필자, 박수진, 권성은. [사진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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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우리는 ‘잘살아보세’팀의 만남을 분기별로 진행하기로 했다. 바로 여기 신촌에서 말이다!

김현주 콘텐트 크리에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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