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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빨리빨리 문화에 반했다, 해외 스타트업 40곳 '판교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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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경기도 판교 테크노벨리의 스타트업 캠퍼스. 607㎡(184평) 크기 사무실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금발 백인부터 구릿빛 피부의 남미인까지 출신도 제각각으로 해외 대학 도서관을 연상시켰다. 핀란드의 수질 정화 장비 스타트업인 샘속스의 삼사 시토넨 아시아 법인장은 "한국은 첨단 기술의 테스트베드(시험장)가 될 잠재력이 있는 곳"이라며 "아시아 시장 공략 거점으로 한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오존 가스와 자외선을 이용해 물을 정화하는 수질 정화 장치를 개발했다. 그는 "한국의 한 중소기업에서 조만간 제품 생산에 들어갈 것"이라며 "올해 한국인 2명을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 스타트업이 판교로 몰려오고 있다. 직원 10명 내외, 창업 2~3년의 막 걸음마를 뗀 기업들이다. 현재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는 인공지능(AI)·핀테크(금융기술), 신의료 기기와 같은 첨단 산업에 도전장을 낸 40개 외국 스타트업이 5개월째 머물고 있다. 'K 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 사업을 통해 지난해 8월 최종 선발된 업체들로, 총 108국 1771팀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판교에 입성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최고"

볼리비아 출신의 마리오 아길렐라 테스팩 대표는 "올해 핀란드 본사를 아예 한국으로 옮기고 한국을 생산 거점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태양광 패널로 스마트폰 등 각종 전자 기기 충전이 가능한 백팩과 헬멧·조끼를 개발했다. 그는 "그동안 중국과 베트남 업체에 생산을 맡겼는데 불량률이 높아 고민이 컸다"며 "한국 중소기업들은 기술력이 우수해 유럽보다 저렴한 가격에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라며 엄지를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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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경기도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한국 시장에 도전하는 해외 스타트업 대표 5명이 자사 제품과 프로그램을 화면에 띄운 PC를 들고 있다. 왼쪽부터 삼사 시토넨(핀란드 출신), 루이스 디젤(미국), 마르코 바킬리가(이탈리아), 마리오 아길렐라(볼리비아), 줄리안 오스본(스위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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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기업인들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혁신을 위한 최고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삼사 시토넨 법인장은 "한국인들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다음 날 시제품 도안이 올 정도로 열정적"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핀테크 기업 트리플에이셀의 줄리안 오스본 대표는 "전 세계를 다녀봤지만 며칠 안에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몇 년 안에 성패를 봐야 하는 스타트업에는 한국의 빠르고 신속한 일처리가 최대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곳의 젊은 외국인들은 세계 최고 통신 인프라와 반도체·디스플레이·신소재 등 하드웨어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한국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외국인 기업인들은 "실리콘밸리가 인재와 투자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면 한국은 세계 최고 통신 인프라와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면서 "한국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은 까다로운 고객이라는 점도 신기술 테스트베드의 훌륭한 조건"이라고 했다.

◇한국인 고용, 국내 업체에 생산 맡겨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 사업은 2016년 시작됐다. 최종 선발된 기업 40곳은 기업당 정착 지원금 1억원을 받고 사무실도 1년간 무상 이용하며 투자 유치 도움을 받는다. 일각에선 '왜 해외 스타트업들을 정부가 돕느냐'는 시선도 있지만, 판교에 정착한 일부 스타트업은 벌써 한국인 직원을 뽑거나 한국 중소기업에 제품 생산을 위탁하는 식으로 한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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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인공지능 챗봇을 이용한 여행 예약 서비스를 만든 트래블플랜은 월 사용자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한국인 14명을 고용하고 있다. 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는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서 200만달러(약 22억원)를 투자받고 배달용 로봇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는 이들에게도 장애물이다. 실제로 40업체 중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 어려운 승차 공유 관련 스타트업은 한 곳도 없고, 건강관리 분야도 리니어스 메디컬(미국) 하나뿐이다. 리니어스 메디컬의 루이스 디젤 대표는 "정맥 주사가 혈관에서 분리되는 걸 막아주는 의료기기를 개발했지만 인허가 때문에 걱정이 크다"며 "미국에선 최종 승인을 석 달 앞두고 있지만, 한국은 새로운 의료기기 인허가가 복잡해 한참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판교=임경업 기자(up@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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