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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학식’에 빠진 택시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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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택시 기사 체험 이충신 기자 추천 기사식당 下

서울대 기숙사 식당은 기사들의 ‘성지’

연세대 공학원도 비교적 이용하기 좋아

김포공항 ‘스낵’도 기사들의 알짜 음식점

대부분 대학 주차장 택시는 1시간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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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 주간 근무 이틀째인 지난해 12월12일, 오전 10시께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이마트 남양주점 앞에서 손님을 태워 노원구 월계동 인덕대학으로 갔다. 이왕 학교에 손님을 태우고 왔으니 학교 식당을 찾아 점심을 해결할까 생각했다. 기사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대학식당이 일반 식당에 비해 ‘싸고 맛있다’는 말을 듣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납금 걱정이 앞서 화장실만 들른 뒤 곧바로 손님을 태우러 가까운 전철역으로 향했다. 바쁘게 서두르지만 않았다면, 대학식당을 찾아 느긋하게 이른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쉬웠다.

3일째인 13일에는 손님을 태우고 위례 신도시에 들어갔다가 펑펑 내리는 눈에 갇혀 오전 10시 조금 넘은 시간에 상가 안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주간 근무 때는 기사식당뿐만 아니라 일반 식당에서도 점심을 해결한다. 하지만 일반 식당은 먹을 만하면 가격이 1만원을 쉽게 넘어간다.

이에 비해 가격과 양, 맛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대학식당은 택시 기사들에게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대학식당은 기사식당과 비교해도 ‘가성비 갑’이다. 더구나 택시는 대학교 안에 들어가면 대부분 1시간 동안은 주차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1시간이면 점심을 먹고, 다시 손님을 태워서 학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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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싸고 양도 많고 맛도 좋죠.”

택시 기사 김권기씨는 1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대학 기숙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학교가 넓어서 주차하는 데 시달리지 않아 제일 좋다”고 했다.

이날 관악구 대학동 서울대 관악캠퍼스 기숙사 식당 앞 도로변에는 점심시간이 되면 줄지어 서 있는 택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10여 대의 택시가 식당 앞에 주차돼 있었다. 날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바뀌는 메뉴는 대부분 3천~5천원 사이로 기사식당 6천~8천원보다 훨씬 싸다.

이날 대학 기숙사 식당 메뉴는 제육보쌈과 막국수(5천원)와 돌솥우렁된장(4천원)이 나왔다. 외부인에게는 정가로 팔고 서울대 구성원들에게는 1천원 싸게 판다. 점심은 오전 11시30분~오후 1시30분까지, 저녁은 오후 5시30분~7시30분 사이다. 된장찌개를 먹고 나온 이종만(71)씨는 “학생 태우고 들어와서 점심 먹으려고 했는데, 못 태우고 빈 차로 왔다”며 “요즘 돈을 못 벌어 비싼 거 못 먹지만 그래도 맛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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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기숙사 식당뿐만 아니라 경영대 쪽에 있는 구내식당 ‘소담마루’도 택시 기사들이 자주 이용한다. 개인택시 기사 동료인 장상식씨와 윤정로씨는 이날 손님을 태우기 전까지 소담마루 식당 맞은편 나무의자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장씨는 “벌이가 안돼 밖에서 밥을 잘 안 먹는다”며 “여기도 전에는 (학생, 일반인 구분 없이) 2500원이나 3천원이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1천원씩 다 올렸다”며 아쉬워했다.

광진구 군자동 세종대 학생식당은 소금구이덮밥(3500원)으로 유명하다. 8시간 숙성한 돼지고기를 양념에 버무려 만든 소금구이덮밥에 밑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과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으면 맛이 좋다. 찜닭덮밥(4천원)과 간장돼지불고기덮밥(4천원)도 맛있다. 세종대 학생식당은 대부분 메뉴가 2천~5천원으로 싼데, 식당 노동자 휴식권 보장 차원에서 토·일요일은 문을 닫는다.

