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영장심사 뒤 한숨 쉰 최정숙···양승태 운명 가른 세장면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양승태 영장심사 후 변호인 한숨 내셔

"그때 이미 구속 결정된 것, 큰 실수"

안태근 판결에 '범죄 중대성' 부각

검찰 집안 명재권 배당도 치명타

중앙일보

양승태 전 대법원장(가운데)과 변호인인 최정숙 변호사(왼쪽)이 23일 오전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5시간 30분의 실질심사가 끝난 뒤 최 변호사는 기자들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온 23일 오후 4시 7분.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인 최정숙 변호사(52·연수원 23기)가 법원을 나서며 한숨을 내쉬었다.

취재진이 "영장심사에서 어떤 부분을 소명하셨냐"고 묻자 최 변호사는 한숨을 쉬며 말 없이 4분간 걸어가다 멈춰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최 변호사의 한숨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심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준 한 장면이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변호인이 언론 앞에서 한숨을 내쉴 정도면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실질심사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제대로 반박도 못한 채 거기서 최 변호사도 구속을 예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이 24일 새벽 구속됐다. 실질심사를 맡았던 명재권(52·연수원 27)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의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영장을 발부했다.

전직 사법수장이 구속된 것은 헌정사상 최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취재진에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였고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지금 상황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양 전 대법원장 영장 발부는 의외라는 분위기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전 대법원장이니 당연히 기각될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법원 내부와 판사 출신 변호사들 사이에선 "몇가지 장면들이 맞물리며 양승태도 구속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말이 나왔다.

중앙일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24일 오전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명재권이 아닌 허경호가 맡았다면 기각됐을 것"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을 발부한 명재권 부장판사와 연수원 동기인 한 변호사는 "명재권이 아닌 허경호 부장판사가 심사를 맡았다면 영장이 기각됐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말했다. 허 부장판사는 같은 날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검찰의 영장 재청구를 기각했다.

이 변호사는 "서초동 변호사들은 명재권 판사의 재판을 한번 받으면 다시는 받고 싶지 않아 한다"며 "주어진 증거를 토대로 기계 같이 판결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명 부장판사의 또다른 연수원 동기는 "평상시 농담도 거의 하지 않는 스타일로 어떤 판결이든 엄격해 동기들이 '너무 근엄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11년 검사 이력의 법관인 명 부장판사는 참여정부 당시 검찰 개혁에 반발해 사표를 던진 명노승(74·연수원 3기)전 법무부 차관과 먼 친척이라고 한다.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근무한 이력이 없어 이번 영장심사에 배당됐다.

명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과 박병대·차한성 전 대법관의 사무실, 고영한 전 대법관의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전 대법관들에 대한 법원의 첫 강제수사 허가였다.

하지만 지난달 7일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했고 검찰은 고 전 대법관에 대해선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았다.

전직 상사 실형, 영장심사에서 활용한 검사에 "참 야속하다"
안태근 전 검찰국장(검사장급)에게 직권남용 혐의로 2년형을 선고한 법원의 판결도 양 전 대법원장 영장 발부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명 부장판사의 연수원 동기이기도 한 이상주 부장판사(51·연수원 27)는 23일 안 전 국장이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가리려 서지현 성남지청 부부장 검사에게 부당한 인사 조치를 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날 오후 안 전 국장에 대한 판결이 나온 뒤 영장심사에서 "수십명의 법관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안 전 국장보다 훨씬 더 무겁다"는 논리를 펼쳤다.

중앙일보

'서지현 인사 불이익'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태근 전 검사장이 23일 오후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검찰 내부에선 한때 상사였던 안 전 검사장이 예상외의 실형을 선고받은 직후 이를 활용한 후배 검사들에 대해 "참 야속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

하지만 이런 검찰의 논리는 영장 발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명 부장판사는 영장을 발부하며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상당부분 소명됐고 중대하다"고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단이 영장심사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와 후배 판사들의 증언에 대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면 부인한 전략이 역풍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우리 쪽에서 매우 단단한 증거를 다수 확보하고 있었다"며 "그 증거 자체를 부정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검찰 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후배 판사가 증거를 조작할 가능성이 상식적으로 매우 적지 않냐"며 "검찰이 확보한 증거를 변호인이 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전략을 펼친 것은 매우 위험했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도 "후배 판사를 탓하는 전략이 당시 영장전담판사는 물론 여론에게도 부정적 인식을 심어줬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양 전 대법원장도 코너에 몰리니 다른 일반 피의자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