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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최저임금 인상 고통 없다" 백종원으로 뜬 포방터시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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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포방터시장 내 '어머니와아들' 닭곰탕집 앞.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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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19일 나흘 동안 서울 홍은동 포방터시장 곳곳을 돌았다. 지난해 11월 한 방송의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되며 일약 '전국구 시장'으로 발돋음한 곳이다. 돈카스를 먹기 위해 1박 2일 동안 줄을 서야 하는 '연돈(옛 돈카)', 홍탁에서 닭곰탕으로 메뉴를 바꾼 후 대박난 '어머니와아들' 식당이 견인차 구실을 했다. 정용래(66) 포방터시장상인회장은 "재개발이 시작돼 유동인구가 줄던 차에 모처럼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1994년부터 한 자리서 '기름집'을 하는 오경숙(57) 씨는 "방송 직후엔 '여기가 명동인가' 싶을 정도로 붐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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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방터시장 연돈(옛 돈카).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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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특히 추위와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롱패딩을 입고 맛집을 찾는 20·30대 커플이 눈에 띄었다. 돈카스·닭곰탕·주꾸미 식당 등 방송에 나온 집 앞은 점심·저녁 시간마다 대기자가 수십명에 달했다. 특히 돈카는 이달부터 대기표를 하루 전에 배부하고 있다. 7000원짜리 돈카스를 먹기 위해선 이틀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TV에 나오지 않은 보리밥·수제비·만두집은 물론 분식집·정육점·청과점도 활기를 띤다. 낙수효과다.

중앙일보가 지난 16~19일 시장 상인 30명을 만나 인터뷰해 보니 23명이 "(방송 전보다)매출이 올랐다"고 말했다.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상인은 5명에 불과했다. 카페 사장 오 모(41) 씨는 "처음엔 하루에 20만원씩 더 벌었다"고 말했다. 떡집을 하는 임낙용(61)씨는 "우리 집만 하더라도 20%가 올랐다. 상권이 커지는 게 눈에 보인다"고 했다. 정육점을 하는 박근수(65) 씨는 "하루 500명이 왔다 갔다 하는데 매출이 안 오를 수 없다"고 했다.

"권리금, 직원, 외지인 건물주" 포방터 '3無'

언론에 부각된 뒤 뜨는 지역이 많지만 곧 지고 만다. 하지만 포방터시장엔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 있다. 상인회에 따르면 "아직 권리금이 없을 정도"로 임대료가 싸다. 또 건물주가 대부분 인근 주민으로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의 가능성이 적다. 가족 경영으로 최근 급격하게 오른 인건비 압박의 무풍지대라는 점도 여타 상권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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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포방터시장 골목.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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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건 3.3㎡(1평)당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임대료다. 정 회장은 "5평에서 10평짜리 가게가 대부분으로 월세가 30만원에서 60~70만원, 모퉁이 목 좋은 데만 100만원"이라고 했다. 2003년에 '보리밥' 식당을 연 백광자(59)씨는 "처음 문 열었을 때 월세가 55만원, 지금 60만원(부가세 포함)"이라며 "어려운 시절엔 월세가 밀린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임차료가 오르지 않아 버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2003년 4500원 하던 보리밥 가격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6000원을 유지하고 있다. 낮은 임대료 덕분에 가성비가 가능했다는 말이다. 혼자서 하루 300~500개의 만두를 빚는 김숙희(68)씨 가게의 월세는 30만원에 불과하다. 한달 매출은 500만~600만원 안팎이지만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1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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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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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방터시장은 서울 내자동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서촌) 상가 규모가 엇비슷하다. 서촌이 해물 한식당 '계단집'을 비롯해 몇몇 맛집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도 닮았다. 물론 시장 내 매출은 차이가 크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서촌 계단집을 기준으로 반경 100m 내 한식당 22군데의 월평균 매출은 7118만원인데 반해 포방터(돈카 기준 반경 100m 내 한식점 15곳)는 1086만원으로 15% 수준이다. 단, 이 수치는 포방터시장이 뜨기 전인 지난해 5~10월 기준이다.

서촌의 임대료는 포방터보다 서너배 높다. 서촌의 한 부동산중개소 대표는 "20~50평 상가의 경우 평당 20만원 정도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차 문제로 분쟁을 겪은 ‘궁중족발’ 자리(50평)도 1000만원 선에 나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3년간 임대차 분쟁을 겪은 궁중족발은 아직까지 공실이다.

포방터시장은 시장 형성 시기부터 1인 또는 가족 경영을 고수했다. 실제로 방송에 출연해 갑자기 분주해진 두세 군데를 빼곤 직원을 고용하는 데가 없다. 시장상인 중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돈카집은 아직 검증 중" 지속가능하려면
지금 임대료·인건비 상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2002년부터 '이모네분식'을 해온 박순옥(63) 씨는 "방송 직후엔 골목마다 사람이 들어찼지만 차츰 줄어들고 있다. 다시 오지 못할 좋은 기회였는데, 우리가 그 손님을 잡지 못한 건 아닌 지 후회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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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방터시장 내 이모네분식.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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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자골목으로서 킬러콘텐트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돈카를 비롯한 서너 곳의 음식점도 매스컴에 기댄 바가 크다. '어머니와아들'의 닭볶음탕을 먹기 위해 두 시간 넘게 줄을 선 이모 씨는 "아이가 꼭 가보자고 해서 왔는데, 기대 이하였다. 너무 맵다.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고 말했다. 신창락 상지영서대 유통경영과 교수는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진 포방터는 외지인 유입이 쉽지 않은 항아리 상권이다. 최근 여기가 띄는 건 매스컴 때문"이라며 "찾아오는 손님들의 기대치를 얼마나 높이느냐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돈카집도 아직 검증 중이다. 지속할 수 있기 위해선 각 점포가 명품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대료 상승의 여지는 있다. 지금은 상권이 작아 그런 움직임이 없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장은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을 비롯한 지속적인 상인 교육이 필요하다. 급격한 임대료 상승 등 외부 충격에 대비해 상인회 커뮤니티를 끈끈하게 유지해야 하며, 각 점포와 점주의 평판 관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주·최연수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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