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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신세철의 이코노믹스] 금리가 낮아 돈 빌린다고?…가계부채의 역습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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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금리가 예금금리 3배에 달해

절대적 수치로만 저금리라고 못해

저성장·저물가에선 저금리가 옳아

부동산 잡으려 올려선 ‘초가’ 태워

부유층·서민간 부의 양극화도 가중

고물가·고금리 타성에서 벗어나야

고성장 신화가 만든 저금리 착시현상

가계부채 1500조원은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다. 이 폭탄이 당장 폭발할 것같지는 않다. 하지만 가계는 이 부채에 단단히 발목이 잡혀 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앞다퉈 부채를 늘려왔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저금리는 절대수치가 낮은 데서 오는 착시현상일 뿐이다. 은행들은 이런 현상 덕분에 앉아서 땅집고 헤엄을 치면서 고객 돈을 빼앗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금리 시대를 살고 있다지만 알고 보면 결코 저금리가 아니란 얘기다.

적정금리 추정은 성장률·물가상승률 같은 거시경제 지표 변화와 견주어야 하는데, 단순하게 과거 금리와 비교해 금리의 고저를 짐작하다가는 착시현상에 빠져 낭패를 본다.

경기후퇴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2017년에 이어 경기침체 증상이 엿보인 지난해 11월에도 경기순환에 역행하는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됐다. 한국은행은 “금융불균형 심화 가능성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인상했다”고 했지만 정작 시장에선 ‘기준금리를 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게 됐다.

과연 금리가 낮은 수준인지부터 따져보자. 저금리가 대기성 자금과 동시에 가계부채도 늘어나게 하는 원인인지 보기 위해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제적 기회비용인 금리의 높고 낮음을 추정하려면 기준금리가 아닌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 시장금리 수준을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예금은행 대출금리는 연 3.69%다. 잠재성장률 2%대와 물가상승률 1.3%에서 3.69%의 이자부담은 가계나 기업에 무척 높은 수준<그림 1>이다. 과거 고성장·고물가·고금리 시대 타성에 젖어 오늘의 저성장·저물가 현상을 외면한 채 금리의 절대수준만 보고 저금리라고 착각하는 착시현상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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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빌려 쓰는 대가로 지불하는 금리가 생산성보다 높으면 투자를 축소해야 하지만, 가계나 기업은 금리가 높아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생산수단의 디지털화가 빨라지면서 아날로그 상품 수요는 점차 줄어드는 세계 경제의 분수령을 맞이해 그처럼 높은 이자를 내며 부채를 줄여갈 수 있는 가계와 기업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경기가 후퇴에서 불황으로 진행되는 국면에서 기준금리 인상은 경제 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실물 부문과 금융 부문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야 할 돈이 돌지 못하고 뭉쳐지는 금융 불균형이 심화된다. 대기성 자금(idle money)과 함께 가계부채가 불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기성 자금은 무엇보다 경제력 집중으로 말미암은 부의 양극화 현상에 따라 늘어난다. 소득의 양극화가 장기간 누적되면서 자산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한쪽으로만 넘쳐나는 돈이 경기 둔화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위험을 회피하다보니 대기성 자금만 늘어난다는 얘기다. 채권시장에서 국고채와 회사채(BBB-)의 수익률 차이가 무려 4배 이상 벌어지는 비정상적 모습<그림 2>을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한국경제는 과거 인플레이션 유발 성장 정책으로 고물가·고금리에 익숙해져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이자가 웬만큼 높지 않고는 성에 차지 않는다. 어딘가에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대상을 찾아 기웃거리는 데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깜박이를 오랫동안 켜왔다. 한쪽에서만 남아도는 자금이 단기 상품에 머물면서 금리가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금리가 낮아 부동산에 돈이 몰리고 가계부채가 늘어난다는 가설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방과 서울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 거래 양극화만 생각해봐도 오직 저금리만 부동산시장을 달아오르게 한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생계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동산을 담보로 빚을 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상당하다. 더구나 집을 팔려고 해도 거래 비용이 너무 높아 급한 불을 끄려고 할 수 없이 담보대출을 받는 경우도 많다. 취등록세·양도소득세·중개수수료를 합하면 부동산 팔고 사기가 여간해선 엄두내기가 어렵다. 그러다가 ‘거래 실종’ 사태가 본격화되면 위축돼 가는 경제심리가 한층 더 얼어붙는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2017년 말 현재, 전체 가구의 비금융자산 비중은 62.4%에 달하고 있어 부동산이 경제순환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는 발상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집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 자금의 풍요와 빈곤이 혼재하는 금융 불균형이 한국 경제의 위험과 불확실성의 원인인지 그 결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돈이 어느 한 쪽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는 위험과 불확실성의 결과지만, 돌아야 할 돈이 돌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 원인이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동시에 대기성 자금이 늘어나는 이면을 들여다보면 금융 불균형이 저금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금리 상승은 예금자에게는 더 큰 이자수익을 얻게 하는 반면, 대출자에게는 더 많은 비용을 물게 해 빈부 격차를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가계의 여유자금은 금융중개 기능을 통해 기업에 흘러가야 경제가 정상적으로 굴러간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력 집중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가계는 고금리를 힘겨워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해부터 정치권 유력인사들까지 한목소리로 금리 인상 주장을 펼쳤다. 금리는 국민 모두가 먹고 사는 데 직간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 등 특정 부문이나 특정 계층을 위한 ‘묘수’로 남용되다가는 국민 경제에 광범위한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을 헤아리지 못한 발상이다.

