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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황정미칼럼] ‘탈원전 반전’ 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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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사고 위험 키우는 ‘원팀, 원보이스’/‘신한울 레드팀’ 만들어 정책 오류 줄여야

오랜 기간 정치전략가로 일해온 지인이 연초 카카오톡으로 ‘정권의 레임덕 증후군’이라는 글을 보내왔다. 초·중·말기 증상으로 몇 가지 사례를 적은 것들인데 대부분 짐작할 만한 내용이다. 예컨대 ‘정부 내 비리를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들이 나타난다’ ‘여당 내 정권 비판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언론이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를 부각시킨다’와 같은 ‘중기’ 증상은 최근 문재인정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5년 단임정부가 탄생한 1987년 이래 대통령 지지율과 당·청 관계, 권력 주변의 스캔들은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인정하든 안 하든 레임덕은 5년 정권의 ‘패턴’이 됐다.

기업은 물론 개인들도 살아가면서 터득한다. 위기를 피할 도리는 없어도 그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운명은 달라진다는 걸. 역대 정부가 집권 중반 특보정치를 가동한 것도 일종의 위기 대응책이었다. 세월호 침몰 파문에 휘청이던 박근혜정부는 집권 3년차 이명재·윤상현·주호영 등을 대통령 특보로 임명했고, 이명박정부는 2010년 6·2 지방선거 참패 후 이동관 등 최측근을 내세워 특보정치를 강화했다. 노무현정부 특보단은 이해찬, 문재인, 김병준 등 면면이 화려했다. 시중 여론을 전하고 각계 소통의 통로가 되라는 임무가 맡겨졌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세계일보

황정미 편집인


“우리는 DNA가 다르다”는 문재인정부는 유달리 ‘원팀’을 강조한다. 정부 정책을 책임지려면 한 팀처럼 손발을 맞춰야겠지만 ‘원팀, 원보이스’라면 얘기가 다르다. 청와대, 여당 수뇌부는 운동권·시민단체 출신, 친문재인 성향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과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 집단사고(Group think)의 함정을 파는 일이다. 이 정부에서 ‘내로남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출신 김태우 전 수사관의 현 정부 비리 폭로는 “과거 습성을 못 벗은 미꾸라지의 일탈”이고,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KT&G 사장 교체 시도·적자국채 발행 외압 폭로는 “좁은 세계 속 판단”이라는 식이다.

여권의 원팀 정신은 손혜원 의원의 목포 원도심 개발 투기 의혹 대응 과정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20곳이 넘는 건물, 땅을 사들이고 자신이 소속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정부 지원 개발을 종용하는 발언들이 나왔는데도 당 지도부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감쌌다. 공적 이익을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이 사익 추구 논란을 야기한 데 따른 최소한의 사과도 없다. 김태우 폭로 때만 해도 청와대 비서관 출신 조응천 의원이 조국 민정수석 책임을 주장했지만 손 의원 행태를 공개 비판하는 목소리는 안 들린다. 조 의원의 조국 책임론을 “야당의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던 이해찬 대표의 ‘원팀, 원보이스’ 효과다.

이런 흐름 탓에 탈원전 정책의 속도 조절을 주장한 송영길 의원 발언이 더욱 주목된다. 청와대, 여당 지도부의 유감 표명에 그는 ‘충심의 제언’이라는 장문의 글을 페북에 올렸다. “탈원전 정책에 동의하지만 중장기 에너지 믹스 정책 차원에서 원전 기술 생태계가 무너져선 안 되며, 공론화 절차도 없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말미에는 “상대방의 의견도 옳으면 수긍할 용기가 있을 때 민주주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이미 그와 같은 주장에 찬성한다고 서명한 국민이 30만명을 넘는다. 탈원전을 ‘도그마’(교조)처럼 여기는 청와대 답변을 예상 못하는 바 아니다.

그래도 반전을 소망한다. ‘악마의 대변인’으로 불리는 레드팀을 구성해 신한울 원전 문제라도 따져봤으면 한다. 독립적인 제3자 시선에서 정책을 검증하는 레드팀은 민주당 싱크탱크 보고서에서도 상시적 활용을 권고했다. 역대 정부 전례를 봐도 국정 변화를 도모할 마지막 시기는 집권 3년차다. ‘레드팀’ 저자 마이카 젠코는 레드팀이 집단사고를 줄이고 정책 오류를 막는 데 제1조건은 ‘톱 커버’라고 했다. 군대 용어로 우두머리의 동의를 뜻한다. ‘톱’이 반응하지 않는 한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작금의 역주행 질주에 제동을 걸 사람은 대한민국에 딱 한 명뿐이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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