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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담배 한갑 아끼면 가정 살려요" 98%가 경비원 지킨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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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 푸르지오 아파트 경비원 감축 대신 관리비 인상 택해

입주민들 "경비원들도 공동체의 일원 우리가 지키자" 분위기 확산

중앙일보

경남 양산시 삼호동 푸르지오 아파트에서 지난 12월 경비원 감원 찬반 투표가 열릴 당시 한 입주민이 투표용지에 감원 반대 독려성 글을 써 놓았다. [사진 양산 푸르지오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경남 양산시 삼호동의 푸르지오 아파트에서는 지난 12월 중순 입주민 투표가 열렸다. 올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에서 8350원으로 인상되면서 경비원과 환경미화원(19명)에 대한 감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당초 입주자 대표회의에서는 관리비 인상으로 의견이 모였지만 주민 중 관리비 인상 대신 감원을 원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어 투표를 붙인 것이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의외였다. 전체 987가구 중 806가구가 투표에 참여해 이 중 98%에 달하는 795가구가 압도적으로 경비원 감원 대신 관리비 인상을 택해서다. 박진영 푸르지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입주민들 사이에 ‘담배 한 갑 가격만 아끼면 한 가정을 살린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많은 입주민이 관리비 인상에 찬성한 것 같다”며 “경비원과 환경미화원들도 아파트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식이 이런 결과를 끌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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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감원 대신 관리비 인상을 택한 양산 푸르지오 아파트 전경. [사진 양산 푸르지오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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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으로 전국 아파트에서 경비원 감원을 하는 곳이 많아졌다. 하지만 일부 아파트에서는 ‘담배 한 갑만 줄이거나 치킨 한 마리만 덜 시켜도 경비원과 환경미화원 감원을 막아 아파트 구성원 모두가 공생할 수 있다’는 상리공생(相利共生·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관계)의 정신이 확산하면서 경비원 등의 감원 대신 관리비 인상을 택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경기도 하남시의 하남자이아파트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주민들이 나서 경비원 등의 감원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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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경비 시설 갖추고도 경비원 감원 없이 상생하는 경기도 일산 호수마을 4단지 아파트. [중앙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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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자이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지난해 10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폐쇄회로TV(CCTV)를 늘리고 무인택배함을 설치해 경비 인력 15명 중 5명을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부 입주민이 이 결정에 반발하면서 논란이 됐다. 결국 해당 입주민 스스로 아파트 관리 규약에 ‘20명이 모이면 입주민 대표회의에 안건을 낼 수 있다’는 조항을 찾아냈고 이를 근거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입주민 전체 투표까지 끌어냈다.

결과는 놀라웠다. 전체 투표자 중 78.9%가 경비원 수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쪽에 투표하면서 감원 계획은 취소됐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당시 해당 입주민이 경비원 감원 등을 안 할 경우 한 달에 관리비가 평균 3800원 정도 인상이 된다는 사실을 투표 과정에 집집이 돌며 안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돈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까 우려했는데 주민 대부분 ‘몇천 원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다 같이 먹고살아야지’하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경비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 뻔했는데 입주민들이 감원 대신 관리비 인상을 택해줘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 고마움을 열심히 일해 입주민들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반응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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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에도 경비원 임금을 올린 울산 중구 리버스위트 게시판에 붙은 응원 쪽지. 이 아파트는 올해 역시 경비원을 감원하지 않고 임금을 추가 인상하기로 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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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이나 환경미화원을 줄이지 않고 오히려 임금 등을 인상해주는 곳도 있다. 울산 중구 태화동 리버스위트 아파트(232가구)다. 이곳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6명의 경비원 등의 수를 줄이지 않고 임금을 인상(1인당 5만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아파트 박금록(69) 입주자 대표회장은 “지난해 1만원 올해 5000원의 관리비가 인상됐지만, 십시일반 힘을 합쳐 경비원 등을 감원하지 말자고 논의가 됐다”며 “앞으로도 함께 머리를 맞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주민들의 자발적인 운동 형식으로 최저임금으로 인한 피해를 슬기롭게 줄여가고 있는데 정부나 자치단체 등에서 이들 아파트에 인센티브 등을 주는 방안을 도입하면 ‘상리공생’하는 분위기가 더욱 확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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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푸르지오 한 입주민이 경비원 감원 반대 투표지에 남긴 응원의 메시지. [사진 양산 푸르지오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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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 회복 전문가로 김경수 경남지사가 특별히 임용한 윤난실(55·여) 경남도 사회혁신보좌관은 “도시에서 마을이라는 것은 아파트를 말하는데 이곳이 익명성이 보장된 구조가 되면서 어느새 이웃이라는 공동체가 사라져버려 층간소음이나 흡연 등 다양한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 이후 경비원이나 환경미화원 감원 같은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입주민들이 공동체의 문제로 여기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례는 공동체 회복의 아주 바람직한 사례인데 이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조례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산=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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