요컨대 가계와 기업은 금리의 절대적 수준이 아니라 경제 상황 변화와 비교한 상대적 수준을 꿰뚫어 보고 경제적 선택에 나서야 한다. 고성장·고물가에서는 화폐가치가 쉽사리 하락해 부채 부담이 금세 떨어지지만, 저성장·저물가 아래서는 시간이 지나도 빚의 무게가 줄지 않는다. 지금 같은 사실상 고금리를 저금리로 착각하고 공격적 경제 활동을 하다가는 자칫 빚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수가 있다. 수익성 높은 사업을 찾아내기 어려운 저성장 구조 아래서는 방어적 경제 활동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이든 가계든 부채의 역습이 몰려올 뿐이다.

초유의 호황 누리면서 고객 호갱 취급하는 금융
수신금리와 여신금리의 불균형에 따른 과다한 예대마진으로 가계, (중소)기업 부채가 늘어나면서 시중은행은 초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실물 부문의 성장과실이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금융 부문으로 무상 이전되는 셈이다.

지난해 11월 현재 시중은행 대출금리(3.69%)는 예금금리(1.36%)의 3배에 가깝다. 두 금리의 격차인 예대마진을 고려하면 1.7배를 남기는 장사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크다. 시중은행 대출은 담보가 있거나 상환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위험이 미미한 상황이어서 고객을 호갱으로 보고 땅 집고 헤엄치는 약탈적 금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은행산업이 방만한 경영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천문학적 공공자금을 투입해 지원한 까닭은 금융산업의 공공성 때문이 아니겠나.

은행연합회는 대출금리 산정 기준이 되는 코픽스 금리를 산출하면서 예금 비중은 높지만 사실상 이자를 지불하지 않는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예금을 지금까지 쏙 빼놓고 계산해 왔다. 지난해 12월 현재 코픽스 금리(1.96%)가 한은이 산출하는 가중평균 총수신금리 1.36%보다 무려 0.6%나 높은 까닭이다. 은행은 대출원가가 높은 것처럼 착시효과를 내는 코픽스 금리에 가산금리를 얹어 대출금리를 산정하므로 결과적으로 가산금리를 이중으로 받는 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업 역시 약탈적 금융의 피해자다. 채권시장에서도 과다한 위험회피로 금리차가 비정상적으로 벌어지며 자금 조달기능이 사실상 마비되고 있어서다. 이래서는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채권시장에서 신용평가 BBB-의 투자적격 등급 기업의 회사채수익률은 8.5% 내외로 등급이 높은 AA- 금리(2.4%)의 무려 3.5배가량이다. 경제성장률 2.7%, 물가상승률 1.3%인 상황에서 8.5%의 자본비용을 지불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은 과연 얼마나 될까.

국내 채권시장에서 위험 과다회피 현상은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신용평가 기능에 대한 불신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AAA 등급을 받은 대기업이 부도가 난 뒤에야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사례가 있다. 그러니 BBB- 등급을 받은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자 신뢰는 형성되기 어렵다.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국가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 부문이 거시경제 여건 변화에 따른 위험과 수익을 적정하게 반영하도록 금융중개 기능 확충 방안이 강구돼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어제 은행연합회가 내놓은 코픽스 금리 산출방법을 더욱 고객 친화적으로 개선하고, 신용평가 기능부터 정상화시켜야 한다.

◆신세철
미시간주립대 연구원을 거쳐 금융감독원 조사연구국장과 KB자산운용 리스크담당 상무를 지냈다. 저서로는 『불확실성시대 금융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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