세종대 학생식당을 이용하기 힘들다면 근처에 있는 건국대 학생식당도 괜찮다.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서울캠퍼스는 교내가 넓어 주차하기 편하고, 세종대만큼이나 메뉴도 다양하고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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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신촌캠퍼스로 손님을 태우고 왔다면 밖으로 나가지 말고 공학원 구내식당을 이용해도 좋다. 남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있어 가기 쉽고, 붐비지 않아 조용히 먹을 수 있다.

지하 1층 구내식당은 학생식당보다는 비싼 편이지만 외부 식당과 견주면 싸다. 한상차림(5800원)은 숯불돼지불고기와 생선구이, 잡채를 함께 먹을 수 있어 영양가 높은 식단이다. 새로 시작한 순살등심돈가스(5500원)도 먹음직스럽고, 보글보글 끓으면서 나오는 순두부찌개(4천원)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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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장충동2가 동국대 서울캠퍼스 상록원 1층 학생식당은 3300~4천원만 있으면 모든 메뉴를 고를 수 있다. 육개장(3300원)과 마늘삼겹구이&된장뚝배기(4천원) 등은 기사들 입맛에도 잘 맞을 듯싶다. 3층 교직원 식당인 ‘채식당’은 밥, 채소, 쌈 등 신선한 채소들로 가득한데 사찰 음식을 배운 영앙사가 식단을 짠다. 7천원으로 오전 11시30분~오후 1시30분이다. 동국대에 들어오는 택시와 경찰차는 온종일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

택시 기사 편에서는 대학식당이 좋은 식사 장소지만, 택시 기사와 함께 줄 서고 식사해야 하는 ‘불편함’을 호소하는 학생이나 교직원들도 있다. 택시 기사들은 하루 12시간씩 택시를 운전하면서, 바쁘지만 시간을 내어 겨우 점심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김밥 한 줄로 허기를 채우기도 하고 차 안에서 먹기도 한다. 시간이 없을 때는 굶기도 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기들을 학교까지 태우고 온 기사들이 학교 식당에서 점심 한 끼쯤 해결하고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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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불 돼지구이로 유명한 ‘쌍다리 돼지불백’

성북구 성북동 기사식당길에 있는 40년 가까이 된 ‘쌍다리 돼지불백’은 연탄불에 구운 돼지불백으로 유명하다. 돼지불백비빔, 낙지볶음, 부대찌개 등 모든 메뉴가 8천원이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03번 마을버스를 타고 ‘성북구립미술관·쌍다리’ 정거장 앞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식당이 보인다.

17일 오후 5시께 찾은 쌍다리 기사식당에는 지방에서 온 예약 손님 30여 명이 줄줄이 들어왔다. 방송을 타면서 ‘전국구 식당’이 돼, 열 명 중 여덟이 일반인 손님이다. 원래 ‘쌍다리 기사식당’이었으나, ‘쌍다리 돼지불백’으로 음식점 이름도 바꿨다. 그래도 단골 기사들은 꾸준히 쌍다리 돼지불백을 잊지 않고 찾아온다. 그 힘이 바로 연탄불에 구운 돼지불백으로, 상추 위에 밥과 돼지고기, 부추, 마늘, 무채를 함께 넣어 먹으면 ‘합’이 잘 맞아 ‘조화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인데, 2·4주째 일요일은 쉰다.

35년째 기사로 일하고 있는 정찬길(68)씨는 “불백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종로 등 시내 쪽에서 일하다가도 일부러 찾아온다”며 “한 달에 4~5번 오는데 일반인 손님이 몰리는 시간은 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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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공항동 김포공항에 가면 택시 기사들만 찾는 특별한 식당이 있다. 국내선 택시승강장 못 미쳐 휴게음식점 ‘스낵’(SNACK)이 있다. 무엇보다 바로 옆에 깨끗한 공중화장실이 있어 택시 기사들이 좋아한다. 국내선 택시 승강장으로 손님을 태우러 가면서 식당에 들러 뚝불고기(6천원)나 청국장(5천원)으로 식사를 하기도 하고, 김밥 등으로 요기를 하기도 한다. 공항 청사 안에 있는 식당 음식 가격이 1만원 내외인데 60% 가까이 싼 편이다. 국내선 도착 택시 승강장에는 택시만 들어가는 길을 따라 가야 해서 일반인들은 음식점을 찾기 힘들다.

글·사진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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